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입국관리법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게도 법은 정의로운가
이영 | 승인 2018.02.16 00:04

과연 법은 정의로운가 하는 의문을 가질 때가 있다. 정의의 여신 디케(로마 신화에서는 ‘유스티티아 Justitia’로 바뀌었었고, 영어 ‘Justice 정의’의 어원)는 눈을 가리고, 한손에는 저울을 한손에는 칼을 들고 있다. 법은 한 치의 편견도 없이 공정해야 하고, 엄중한 판결이 있어야 함을 상징한다.

하지만 이에 무색하게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가 통용되고 난무하고 있다. 결국은 법을 집행해야 하는 행정기관 역시 자본의 시녀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약자에게는 이미 저울은 기울어져 있다.

명확한 요건 없는 ‘품행단정’

2017년 연말에 낯이 익은 이주노동자가 센터를 방문하였다. 2010년쯤으로 기억이 된다. 외국인보호소 실태조사 차 보호소에서 상담을 했던 후세인(방글라데시, 65년생)씨였다. 그는 단속 된지 3개월이 되도록 출국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사연은 같은 봉제공장에서 일하던 여성과 2008년부터 사실혼 관계로 있게 되었고, 최근에 부인이 임신 6개월이 된 상태에서 부인과 아이를 두고 혼자 본국으로 갈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보호 일시 해제로 나온 이주노동자와 함께 ⓒ이영 성공회 신부 제공

산모였던 부인 역시 장애가 있어 건강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를 돌봐 줄 사람(가족)이 주변에 없기 때문에 보호일시해제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상담 이후 출입국에 이를 통보하고 조치해 줄 것을 요구하자, 후세인은 법적 절차를 통해 보호일시해제를 받았고, 그 후 그는 결혼이민자 비자(F-6)를 발급받았다.

이 과정을 통해 알게 된 후세인 씨가 찾아와 귀화신청을 도와 달라는 부탁이었다. 일반귀화 요건에 따라 귀화신청에 필요한 제반 서류를 다 제출하였지만, 면접 이후 불허결정통지서를 받았다는 것이다. 불허의 사유가 국적법 제5조(일반귀화 요건) 3항에 의해 ‘품행 미 단정’이라고만 적시되어 있는데, 그 사유를 명확하게 알려달라고 해도 알려 주지 않았다고 한다.

법무부를 통해 불허 사유인 ‘품행 미 단정’에 대한 확인을 다시 시도했고 아래와 같은 답신을 받았다.

대한민국은 귀화허가 신청자에게 국적법상 귀화허가의 요건 중 하나로 ‘품행이 단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바, 이는 외국인의 성별, 연령, 직업, 가족, 경력, 범죄경력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대한민국의 사회 구성원이 되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의 품성과 행동을 갖추고, 대한민국의 법 질서를 지키고 존중하려는 뚜렷한 의사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상기와 같이 국내법 위반 사실로 귀화 허가 신청 건이 불허되었다고 하더라도, 귀화 허가 신청은 그 횟수나 시기에 제한을 두고 있지는 않으므로 관련 요건, 자료 등을 갖추어 재차 귀화허가 신청을 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품행단정’의 요건으로 성별, 연령, 직업, 가족, 경력, 범죄경력 등 여려가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한다고, 하지만 ‘품행 단정’에 대한 미사여구(美辭麗句)일뿐 명확하지 않음으로 인해 오히려 공무원들의 자의적인 해석에 따라 재량권이 남용될 소지가 훨씬 더 크다. ‘품행단정’이라는 불명확한 요건은 침해의 최소성 원칙을 위반하고, 과잉금지 원칙에도 위배되는 악법이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지난 2012년에 “품행단정의 상세한 기준이 없어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법무부에 기준안 마련을 권고했지만, 하지만, 아직도 품행단정 명확한 요건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다만, 법무부는 친절하게도 귀화 허가의 신청 횟수와 시기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친절한 안내만 해 준다.

이주노동자에 대해 관련된 악법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미등록이주노동자의 단속 이후 권리구제(임금체불, 거주보증금, 기타 재산 등)를 위해 보호일시해제를 두고 있지만, 여기에도 ‘도주의 우려’(출입국관리법 제66조 1항1)라는 자의적 판단과 심사기준이 출입국 소장으로 국한되어 이주노동자의 권리구제가 차단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차단된 권리구제를 위한 ‘보호일시해제’

동생처럼 생각하는 모누가 일하던 공장이 화재로 전소되었다. 인명피해가 없어 다행이었지만, 화재로 인해 사업주도 큰 손실을 입었고, 모누 역시 500여만 원에 이르는 임금을 받지 못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성실했던 모누는 이후 공장을 옮겨 일을 하게 되었는데, 공교롭게 출입국에 단속이 되었다.

▲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합법화를 촉구하고 있다. ⓒ이영 성공회 신부 제공

단속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하지만, 출국하기 전에 임금체불 1,100만원과 월세 보증금 1,000만원이 있어 이를 해소하기 위해 출입국에 보호일시해제를 요청하였다. 1달여가 넘어서야 불허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불허의 사유는 단 한 줄로 ‘청구 시 첨부된 서류의 검토 결과 신뢰하기가 어려움으로 주문과 같이 결정함’이라는 회신이었다. 검토 결과가 사실적 근거 사항과 입증 여부 등에 대한 내용은 생략된 채  ‘신뢰하기 어려움’이란 심증만으로 해석된 자의적 답변을 받고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확한 사유를 듣고자 면담을 요청했고, 그 자리에서는 더욱 기가 막힌 이야기를 들었다. “보호일시해제 규정은 있으나 임금체불이나 임대차 보증금으로는 보호일시해제를 하지 않는다.”는 담당공무원의 발언이었다. 분명 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담당공무원은 공무조차도 부정하는 상황이었다. 이어 담당공무원은 “결과를 우편으로 발송했으니, 할 얘기 없으니 가라!”고 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그동안 이주현장에서 숱하게 봐 온 모습들이다. 권리구제를 받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주노동자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법과 제도들이 결국은 부메랑이 되어 이주노동자에게는 또 하나의 족쇄가 되어 왔다는 것을......

문득,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떠오르는 이유는 왜 일까! 프로크루스테스의 달콤한 유혹의 목소리가 이주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잘라내고 옥죄고 있다. 이주노동자에게 편안하고 안락한 침대에 누우라고 한다. 그리고 언제든지 사용하라고 한다.

이영  eotjdek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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