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듯 다른 이민자 이야기… 세계가 주목하는 두 가족

룰루 왕 감독 ‘페어웰’ 4일, 정이삭 감독 ‘미나리’ 3월 개봉

입력 : 2021-01-31 20:29

영화 ‘미나리’(위)와 ‘페어웰’은 영화 애호가들에게 올 상반기 최고 기대작으로 꼽힌다. 세계 영화제를 휩쓴 이 두 영화는 가족을 소재로 이민자의 정체성 문제를 탐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각 배급사 제공

세계 영화제에서 선택받은 수작, 감독의 자전적 경험을 담은 이민 가족 이야기, 한국계 배우·감독의 활약, 같은 제작진 참여…. 이 여러 개의 키워드는 2월과 3월 개봉하는 두 작품을 동시에 관통한다. 바로 ‘페어웰’과 ‘미나리’다. 두 작품은 상반기 최고 기대작이라는 점마저 동일하다. 하지만 색다른 개성으로 어필하는 두 영화는 얼핏 비슷하지만 뜯어보면 딴판인 일란성 쌍둥이 같다.

4일 개봉하는 ‘페어웰’은 뉴욕에 사는 빌리(아콰피나)가 할머니(자오 슈젠)의 시한부 소식을 듣고 고향 중국에 돌아가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고향에는 사촌 동생의 갑작스러운 결혼식을 핑계로 가족들이 모여 있다. 하지만 이들은 중국의 전통이라며 할머니에게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영화는 빌리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그가 따뜻한 가족들의 품 안에서 낯선 고향에 점차 적응해나가고 자신의 또 다른 정체성을 찾아 나가는 과정을 담백하게 살펴나간다.

‘페어웰’이 가족의 일상 안에서 빌리가 겪는 일을 따뜻하게 그려낸다면, 3월 개봉하는 ‘미나리’는 타지에 자리 잡은 이방인 가족의 정체성 혼란과 정립을 조금 더 드라마틱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19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 미국 시골 마을에 자리잡은 제이콥(스티븐 연)-모니카(한예리) 부부와 아이들이 주인공이다. 농장을 일구며 살아가던 가족은 한국에서 건너온 할머니 순자(윤여정)와 함께 지내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내용은 달라도 두 작품 모두 수작이라는 것엔 이견이 없다. 중국계 미국인 룰루 왕 감독의 ‘페어웰’은 크고 작은 영화제에서 157개 부문 노미네이트 돼 33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제치고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즈 작품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까지 무려 58관왕을 기록한 한국계 미국인 리 아이작 정(정이삭) 감독의 ‘미나리’는 오스카를 향해 전력 질주 중이다.

두 영화 모두 감독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쓰였기에 이민자 정체성에 관한 고민이 깊게 녹아 들어있다. ‘페어웰’은 빌리가 중국에서 겪는 혼란을 비추면서 이민 1세대와 2세대의 삶에 대해 고찰한다. ‘미나리’도 마찬가지인데 한국전쟁 등 역사의 질곡을 겪은 순자와 미국 문화가 익숙한 아이들의 대비가 두드러진다. 특히 순자가 좋아하는 나물이자 “어디서든 잘 자라”는 미나리는 척박한 곳에서도 뿌리를 내린 이민자들을 향한 찬사다.

이들 두 작품의 북미 배급은 2017년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문라이트’로 유명한 배급사 A24가 맡았다. 전문가들은 두 영화를 향한 세계적 관심과 흥행이 글로벌 문화 트렌드가 반영된 결과로 봤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탈국가적 시선이 국제적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이민자 문제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그래서 근 몇 년간 아시아를 비롯한 소수 민족을 살펴보는 영화 등 예술작품이 많아졌다”면서 “해외 관심 등에 힘입어 제작 저변이 확대되면서, 최근 특히 빼어난 수작들이 하나둘 발굴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계 배우, 감독과 제작진도 이런 트렌드를 타고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한국계이면서 중국계 배우인 아콰피나는 ‘페어웰’로 제77회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안았다. ‘미나리’에 출연한 한국계 미국 배우 스티븐 연을 비롯해 한예리 윤여정을 향한 관심도 상당하다. 특히 미국에서 벌써 여우조연상 20개를 들어 올린 윤여정이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연기상을 받을지 관심이 뜨겁다.

두 작품 모두에 한국인 프로덕션 디자이너 이용옥이 참여했다는 점도 독특하다. 영화 ‘초능력자’(2010)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룰루 왕 감독과 단편 영화 작업을 계기로 ‘페어웰’에 참여한 이 디자이너는 소품과 배경 등 미술 전반을 담당했다고 알려져 있다. ‘페어웰’ 해외 프로덕션 노트에는 영화 곳곳에 새로운 땅에 정착한 이 디자이너의 감각이 깊이 배어들었음을 유추할 수 있는 문장이 쓰여 있다. “영화의 스타일을 갈고 닦기 위해 촬영감독, 그리고 프로덕션 디자이너 이용옥과 긴밀하게 작업했다. 둘 다 이민을 경험한 사람들로, 이용옥은 서울에서 태어나 LA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76307&code=13200000&cp=nv&fbclid=IwAR0Qq9f7Fx0eI9Y5pA1jDe5VOgii6VQeCwue4CbD42dpmDSzhvTMtxWEhv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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