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보는 외국인에게 웃으라고요?"…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비친 G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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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2 06:00 CBS사회부 박종관 기자

'위기를 넘어 다함께 성장'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서울 G20 정상회의의 개막을 맞은 11일 오후 이주노동자들의 쉼터가 있는 서울 창신동의 비탈진 골목길에는 깊은 한숨이 흘렀다.

단속에 쫓기고 기계에 다치고 월급은 떼이기 일쑤인 우리 시대의 '전태일'들은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법의 테두리 밖에서 가장 낮은 삶을 살고 있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바라크(35) 씨는 지난 여름까지 경기 양주의 플라스틱 사출공장에서 주야간 교대 근무로 하루 13시간 가까이 일했다. 일이 워낙 힘들어 한국인들은 하루 일하면 혀를 내두르고 돌아가는 공장에서 바라크 씨는 혼자 4개의 기계를 돌려야 했다.

최소한의 생활비를 남기고 달마다 고국에 남아있는 가족에게 돈을 보내는 보람으로 하루하루를 버텼지만 이제는 다른 공장을 찾고 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사업주의 차별 탓이다.

바라크 씨는 "원래 한국인이면 3, 4명이 필요한 일을 나한테는 일, 일 외쳐가며 혼자 하라고 시켰다”면서 “힘들게 일하다 다쳤는데도 병원에 한 번 와보지도 않는 사장에 대해 섭섭한 기분도 든다"고 토로했다.

한국에 들어온 지 어느덧 20년, 이제는 우리말이 더 익숙한 네팔 출신의 수나스(40) 씨는 자주 밭은 기침을 토했다.

심장 판막에 이상이 생겨 유일한 수입원이었던 공사판의 막노동 일조차 나갈 수 없는 처지. 고등학교 3학년 큰 아이의 진로도 걱정이지만 정작 심장을 이식받기 위한 수술비는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수나스 씨는 "작년부터 갑자기 심장이 안 좋아져서 병원에 다니며 이식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면서도 "당장 가진 돈이 없어서 이식에 적합한 심장을 찾는다고 해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말끝을 흐렸다.

각종 공장과 공사판을 닥치는 대로 떠돌다 보니 근로기준법 상의 산업재해 인정은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상황. 한국 여성과 결혼해 네 명의 자녀를 키우고 있지만 아직 우리 국적을 취득하지 않아 국민건강보험 등의 혜택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코리안 드림'을 품고 한국 땅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G20 정상회의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처음 보는 외국인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라는 '세계예의지국' 한국의 친절은 피부색이 하얀 외국인에게만 해당된다.

수나스 씨는 "나라가 부자 나라니까 저렇게 좋아하지만 못 사는 나라 사람은 어디를 가도 차별이 많다"며 "하다못해 비자를 받으러 가도 미국이나 캐나다인은 바로 주지만 우리는 며칠씩 걸린다"고 하소연했다.

G20 정상회의는 이들에게 오히려 위기이자 공포였다. 정부는 지난 5월부터 최근까지 G20 성공개최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미등록 이주노동자, 이른바 불법체류자에 대한 합동단속을 벌였다.

단속 과정에서 베트남 출신의 한 이주노동자는 4m 높이 2층 창문에서 추락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이재산 사무처장은 "정부는 G20을 빌미로 미등록 이주노동자 뿐만 아니라 노숙인과 노점상까지 한 데 묶어서 마치 거리를 청소하듯이 쓰레기 취급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출입국 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지난 3월말 현재 이주노동자의 수는 합법과 미등록 체류자를 합쳐 56만명에 이른다. 하지만 수많은 산업 현장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여전히 '일회용품' 처럼 쓰이고 있다.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회사가 바쁘면 반드시 일을 해야 되고 똑같이 일을 해도 한국 사람처럼 돈을 주는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사장은 큰 잘못이 없어도 그냥 마음에 안 들면 잘라 버리거든요. 한국인 사장들이 우리를 일회용처럼 쓰는 거죠, 일회용." 방글라데시 출신인 띠뚜(37) 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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