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 수천 km 날아왔지만, 인천공항에서 만난 한국 사람은 수갑을 들어 보였다. 비행기에 올라 다시 돌아가라는 뜻이다. 살던 곳인 앙골라로 보내는 것도 아니었다. 같은 아프리카 땅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미비아로 내쫓으려 했다.

다시 돌아가라는 것은 사자 굴로 내모는 거예요! 나미비아 비자도 없는데 가서 어떡하라고요.”

루렌도는 가슴을 치며 울었다. 무릎이라고 꿇고 싶었다. 아내 바테체도 남편을 보며 울었다. 네 자녀는 멍하니 부모를 바라봤다.

“도와주세요. 저희는 돌아가면 죽습니다.”

“기다려주세요. 제가 스위스로 돌아가서 UN난민기구에 신고할게요.

루렌도 가족에게 구원의 손을 내민 건 스위스 사람이었다. 한국 정부가 루렌도 가족을 나미비아로 강제 송환하기 직전, 스위스 제네바 출신 통역사가 루렌도의 손을 잡았다. 루렌도는 통역사에게 지금이 세 번째 송환시도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땅에서 자신의 말을 온전히 들어준 또 다른 이방인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지난 1월 12일의 일이다.

루렌도 가족은 터미널에 있는 소파 몇 개를 이어 붙인 공간에서 의식주를 주로 해결한다. ⓒ루렌도 씨 제공

루렌도 가족이 국제전화를 할 형편이 아니라는 걸 UN난민기구는 잘 알았다. 루렌도 가족에겐 유심칩이 없었다. 난민기구 쪽은 왓츠앱 메신저를 통해 연락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 지부와도 연결이 됐다.

한국의 공익 변호사가 1월 14일 공항으로 찾아왔다. UN난민기구는 루렌도 가족을 위해 통역비용을 댔고, 난민인권센터는 긴급구호자금을 전달했다.

불어를 쓰는 루렌도는 인천공항공사 사람들과 대화를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 난민인정회부 심사와 강제송환 때를 제외하고 불어 통역사를 만난 적 없다.

루렌도는 불어만 할 줄 알았다. 공항공사 사람들은 불어를 못 했다. 공항공사 사람들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말을 걸었다. 스마트폰에 한국말로 무어라 말하고, 어설프게 번역된 불어를 루렌도 가족에게 보여주는 방식으로 대화를 나눴다. 제대로 소통이 될 리 없다.

‘인천광역시 공항로 271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루렌도 가족 6명은 명품 매장이 즐비한 이곳에서 산다. 한국 정부가 3차 강제 송환에 실패하고, UN난민기구까지 움직이자 공항 관계자는 루렌도 가족을 46번 게이트에 방치(?)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영화 <터미널>에서 주인공 톰 행크스가 미국 JFK 공항에서 살 듯이, 루렌도 가족은 한국의 인천공항에서 사는 셈이다.

영화 속에서 톰 행크스는 JFK 공항에서 친구도 사귀고 이성과 로맨스도 나누지만, 현실 속 루렌도 가족은 인천공항에서 홀쭉해지는 주머니 움켜쥐고 생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미국 영화와 한국의 현실은 극과 극이다.

루렌도 가족은 터미널에 있는 소파 몇 개를 이어 붙인 공간에서 의식주를 주로 해결한다. ⓒ 루렌도 씨 제공

부모는 하루 한 끼… ‘여권’ 없어 치약 칫솔 못 사

루렌도-바테체 부부의 자녀는 넷이다. 모두 열 살이 안 됐다. 9살 난 남자아이가 맏이고, 아래로 쌍둥이 남매와 막내 남자아이가 있다.

아이들을 하루 두 끼만 먹는다. 부모는 한 끼로 하루를 버틴다.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수중에 남은 돈은 1600달러 남짓. 지금처럼 하루 40~50달러씩 쓴다면, 약 한 달 뒤면 빈털터리가 된다.

엄마 바테체는 파리바게뜨 방문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파리바게뜨 점원도 불어를 못하지만 식빵 3~4 봉지와 우유, 잼을 사는 건 문제없다. 이게 여섯 가족의 식사다.

루렌도 가족이 공항 한 구석에서 식빵에 잼을 발라 먹고 있으면 여행객들이 신기한 듯 바라보곤 한다. 사진을 찍는 이들도 있다. 자신들의 생존이 호기심 대상이라는 게 비참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공항공사 사람들은 인사조차 안 해요. 인사를 안 한다는 것은 우리를 무시하는 것 아닌가요?”

식빵을 한 번에 다 먹으면 안 된다. 더 먹고 싶어 입안에 침이 고여도 빵봉지를 묶어야만 한다. 아이들이 밤마다 배고프다고 보채기 때문이다.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먹지 못하는 건 또다른 고통이다. 공항 생활 한 달 동안 제대로 된 과일과 채소를 먹지 못했다. 변호인단이 급한 대로 비타민 정을 가져왔지만 역부족이다. 바닥으로 떨어진 엄마, 아빠의 컨디션을 비타민 몇 알이 회복시키지 못했다.

