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도 못 가보고 숨져"…의료 사각지대 방치된 이주노동자들

[연합뉴스] 입력 2018-04-06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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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아프다던 이주노동자 진료 못 받은 채 숙소서 잇따라 사망
"열악한 환경 속 질병 키워…의료 보장·지원 제도 보완해야"

"병원도 못 가보고 숨져"…의료 사각지대 방치된 이주노동자들

최근 충북 음성의 한 공장 기숙사에서 숨진 우즈베키스탄 국적 이주노동자 A(45)씨는 자신이 폐렴에 걸렸는지조차 몰랐다.

폐렴은 일반적으로 신생아, 어린이, 노인 등 면역력이 약한 사람이 아닌 성인이라면 치료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신을 접종한다면 예방도 가능하다.

고열과 기침에 시달리던 A씨는 지난달 23일 공장에 "몸이 아파 쉬고 싶다"며 기숙사로 돌아갔다.

좁은 방에서 혼자 병마와 씨름하던 A씨는 다음날 오후 3시께 동료에 의해 숨진 채 발견됐다.

119 구급대원은 "도착 당시 A씨가 숨진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나 몸이 굳은 상태였기 때문에 병원으로 옮기지 않고 경찰에 인계했다"고 전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A씨의 사인은 급성 폐렴으로 밝혀졌다.

하청업체 소속 A씨는 지난달 7일부터 공장에서 숙식하며 조립 업무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공장 관계자는 "근로자들은 모두 4대 보험에 가입돼 있다"면서 "A씨가 병원을 갔었는지는 개인 사정이기 때문에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중부권 대표적인 산업단지가 자리 잡은 충북 음성에는 가동 중인 업체가 1천600여 곳에 달하는데 등록된 외국인 노동자가 8천명 가까이 된다.

영세한 업체가 많다는 점을 고려할 때 불법 고용한 외국인 노동자까지 합치면 실제는 1만명을 웃돌 것으로 추산된다.

도심과 떨어진 외딴 농촌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처우는 몹시 열악하다.

음성노동인권센터 관계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병원에 가려면 읍내로 나와야 하는데 차도 없고, 말도 잘 안 통하기 때문에 혼자 공장을 나설 수 없는 형편"이라며 "좁은 골방이나 컨테이너에서 병을 키우다 심각한 지경에 이르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전했다.

지난달 20일에는 전남 목포에서 이틀 동안 결근한 외국인 근로자가 숙소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러시아 국적 이주노동자 B(46·여)씨는 조선업체에서 일하면서 숙소로 배정된 원룸에서 지냈다.

B씨는 회사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몸이 아프다'는 말을 남긴 뒤 숨지기 이틀 전부터 출근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B씨가 방바닥에 엎드린 자세로 쓰러져 숨져 있었고, 외부인 침입이나 몸싸움을 벌인 흔적은 없다"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국과수에 B씨의 사인을 밝히기 위해 부검을 의뢰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펴낸 '건설업 종사 외국인근로자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들은 주로 격오지의 댐, 교량, 도로현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컨테이너 등 임시 주거시설에 거주하는 비율도 높게 나타났다.

이들 중 17.1%는 다치거나 병에 걸려도 산재보험으로 치료와 보상이 가능하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가인권위 관계자 "일본은 미등록 체류자라도 직장건강보험 가입을 허용하고 있다"면서 "우리도 체류 자격과 관계없이 모든 이주민을 의료보장제도에 편입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안건수 청주이주민노동인권센터 소장은 "우리도 일하다가 아파서 병원에 가려면 상사의 눈치를 보는데 외국인들은 오죽하겠느냐"며 "그들이 실질적으로 의료서비스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지원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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