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주노동자의 숨죽은 가슴과 싸운다

전국으로 달려가는 이주노동자노동조합 투투버스

  • 이율도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은 지난 1월, 이주노동자 대투쟁을 계획했다. 안산과 수원에서 열일하고 있는 지구인의정류장과 수원이주민센터를 찾아가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이주노동자를 괴롭히는 3대악과 싸우기 위한 전략 회의만 2달이 걸렸다.

이주노동자를 괴롭히는 3대악은 ‘사업장 이동의 제한’, ‘근로기준법 63조’, ‘숙식비 강제 징수 지침’이다. 쉽게 말해 ‘회사를 그만둘 자유가 없음’을 의미한다.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만약 우리가 매일 술 먹고 진상부리는 팀장, 사사건건 폭언하는 과장, 갑자기 뒤에서 끌어안으며 슬쩍 가슴을 만지고 지나가는 사장과 일을 하고 있는데, 회사를 그만두려면 사장을 허락을 받아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사장의 허락을 받지 못해 노동청에 가서 소송해야 한다면? 지옥도 그런 지옥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모두 현실이다. 이주노동자는 현행법상 사용주의 허락이 있어야 이직 또는 퇴직할 수 있다.

근로기준법 63조의 문제는 또 어떠한가.[1] 근로기준법 63조에 해당하는 노동자는 사용주가 한 달 내내 24시간씩 일을 시키고 휴일을 주지 않아도 괜찮다. 그래서 지금 수많은 농장, 축산농장, 어업현장의 이주노동자들은 대개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고 기껏해야 한 달에 두 번 정도를 쉰다. 하지만 한국은 법치국가 아닌가. 이런 현장에서도 표준근로계약서는 쓴다. 문제는 일은 사장님 법대로, 임금은 나라님 법대로 받는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하루 10시간씩, 28일을 일한다고 해도 이주노동자가 받는 급여는 하루 8시간, 26일 치의 월급 뿐이다. 그래서 월급은 얼마나 일했든 150만 원 남짓이 된다.
 
2018년 이주노동자들 사이에 최대 이슈는 ‘너희 사장은 기숙사비 얼마 떼냐?’다. 이주노동자는 자국에서 사용자와 사전 근로계약을 맺고 입국한다. 이때 이주노동자는 숙식을 사용주가 제공하는 것으로 알고 들어온다. 그런데 2017년 2월 고용노동부는 사용주들에게 대대적인 광고를 한다. 이주노동자에게 숙식비를 공제할 권한을 부여하니 이 지침을 적극 활용하여 사업에 참고하라는 광고다. 이 지침이 떨어지고 난 후 사용자들은 쾌재를 부르며 이주노동자에게 숙식비를 제하고 임금을 주기 시작했다. 독자는 여기서 또 의문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먹고 자는 것을 제공하는데 당연히 돈을 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 지침은 현행법에 정면으로 어퍼컷을 날리는 위법적인 지침이다. 근로기준법 43조에 따르면 임금은 일한 만큼 전액을 지급해야 하고 공제를 할 때도 단체협약을 통해서만 가능하다.[2] 하지만 필자는 많게는 70만 원까지도 제하고 임금을 받은 이주노동자의 사례를 봤다. 그렇다면 70만 원씩 내고 이주노동자가 사는 기숙사는 어떤 곳일까? 화장실은 밖에 있고, 방문에는 잠금장치가 없다. 바닥 난방도 되지 않는다. 한 방을 4~5명씩 함께 쓰고 심하면 남녀가 방에 선을 그어 놓고 혼숙을 하는 비닐하우스이거나 컨테이너이다. 더 심한 사례로는 화장실이 없는 숙소를 받아 집 근처에서 삽으로 땅을 파고 거기에 용변을 보는 여성 이주노동자들도 있다.

투쟁의 목표는 확실했다. 어떤 방식을 취할 것인지가 문제였다. 한 달에 2번 쉬면 많이 쉬는 이주노동자들을 서울로 모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가 그들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뜻을 함께하는 노동자와 활동가가 함께 버스를 타고 이주노동자가 있는 현장에 투쟁 투어를 떠나기로 한 것이다. 이름하여 ‘이주노동자 투쟁 투어 버스!’ 줄여서 ‘투투버스’다.
 

공동투쟁단은 5월 한 달간 이주노동자가 있는 현장을 찾아 싸우고 있다. 농장 길바닥에 앉아 이주노동자의 증언을 듣고 구호를 외친다. 그리고 ‘평등’을 노래한다. 이주노동자의 투쟁가는 꽤 구슬프다. ‘우리는 노동자. 이름도 사람도 다르지만, 우리도 노동자. 우리는 평등을 원해. 우리는 평등을 원해.’ 투쟁의 ‘투’자도 모르는 이주노동자에게 구호와 투쟁가를 가르치며, 이주노동자에게 평등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활동가의 애씀을 눈치챈 이주노동자들은 낯선 멜로디와 율동(팔뚝질)을 수줍게 따라 하며 괜히 창밖을 내다보기도 한다. 그래도 노랫말이 적힌 종이에 눈을 떼지 못한다.

우리가 주야장천 외치는 ‘평등 투쟁’의 성과는 아마 이 이주노동자들일 것이다. 이들은 투투버스에 올라 나와 같거나 더한 처지의 노동자를 만난다. 또 그것을 지지하는 한국인이 있다는 것을 경험한다. 이들의 눈빛은 이전과는 다르다. 버스에 오를 때의 눈빛과 버스에서 내릴 때의 눈빛의 차이. 그것은 끌려가는 것과 끌고 가는 것의 차이일 것이고, 노예와 노동자의 차이일 것이다. 여주지역 사업장에선 놀라운 변화가 있었다. 우리가 오는 것을 사전에 알았지만 쭈뼛쭈뼛하고 무서움에 떨었던 이주노동자들이 우리가 간 후 야밤에 대책회의를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우리가 사장에게 하루에 8시간만 일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어? 일주일에 하루라도 쉴 수 있다고 말해볼까?’ 저들이 나눈 말은 입에서 새어 나온 것이 아니다. 가슴에서부터 새어 나와 이내 말이 되고 서로에게 힘이 되었다. 이것이 변화의 시작이 될 것이라 믿는다.

우리는 투투버스가 몇몇 사건을 해결하러 떠나는 짧은 투쟁으로 기록되지 않기를 바란다. 대신 이주노동자를 들썩이게 하는 ‘운동’이 되길 바란다. 이주노동자의 숨죽은 가슴과 투쟁하는 투투버스가 달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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