두 번째 끼니 저녁은 햄버거 혹은 백반이다. 한 사람당 한 개씩 먹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 보통 햄버거 세트 2~3개로 여섯 식구가 나눠 먹는다. 이들 가족은 난민인정회부 심사가 있던 지난 1월 2일부터 1월 9일까지만 식사를 제공 받았고 그 외에는 나홀로 서야했다.

사실상의 구금장소인 송환대기실로 끌려가길 거부한 지난 12일 이후부터 루렌도 가족은 터미널에서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여행객들이 모두 잠든 사이, 바테체 씨는 빈 화장실에서 아이들을 하루에 한 번 씻긴다. ⓒ 루렌도 씨 제공

“식당에서는 여권을 보여달라고 하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에요.”

문제는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물건이 있다는 점이다. 치약과 칫솔이 떨어져 사러 갔더니 “여권과 항공권을 보여주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대답을 듣고 발길을 돌렸다.

루렌도 가족은 현재 여권이 없다. 입국 불허 결정이 떨어지자마자 한국 정부는 가족 모두의 여권을 가져갔다. 한 난민 전문 변호사에 따르면 “강제 송환시킬 때 여권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전에 뺏는 것 같다”고 말했다.

루렌도 가족에겐 씻는 것도 전쟁이다. 현재 터미널 샤워실은 항공권이 없으면 공짜로 이용할 수 없다. 여행객들이 모두 떠나거나 잠든 시각, 루렌도 가족은 샤워가 가능한 화장실에서 몰래 씻는다.

공항에서 장기간 살 거라 예상 못한 루렌도 부부는 수건과 치약을 충분히 챙기지 못했다. 가지고 온 캐리어는 고작 세 개. 아이들에게 읽어 주기 위해 들고 온 동화책, 옷, 신발 등이 전부다.

연중 최저 기온 20도에서 살던 이들에게 한국의 겨울은 그야말로 듣도 보도 못한 ‘겨울 왕국’이다. 잠자리 문제는 가족에게 큰 숙제다. 처음에는 등받이가 없는 소파를 이어 그 위에서 잤지만, 사람들의 시선과 추위를 견디는 게 쉽지 않다.

탑승객들이 다 빠지고 빈 어린이 놀이방이 아이들을 재우기 딱 좋다. 하지만 오래 이용할 수 없다. 관리자가 나타나는 새벽 5시에는 아이들을 모두 깨워 자리를 옮겨야 한다. 벌써 3주 가까이 반복된 일이다.

공항에서의 삶은 영화와 달리 지루함의 연속이다. 루렌도 가족은 종일 소파에 앉아 있거나 누워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답답하면 아이들과 함께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아이들은 가끔 놀이터인냥 터미널에서 뛰어놀기도 한다. 그럴 때면 아빠 루렌도는 아이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아이들이 탑승객, 특히 공항 관계자들의 심기를 건들지 않을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이들은 웃으며 즐겁게 놀곤 한다.

루렌도 가족 아이들이 공항에서 노는 모습. ⓒ 루렌도 씨 제공

루렌도 가족, 콩코 출신이란 이유로 ‘탄압’

이들은 어떻게 겨울왕국인 한국까지 왔을까.

“불어식 발음도 그렇고, 이 백신 자국 때문에 바로 콩고민주공화국 사람인 걸 들켜요.”

루렌도, 바테체 부부는 콩고민주공화국 출신의 앙골라 국적 소유자다. 콩고민주공화국은 불어를 쓴다. 반면 앙골라는 포르투갈어를 쓴다. 루렌도 부부가 포르투갈어를 서툴게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포르투갈어를 말할 때 불어 억양이 묻어난다.

출신지를 판별하는 방법은 또 있다. 모든 콩고민주공화국 사람들에게는 왼팔 안쪽에 백신 흉터 자국이 있다.백신 자국이 일종의 낙인이 되면서 앙골라 사람들은 콩고 사람들을 구별한다.

콩고 사람들은 앙골라에서 ‘2등 시민’ 취급을 당했다. 앙골라 정부가 콩고 사람들의 추방을 주도했다. 특히 앙골라와 콩고 국경선 인근에 위치한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일하는 콩고 사람들을 앙골라 정부가 집중적으로 쫓아내고 있다.

2018년 10월, UN이 집계한 한 달 동안 앙골라에서 쫓겨난 콩고 사람은 33만 명. 앙골라 소속 군인과 경찰이 콩고 사람들을 집단 학살한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루렌도 가족도 차별을 피하지 못했다. 지난 11월 16일, 택시를 몰던 루렌도는 경찰차와 부딪히는 바람에 SIC(Criminal Investigation Service)라고 불리는 특수 경찰에게 잡혀갔다. 영장은 없었다. 죽기 싫으면 이 나라를 떠나라는 식이었다. 아내 바테체는 남편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앙골라인이라면 얘기를 들어 보기라도 할텐데, 콩고 출신에게는 적용이 안 돼요.”

