출입국관리사무소 방문예약제, 누구를 위한 것인가?[2주에 한번, 이주이야기]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만난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
박진우 / 이주노조 활동가 | 승인 2017.10.16 08:12

얼마 전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A씨로부터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가 걸려왔다. 비자만료가 며칠 남지 않았는데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비자연장신청을 하는 걸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일단 다음날 아침 일찍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 오전 9시30분, 출입국관리사무소 안은 이미 수많은 이주민들로 북적거렸다. 입구에 있는 접수처 직원에게 이주노동자 A씨의 사정을 설명하니 당일 체류기간 만료자의 경우 창구가 따로 있다고 해서 번호표를 뽑으니 이미 수십여 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경험상 최소 2~3시간은 기다려야 할 것 같아서 이주노동자 A씨에게 좀 더 자세히 상황을 물었다. 

이주노동자 A씨는 올해 중순 방글라데시의 홀아버지가 깊은 병환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계약기간도 얼마 남지 않아 사업주에게 사직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사업주는 이를 허락하지 않고 끝까지 고용변동신고 및 임금, 퇴직금을 지급해주지 않았다. 결국 회사를 나와서 이주노동자쉼터에서 지내면서 사업주를 대상으로 임금체불 및 퇴직금 진정서를 노동부에 넣어놓은 상황인데 아직 그 결과를 받지 못해서 당장 출국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점심시간이 되어 출입국사무소 직원들이 창구를 모두 닫고 점심을 먹으러 나가버렸다. 아침 일찍 와서 밥도 아직 못 먹은 이주노동자 A씨에게 식사를 하러 가자고 하려다가 다시 창구가 열리면 대기번호가 지나갈지 몰라서 그냥 자리에 앉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지난 8월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전국이주노동자 결의대회'에서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참가자들이 고용허가제 폐지,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추방 중단, 해외투자기업연수생제도 폐지 등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1시간 정도가 흘러서 겨우 대기번호가 호출됐고 준비해간 서류 외에 이런저런 질의가 오갔다. 비자만료가 얼마 남지 않아서 출국유예신청을 해야 하며, 신원보증에 노동부 서류 등도 추가로 제출해야 한다고 했다. 문제는 출입국관리사무소 업무를 종료하는 5시 반까지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는 것. 이미 대기 시간으로도 4시간을 넘게 소비한 터라 뭐라 항의도 하지 못한 채 급하게 노동부와 담당 노무사 등에게 연락을 취해서 서류를 받아야 했다. 오후 5시에 겨우 추가서류를 접수하고 2주 후에 출국유예에 대한 결과를 통보받으러 다시 오라는 이야기를 A씨에게 전했다. 

A씨는 다시 또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와야 하는 것인지 묻고, 자기는 하루빨리 퇴직금과 임금을 받고 방글라데시에 돌아가고 싶은데 그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사업주가 일방적으로 임금 및 퇴직금을 지급해주지 않아도 이주노동자가 출입국사무소에 찾아가서 자신의 신원과 머무는 곳, 진정 접수 및 진행경과 등을 입증하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미등록체류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 어디 A씨만의 경우일까? 

출입국사무소에서는 기본적인 신청 서류조차도 본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작성되어 있지 않아, 같은 나라에서 온 다른 이주노동자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서류를 작성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아 보였다. 또한 A씨처럼 비자만료가 며칠 남지 않은 경우가 아니고는, 사전에 인터넷으로 방문예약을 하지 않으면 절대 접수가 불가능해서 헛걸음을 하는 이주노동자들도 여럿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이번에는 한국에 온 지 두 달이 갓 넘은 이주노동자 B씨를 도와주고 있는 친구 이주노동자 C에게 연락이 왔다. B씨는 최초 계약한 사업장에서 물량이 거의 없고 더 이상 B씨를 필요로 하지 않아서 일한 지 2달 만에 계약해지를 한 상황이었다. 친구 C의 도움으로 고용센터에 가서 구직필증을 발급받고 새로운 사업장을 찾고 있었는데, 문제는 최초 사업장에서 외국인등록증 발급신청을 해주지 않아서 사실상 주민등록증 역할을 하는 외국인등록증 없이 돌아다니는 것이 걱정된다는 점이었다. 

또한 출입국관리법 제100조(과태료)에는 외국인등록증 발급신청을 하지 아니한 사람의 경우 5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게 되어 있어서 B씨에게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수 있었다. 외국인등록증 신청 역시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해야 하기 때문에 친구C를 통해서 해당출입국 방문예약신청을 먼저 할 것을 권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 B씨는 물론이거니와 친구 C도 인터넷을 통해 하이코리아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인증절차를 밞고 방문예약을 하는 것 자체가 너무 생소했고, 언어가 한국어와 영어만 제공되어서 쉽지 않았다.

하이코리아 (www.hikorea.go.kr)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전화로 몇 번을 설명해도 애초 인터넷을 이용해 무엇인가를 예약하고 인증하는 것에 대해서 경험이 전혀 없는 이주노동자 B와 C에게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전화를 계속 붙들고 있어도 해결이 되지 않아서 결국 다음날 사무실로 B와 C를 불러서 같이 방문예약신청을 했는데 이미 2주 동안은 꽉 차 있었다. B씨의 경우 외국인등록증 신청기간인 입국 후 90일을 며칠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겨우 방문예약신청을 하고 출입국에 방문할 수 있었다. 

오후 4시 반에 방문예약 신청을 하고 넉넉히 4시부터 기다렸는데 5시가 넘어가도록 번호표를 부르지 않는 것이었다. 이러다 5시 반이 넘어가면 업무가 종료되었다고 접수조차 안 될 것 같아서 직원에게 이야기하니 그제야 이 손님 끝나고 받아주겠다고 해서 겨우 접수를 했다. 업무 종료시간이 한 시간도 안 남은 상황에서 출입국사무소 안에 30명이 넘는 이주노동자들이 앉아있었으니 하루 종일 기다리다가 영문도 모른 채 발길을 돌려야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출입국관리사무소 방문예약제는 작년에 서울출입국에서 시범 운영되다가 올해 전국출입국으로 전면 확대되어 시행되고 있다.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는 시행초기에는 사전예약이 다소 번거롭게 느껴질 수 있지만, 정착되면 간단한 체류업무를 위해서도 몇 시간씩 대기하는 현재의 불편함이 해소되고, 많은 인원이 붐벼 힘들었던 민원실 환경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미 시행한 지 1년이 넘은 서울출입국만 보더라도 방문 예약한 시간을 1시간 이상 넘기는 것은 예삿일이고, 오로지 인터넷으로밖에 예약접수가 되지 않아서 인터넷 접근이 어려운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주변의 도움 없이는 접수조차가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최소한 방문예약 홈페이지라도 더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모국어를 제공해 이들의 접근 편의성을 대폭 확장해야 한다. 

글을 쓰면서 지난해 개봉했던 켄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도 이와 비슷한 장면이 나온 게 떠올랐다. 주인공 블레이크는 실업수당을 받기 위해서 인터넷 홈페이지 상담예약을 하지 못해 쩔쩔맨다. 직접 홈페이지에 들어가 회원가입하고 인증하는 절차가 평생 목수일만 해온 59세의 블레이크에게는 너무나도 낯설었던 것이다. 영화에서 블레이크 씨에게 마우스를 화면 위로 올려보라고 하니 직접 손으로 마우스를 들어서 위로 올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런 일이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씁쓸했다.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의 편의가 아니라 이주노동자들의 입장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출입국 방문 예약시스템에 보다 간편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출입국 방문예약제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이주노동자들이 당장 체류신분의 불안에 떨게 되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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