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수용 않는 ‘난민수용국’ 오명 벗어야대한변협·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난민법 개정방향에 관한 심포지엄 공동개최
북한이탈주민 강제북송 등 사례 지적 … 국제인권기준 부합하는 난민법 마련해야
강선민 기자  |  news@koreanbar.or.kr
폰트키우기폰트줄이기프린트하기메일보내기신고하기
[762호] 승인 2019.11.25  09:13:05
트위터페이스북미투데이요즘네이버구글msn

6.25 전쟁으로 수많은 난민을 낳은 국가에서 난민보호국가 지위로 올라섰지만, 전 세계 난민이 마주한 대한민국의 장벽은 여전히 높다. 이에 국제인권조약과 난민협약 정신을 반영한 난민제도 정비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이찬희)는 지난 21일 대한변협회관 14층 대강당에서 유엔난민기구(UNHCR) 한국대표부와 공동으로 ‘난민법 개정방향에 관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난민법 개정안을 검토하고, 난민인정 절차 및 기준을 체계적으로 정비하기 위해서다.

이찬희 협회장은 “난민 문제는 국제사회가 함께 풀어가야 할 인권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국가 주권 재량으로 난민 수용 여부를 결정하거나 난민을 배척하는 혐오정서가 사회에 팽배하기도 한다”며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난민제도를 구축하고 난민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고 개회사를 전했다.

제임스 린치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대표(대독: 오흐르 르브샤드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보호책임자)는 “전 세계 난민 7080만 명을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해 국제사회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한국 난민제도를 바로 세울 수 있도록 변협과 한국 변호사들이 적극 역할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우리나라는 2013년 아시아 최초로 독립된 난민법을 제정·시행했다. 난민 비호를 위한 국제적 기준에 발맞춰 난민심사과정의 투명성을 보장하고, 난민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법 제정 취지와 달리 우리나라 난민인정률은 OECD 가입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또한 난민법이 외국인의 국내 체류 연장 등 목적으로 남용되고 있다며 정부와 국회에선 개정·폐지안까지 내놓은 상태다.

노동영 변호사는 “난민신청자 강제송환을 가능케 하는 방향으로 난민법을 개정하는 것은 입법취지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국제법상 강제송환금지원칙에도 반한다”고 지적했다.

채현영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법무담당관도 “강제송환금지원칙은 국제관습법으로 간주되는 규범력이 있다”면서 “유엔난민기구 집행위원회는 난민 추방·구금 등 조치를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적용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제사회가 채택한 1951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과 1967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의정서’는 강제송환금지원칙을 난민 구호 규범으로 명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난민법 제3조 역시 동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국내외 규범에도 불구하고 난민이 강제로 추방되거나 본국으로 송환되는 사례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최근 정부는 선상에서 동료 16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북한 선원 2명을 강제북송했다. 살인 등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자는 북한이탈주민으로 보호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변협은 이러한 정부 조치가 반인권적이라며 지난 14일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변협은 성명을 통해 △강제북송 법적 근거 미흡 △범죄사실 및 보호 여부 등 조사 불충분 △변호인 조력권 무력화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같은 날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도 “이번 강제북송 사건은 한국 정부가 국제인권 규범을 위반한 것”이라며 “북한 선원들의 난민 자격심사 권리를 부인하고, 고문·박해가 우려되는 국가로 송환하는 것은 반인도적 조치”라고 밝혔다.

2004년 유엔 인권위원회 결의로 설치된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한반도 주변국들이 북한이탈주민에 대해 강제송환금지원칙을 지킬 것을 촉구해왔다.

현행 난민심사제도가 난민 ‘수용’이 아니라 ‘국경 막기’ 성격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상현 변호사는 “현행 난민심사제도는 신속한 난민 인정이 아닌 난민 신청 남용 방지를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난민 면접 기회를 명문화해 난민신청자가 자신의 박해 사유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일 변호사도 “난민전담공무원이 난민신청자에게 유리한 증거를 찾고 박해 위험이 존재하는지 사실조사를 수행하는 역할이어야 하는데, 난민신청자의 거짓 여부를 밝히는 ‘특별사법경찰’ 역할로 이해되고 있다”며 “난민신청자를 도와야 할 통역인조차 난민심사관 편에 서서 난민신청자 신청 진위를 추궁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7월에는 법무부 서울출입국·외국인청 공무원이 난민 면접조서를 대량으로 허위작성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 변협은 법무부를 방문해 진상조사 및 재발방지 등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한 바 있다. 법무부는 문제가 된 난민신청 942건을 전수조사하고 이 중 55건을 직권취소했다.

이탁건 변호사는 “허위 면접조서 피해사례는 구체적인 법령 위임과 외부 심사절차 부재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며 “난민법 취지를 몰각한 행정조치가 난민신청자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난민법 등 관련 제도 개선 방향이 행정청을 위한 신속심사에 초점이 맞춰져선 안 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난민신청자를 위한 절차적 정당성 확보가 우선이라는 의견이다.

최계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약식절차 확대보다는 난민심사 인력을 적정한 수준까지 충원하고 전문성을 향상시키는 것이 현재 상황에서 더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장수정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 사무관은 “미국의 경우 이민항소위원회(BIA)가 난민심사를 간소화해 사건 적체 현상을 해결하려 했지만, 당사자들이 심사 절차에 불만족하면서 연방항소법원에 소를 제기하는 건수는 되려 증가했다”며 “신속심사제도가 난민신청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면 난민 인권 보호는 더 취약해질 수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저조한 난민인정률에 더 해서 실상 ‘신속한 난민불인정결정’을 위한 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은 국제인권조약과 난민협약 정신에 반한다는 견해를 공통적으로 내놓고 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통계월보’에 따르면, 1994년부터 올해 9월 말까지 우리나라에 접수된 난민 신청은 5만 9674건이며, 심사가 완료된 경우는 2만 6205건이었다. 그 중 심사를 마쳐 난민으로 인정된 건은 984건에 불과해 난민인정률이 3.7%에 그쳤다. 지난해 기준 OECD 가입국 평균 난민인정률은 약 30%다.

이 밖에도 심포지엄에선 난민심사제도 개선 과제로 ▲심사관 전문성 및 난민위원회 독립성 확보 ▲난민 면접 명문화 ▲난민 국가별 통역 제공 ▲관련 자료 열람 및 복사 권한 부여 ▲변호사 조력을 받을 권리 보장 방안 등이 논의됐다.

변협은 법무부가 올해 2월 검토를 요청한 ‘난민법 및 출입국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해 난민신청자 권리를 제약하는 조항들을 개선할 것을 요청했다. 변협은 향후 난민신청자 심사와 체류관리가 체계화될 수 있도록 입법 등을 지원할 방침이다.

/강선민 기자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