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계층 노동 실태]<중>착취 못 벗어나는 이주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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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01-02 08:5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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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지난달 17일 세계이주노동자의 날 기념 이주노동자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고용허가제폐지, 사업장 이동자유 보장'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2018.01.02. (사진 = 뉴시스 DB)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사업장 이동 족쇄' 고용허가제의 사슬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들도 열악한 노동 환경 속 인권을 침해받고 있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2일 이주노조·이주민지원센터 등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비전문취업 비자(E-9·고용허가제)를 받아 한국에서 일하는 15개국 출신 이주노동자는 27만7055명이다. 

 고용허가제는 사업주가 필요한 근로자 수를 신청하면 정부가 E-9 비자로 입국한 외국인을 연결해주는 제도다.

 노동단체는 '고용허가제 조항상 사업장 이동·재고용·이탈신고 등 모든 권한이 사업주에게만 있다는 점'을 이주노동자가 착취당하는 배경으로 꼽는다. 

 E-9 비자를 갖고 국내에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들은 체류기간 3년간 3차례만 사업장을 옮길 수 있다. 성실근로자 제도를 통해 체류 기간을 1년10개월 연장할 경우 최대 5번까지 변경 가능하다.  

 하지만 사업주 동의 또는 휴업·폐업, 근로조건 위반 행위, 폭행·상습적 폭언 등을 당했을 경우에만 심사를 거쳐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다. 

 사업주의 동의 없이 이직이 불가능하고, 심사 조건·기준이 까다로워 불이익을 받고도 사업장을 옮기는 이주노동자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고용노동부장관 고시에 따라 12개월 임금 중 30% 이상 체불돼야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고, 불합리한 차별 대우를 받는 기준도 명확치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변경 기간도 3개월로 제한돼 있고, 성실근로자 제도는 한 사업장에서만 근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같은 '사업장 이동 제한'과 '노동력 단기순환 정책(최대 9년8개월)'으로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주의 권한에 종속되고 정주의 권리도 보장받지 못 한다.

 이주노동자들이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권리와 대응법을 잘 모르는 점도 사업장 변경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제기된다. 

 근무지 이탈 신고의 오남용도 문제시되고 있다. 이탈 신고가 접수될 경우 이주노동자들은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전락하게 돼 부당한 근로조건(장시간 근로·체불·불법 파견 등)을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진다.

 관리·감독 기관이 어떤 사유로 근무지를 이탈했는지 면밀히 살피지 않아 체류 자격을 잃는 이주노동자들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출국 이후 14일 이내 퇴직금과 밀린 임금을 받을 수 있는 규정'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주노동자들은 통상임금 가운데 적립한 퇴직금 70%를 보험사에서 받은 뒤 나머지 30%를 자국으로 돌아가 받고 있다.

 귀국 뒤 사측에서 퇴직금을 주지 않을 경우 법적 대응이 어려워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이주노조는 설명했다. 

 이밖에 사회보장기본법 미적용, 불법 도급 강요, 언어 교육 체계 미흡, 특례법상 농·어업 분야 외국인 노동자들은 휴게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는 점 등도 문제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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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지난해 8월20일 전국이주노동자결의대회에서 참석 이주노동자들이 피켓을 들고 권리 보장을 촉구하고 있는 모습. 2018.01.02. (사진 = 뉴시스 DB)

 ◇열악한 근로 환경 반복
  
 실제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은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 하고 있다.

 전남 함평군 오리 훈제 가공 업체서 일했던 40대 방글라데시 노동자 2명은 지난 4년간 폭언·손찌검·불법 파견·잔업수당 체불·노후화된 작업복 착용 강요·근무 시간 화장실 사용 금지 등 업주의 횡포에 시달려왔지만, 업주가 사업장 변경을 동의해주지 않았다.

 이들은 지난해 8월 광주지역 모 노무법인의 도움을 받아 노동청에 이러한 횡포를 신고한 뒤 근무지를 변경할 수 있었다.

 충북 청주 모 양돈농장의 20대 네팔 출신 노동자는 건강 악화로 사업장 변경을 요청했지만, 이를 거부당한 뒤 업주로부터 집요한 감시를 받기도 했다. 

 충남 서산의 한 제조업체에서 일했던 A(29·키르기스스탄)씨는 지난해 6월15일 사업장 변경 신청을 승인받았지만, 변경 기한인 3개월 간 노동청 산하 고용센터의 사업장 알선을 4건밖에 받지 못 했다.

 이마저도 계약이 되지 않자 A씨는 4개 시·군을 돌며 구직 활동을 이어갔고 지난해 9월12일 경기 화성 지역의 모 업체로부터 채용 통보를 받았다.

 A씨는 업주에게 "9월15일까지 고용센터에 근무처 변경 신청을 접수해야한다"는 의견을 전달했고, 업주 일정상 마감 당일 센터를 찾았다.

 하지만 사업주가 '이주노동자 고용 쿼터(1년 단위 고용 허가 인원)'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A씨를 채용하려 했고, A씨는 쿼터 제한과 기한 초과로 출국 대상자 통보를 받았다.
 
 명백한 사업주의 잘못인데도 맞춤형 대응 체계가 마련돼 있지 않아 이주노동자들이 피해를 입은 셈이다.

 이밖에 불법 파견·체불을 일삼은 사업주가 야간 근로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노동자 10여명을 강제 해고한 사례, 심한 배 멀미로 근무지 변경을 요청한 선원 노동자를 이탈신고한 사례, 제조·건설·농축산업 노동자들에게 열악한 근로·주거 환경을 제공·방치한 뒤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지 않은 사례 등 업주들의 횡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사업장 변경 제한을 비판하며 죽음을 택하는 극단적인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2015년 9명, 2016년 7명, 2017년 5명의 네팔인 근로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주민지원센터 친구 조영관 사무국장은 "현행 고용허가제는 사업주들의 편의와 필요에 맞춰져 있다. 이는 근로 관계의 종속성을 심화시키고 있다"며 "이주노동자들의 바람은 노동 조건이 열악한 사업장에서 옮길 수 있는 권리를 주고, 안정적으로 체류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노동권을 보장해주는 방향으로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sdhdream@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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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주성 기자 = 지난해 8월14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이주노동자 사망사건 해결 촉구 기자회견 모습. 2018.01.02. (사진 = 뉴시스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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