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의 미나리, 이주노동자의 미나리

입력
 
 수정2021.05.25. 오전 9:05
원본보기
한 이주노동자가 미나리밭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상단) 영화 미나리의 한 장면(하단)

"미나리는 참 좋은 거란다. 아무 데서나 잘 자라고 부유하든 가난하든 다 먹을 수 있어. 맛있고 국에도 넣어 먹고 아플 땐 약도 되고 미나리는 원더풀이란다."


영화 <미나리>에서 윤여정 씨가 '미나리'에 대해 한 말입니다.
영화 속에서 윤 씨는 한국에서 미나리 씨앗을 들고 딸 모니카(한예리)를 위해 말도 통하지 않는 미국으로 건너간 할머니를 연기했습니다.


미나리는 주로 물가나 습한 곳, 음지에서 자랍니다. 심지어 미나리는 더러운 물도 가리지 않습니다. 영화 속 가족들도 낯선 환경인 미국에서 마나리처럼 강한 생명력으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합니다. 그래서 영화 <미나리>는 미국으로 떠난 한국인 이민자들의 이야기인 동시에 이민으로 세워진 나라, 미국에 정착하기 위해 애쓴 모든 이민자를 위한 헌사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한국인들 역시 바로 저 대사를 통해, 이민자로서 한국인들의 강인한 생존력에 공감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국에서 살고 있는 이민자들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요?

지난달 많은 분이 미나리 이야기를 했습니다.
배우 윤여정 씨가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미국 독립영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받으면서, 그리고 그녀의 탁월한 입담 역시 더 많은 얘기를 하게 했습니다.


미국에서의 그 미나리에, 한국에서의 다른 미나리 이야기를 더해 봅니다.

원본보기
미나리는 사계절 어느 때나 먹을 수 있다. 한 겨울 미나리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이주노동자의 집은 비닐하우스 안 ○○○?

전남 나주의 한 미나리 농장 옆에는 비닐하우스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비닐하우스 안 가건물에는 캄보디아에서 온 이주노동자 8명이 살고 있습니다.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진 방과 '부엌', '샤워실'답지 않은 샤워실이 있습니다. 화장실은 비닐하우스 외부에 있는데, 말 그대로 간이식입니다.

이들이 한 달에 200시간 넘게 일하면서 받는 월급은 170만 원. 여기서 기숙사비 24만 원, 전기세와 물세 등 6만 원, 건강보험 12만 원을 빼면 손에 쥐어지는 돈은 120만 원~130만 원입니다.

이들 중 한 청년이 이달 초 이주노동자 인권단체를 찾았습니다.
지난 2008년 캄보디아에서 한국으로 이주해온 미쌍인(한국이름:박미향) 광주·전남 캄보디아공동체 대표가 전한 사연은 이렇습니다.

박미향 대표/광주·전남 캄보디아공동체
2019년에 온 분인데요. 겨울에도 미나리를 키웠는데 동상까지 걸린 적 있다고 하고요. 이분은 몸이 아파서 저희에게 처음에 연락을 했지만 주된 상담 내용은 근무 시간(임금)과 사는 곳에 대한 얘기였습니다. 오전 6시부터 일을 하면 되는데 사장님이 오전 5시 30분부터 일을 시킨다거나, 오후 6시에 작업이 끝나야 하는데 더 일을 시킨다는 경우가 많고요. 잠도 비닐하우스 안에 임시로 지은 건물에서 자고요. 화장실, 샤외장 문제 등, 밥도 세 번 다 해 먹는데 음식하는 곳이 깨끗하지 않다고 해요"

점심시간 이외에 하루 10시간 넘게 미나리밭(미나리는 물에서 자란다)에서 일하다 보니 허리와 팔이 쑤시고 아픈 건 물론이고 오른쪽 발은 아예 굽었는데, 병원에 간 적도 없었다고 합니다. 병원에 가기를 생각하기 전에 그 청년에게는 잔업에 대한 보상, 임금이 중요했던 겁니다.


원본보기
이주노동자가 사는 비닐하우스 안 가건물(방)과 외부 화장실

임금 관련 문제와 관련해 월 수십만 원씩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김춘호 변호사 / 광주민중의집 운영위원

"농어촌 이주노동자들은 연장근무 등의 영향으로 실제 근로계약서보다 더 장시간 근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공장에서 일하는 분들과는 달리 근무시간 관련 증거 예를 들면 출퇴근 지문이나 카드 등이 없어서 노동청에 신고해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는 곳은 돈 문제를 넘어 안전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지난해 12월에는 경기 포천의 한 채소농장에서 일하던 캄보디아 이주노동자가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자다 숨졌습니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한파가 이어졌지만, 비닐하우스 안 난방기는 고장 나 있었습니다.

지난 4월에는 광주 화훼농장의 비닐하우스 기숙사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이주노동자들의 여권과 의류와 침구 등 살림살이는 다 타 버렸습니다.

현재 비닐하우스 안 가건물은 대부분 무허가입니다. 따라서 화재가 발생해 이주노동자에게 문제가 생기면 보상을 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또한, 비닐하우스 숙소는 이주노동자들을 내국인과 격리하다 보니 비닐하우스 안에서 무슨 일이 발생해도 외부에선 알 수가 없습니다. 또한, 숙소에 냉난방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거나 주방시설이 청결하지 못하고 샤워실이나 화장실이 외부에 노출되는 등 시설 측면에서도 열악해 기본적인 생존권 차원에서도 인권침해 요소가 크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비닐하우스 숙소는 이주노동자들을 고립시키는 하나의 작은 섬이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비닐하우스 안 숙소가 열악한 건 정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근로기준법은 비닐하우스를 노동자에게 숙소로 제공하는 걸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용노동부도 지난 1월부터 농어업 사업장의 비닐하우스 안 가설건축물 등을 숙소로 제공하면 고용허가를 내주지 않기로 했습니다. 다만 사업자가 숙소 개선을 약속하고, 이주노동자가 동의할 경우 3월부터 6개월 동안 적용을 유예했습니다.

"중소 농장주 숙소문제 부담...농협이 나서야"

올해 들어 광주·전남 지역의 이주노동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련 시민단체 12곳이 모여 '광주전남 이주노동자 인권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지난 3월에는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주노동자의 주거 환경을 전수 조사하고 적절한 주거 공간을 제공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는데요.

원본보기
광주전남 이주노동자 인권네트워크(지난 3월)

이 모임의 집행위원장에게 현재 가능한 대책이 무엇인지 물어봤습니다.

윤영대 집행위원장 / 광주전남 이주노동자 인권네트워크

"대농(농장을 크게 운영하는 분들)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중농들에게는 숙소 문제가 큰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농협중앙회와 지방자치단체, 중앙정부 이렇게 3자가 중심이 돼 군, 면 단위에 이주노동자 숙소를 신축하거나 빈집을 수리해 숙소로 제공할 수 있습니다. 관련 예산은 3자가 마련하면 됩니다. 지역농협 건물이나 빈집을 활용하는 방안을 찾으면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김춘호 변호사 / 광주민중의집 운영위원

"현재 이주노동자 상당수는 기숙사비로 월 20만 원 가까이 부담하고 있습니다. 농협 등이 초기 자본을 투입하면 월 10~15만 원으로도 기숙사를 충분히 운영할 수 있다고 봅니다. 현재 광주 광산구 동곡농협과 시범사업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배우 윤여정 씨는 미나리에 대해 여러 장점을 언급하면서 마지막에 "미나리는 원더풀"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이주노동자에게 미나리는 어떤 의미일까요?

김기흥 ( heung@kbs.co.kr)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