남편이 없는 집은 안전한 공간이 아니었다. 아내 바테체 남편이 없는 사이 경찰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아이들이 방에서 자고 있었지만 가해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바테체의 입을 막고,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기도 했다. 안경이 부러진 것도 그 때문이다. 그 사건 이후 바테체는 복통에 시달리면서 매일 진통제로 버티고 있다.

루렌도 가족은 인천공항에서 살고 있다. ⓒ루렌도 제공

고향으로 가는 것도 쉽지 않다. 콩고에는 50여 개에 달하는 무장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풍부한 자원이 오히려 독이 됐다. 반군은 다이아몬드나 구리, 콜탄과 같은 비싼 광물을 팔아 무기를 산다. 2017년 12월, 유니세프는 콩고의 내전과 난민사태로 한 해에 40만 명 이상의 아이들이 기아와 영양실조로 목숨을 잃을 것이라 예상했다.

수감 장소에서 나온 루렌도는 가족과 함께 그날 바로 짐을 쌌다. 그의 친구가 루렌도의 집을 팔아 돈을 마련해줬다. 난민이 되길 결심한 것이다. 난민이 되기 위해서는 전 재산을 걸어야 했다. 그래도 루렌도는 꿈에 부풀었다.

‘여기서 떠나면 내 자식들이 부모 출신 성분 때문에 차별받는 일은 없겠지.’

집을 팔아 1만7500 달러를 챙겼다. 6명 항공료를 마련하는 것도 버거운 돈이지만, 복병은 따로 있었다. 콩고 출신 사람이 해외로 나가려면 앙골라 공무원에게 돈을 챙겨줘야 했다. 약 5000달러가 이렇게 사라졌다.

루렌도 가족이 한국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차별없이 인권이 보장된다는 나라 중에 당시 당장 떠날 수 있는 곳이 한국이었다. 한국 대사관에서 관광 비자를 받아 유엔난민기구 한국지부에서 난민을 신청하기로 마음먹었다.

12월 21일, 루렌도 가족은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앙골라 루안다 공항에서 출발해서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를 경유해 인천으로 향하는 노선이었다. 18시간이면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듯했다.

한국에서 피부색과 출신지에 상관없이 행복하게 사는 게 원하는 전부였다. 언어는 배우면 그만이었다. 차별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가족 6명의 항공료 1만 달러가 아깝지 않았다.

3개의 캐리어에는 대부분 옷가지와 신발로 가득 차있다. ⓒ 루렌도 씨 제공

‘혈뇨 증세’로 의사 요청했지만 묵살

“불회부결정이 났으니 돌아가세요. 이의신청은 안 됩니다.”

기대는 금방 물거품이 됐다. 루렌도 가족은 인천공항에서 난민심사 자체를 거부당했다. ‘이 사람이 입국해서 난민 심사를 본격적으로 받을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과정에서 탈락한 것이다.

이유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결정났다고 법무부 소속 인천공항출입국 외국인청 관계자는 고지했다. 서류도 없는 구두 통보였다. 두 시간도 안 돼 끝난 인터뷰로 어떻게 자신들을 심사조차 필요 없는 ‘가짜 난민’으로 분류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난민인정회부 심사 당시에 바테체는 “복통이 심하니 의사를 불러달라”고 법무부 관계자에게 부탁했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알았다,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의사는 오지 않았다. 당시 바테체는 소변을 볼 때마다 피를 흘렸다. 현기증도 느꼈다. 약 구할 방법을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약국에 가는 건 꿈도 못 꿨다. 아이들 밥값을 약 사는 데 쓸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바테체는 앙골라에서 가져온 진통제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유일하게 인천공항에서 행복했던 기억은 청소하던 한국인에게 커피를 받았을 때예요.”

어느 새벽, 바테체는 바닥에 떨어진 상자를 치우는 한 청소 노동자를 도운 적이 있었다. 일과를 마친 청소 노동자는 감사 표시로 커피믹스 두 봉지를 바테체에게 줬다. 그것이 바테체가 인천공항에서 받은 유일한 환대다.

인터뷰를 마치고 면세점 거리를 산책 삼아 걸으면서 바테체와 대화를 나눴다. 그녀에게 “공항에서 사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바테체는 의외의 말을 했다.

“몸은 아프지만 마음은 편해요. 여기서는 적어도 죽거나 성폭행 당하지 않으니까요. 공항 밖으로 나가지 못하지만 자유로워요.

야외로 나갈 수도 없고, 따뜻한 잠자리도 없는 이곳에서 자유를 느끼다니. 한국 정부는 루렌도 가족 6명이 어서 공항에서 떠나주길 바란다. 이 작은 자유도 위태로워 보인다.

지금 한국 인천공항 제1터미널에는 아프리카에서 온 어떤 가족들이 살고 있다. 영화가 아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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