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야기]우리는 바이러스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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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현재 당사국 내에서 이주민과 난민을 향한 혐오와 불신의 분위기를 우려한다. 지난 권고에도 불구하고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포괄적인 법률을 제정하지 못한 데에 다시 한 번 유감을 표명한다. 당사국은 인종혐오 발언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인터넷·SNS 등에서의 혐오 발언을 모니터링하고 인종적 우월성을 전파하거나 인종혐오를 선동하는 개인 또는 집단에 대한 조사와 유죄일 경우 적절한 처벌을 가할 것을 권고한다. 위원회는 당사국이 공식 문서에서 사용하는 ‘불법 체류자(illegal immigrants)’ 같은 비하적인 용어, 부정적인 인식과 차별을 만들어내는 용어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이런 말을 쓰지 않을 것을 권고한다.

유엔이 2021년 3월 21일 세계 인종차별철폐의 날을 맞아 발행한 우표 3종

유엔이 2021년 3월 21일 세계 인종차별철폐의 날을 맞아 발행한 우표 3종



인종차별에 대한 유엔의 우려와 권고는 유색인종 차별과 아시아계 혐오범죄가 만연한 미국을 향한 게 아니다. 한인 여성 4명을 숨지게 한 미국 애틀랜타의 끔찍한 혐오범죄에 대해서는 분노하면서 정작 국내 인종차별에는 무신경한 대한민국에 보내는 메시지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2018년 12월 14일 채택한 ‘대한민국 심의에 대한 최종견해’의 극히 일부를 중간중간 발췌해 인용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미국의 아시안들은 차별과 폭력의 공포 속에서 살고 있다. 한국에서 선주민들과 함께 사는 이주민들은 어떨까. 지난 3월 21일 세계 인종차별철폐의 날에 나온 이주노동자들의 발언을 소개한다. 이날 열린 이주민 단체 토론회를 취재한 ‘프레시안’의 조성은 기자가 보도한 내용이다.

“코로나19로 외국인 노동자는 거의 외출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장님은 한국인 동료가 외출하는 거엔 아무 말도 없습니다. 우리는 아파도 휴가를 못 쓰는데 한국인 동료들은 아플 때 회사 차량으로 병원에 데리고 가는 걸 봤습니다. 공장, 기숙사에서 못 나오게 하니까 저희는 더 위험합니다. 공장 일은 힘들고 기숙사에 사람은 많은데 소독도 잘 안 합니다. 코로나19에 관한 교육도 별로 없습니다. 이런 회사를 옮길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외국인은 바이러스가 아닙니다. 외국인 노동자만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받으라고 한 것은 차별이라고 생각합니다.”(방글라데시에서 온 라셰드씨)

“중국동포들이 많이 살고 있는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은 오히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 청정지역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저희 중국동포들은 혐오의 대상이지만 코로나19 방역에 있어서 지역확산을 막는 데 큰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코로나19 대책에 소외됐습니다. 코로나19로 일자리가 없어져 많은 중국동포가 생활고에 시달렸습니다. 더욱이 비자 연장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중국에 갈 수 없어 아무것도 못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비자 연장을 못 하면 의료보험이 끊기고 휴대폰도 끊어집니다. 은행에 만기된 적금도 찾을 수 없어 말 그대로 ‘유령인간’이 됩니다.”(중국동포 박연희씨)

같은 날 유엔은 ‘인종주의와 차별에 반대하는 연대’라는 테마로 3종의 우표를 발행했다. 다양한 모습과 색으로 사람들을 형상화했고, 우표 시트에는 “모든 인간은 단일 종에 속하며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나왔다. 그들은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게 태어나고 각자가 인류의 필수적인 부분을 형성한다”라고 적었다. 한국은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지적한 부분을 개선해 2022년 1월 다시 보고해야 한다. 그때쯤이면 모두가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는, 우표에 적힌 기본 원칙을 바로 세울 수 있을까.

<이재덕 뉴콘텐츠팀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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