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골라 루렌도의 여섯 가족 입국 거절당해 두 달째 공항 터미널에서 생활



앙골라에서 온 루렌도 가족이 머물고 있는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의 임시 거처. / 이하늬 기자

루렌도(47)는 앙골라에서 택시를 운전했다. 지금은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서 ‘산다.’ 지난해 12월 27일, 앙골라를 떠났으니 공항 생활이 두 달째로 접어들었다. 제1터미널 43번 게이트를 지나 2층으로 올라가면 ‘고급 라운지’들이 줄지어 있다. 이를 지나 마사지숍을 끼고 돌면 루렌도의 여섯 가족이 사는 거처가 나온다. 부인 바테체(40)와 아이 넷(9세·7세 쌍둥이·5세)이다.

사람이 오래 머무는 곳에는 체취가 스며들게 마련이다. 이들을 방문한 지난 2월 11일 밤, 마사지숍을 지나자 후각이 반응했다. 눈으로 보기 전에 그들이 사는 곳임을 알았다. 긴 소파 3개를 나란히 붙였고 오른쪽 끝에는 15개가량의 캐리어가 쌓여 있었다. 루렌도 가족이 가진 전부다. 공항 카트에는 아이들 옷이 걸려 있었다. 빨래를 말리는 중이라고 했다.

‘콩고로 피난’ 이력 때문에 고국서 차별

루렌도 가족은 모두 앙골라인이지만 앙골라에서 차별에 시달렸다. 콩고에서 왔다는 이유 때문이다. 앙골라 내전이 심했던 1970년대, 앙골라와 콩고의 접경지역 주민 상당수가 콩고로 피난갔다. 루렌도와 바테체의 가족도 그 중 하나다. 이들은 성인이 된 이후 본국으로 돌아갔다. 문제는 콩고 정부가 앙골라 내전에서 반군을 지원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앙골라에서는 콩고 사람들에 대한 반감이 높다. 콩고에서 살다 온 앙골라인은 생김새는 같지만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 금세 티가 난다. 앙골라 정부는 대놓고 콩고 사람, 콩고에서 온 앙골라인을 추방한다. 콩고 정부에 따르면 2018년 10월에만 앙골라에서 추방된 이주민은 2만8000명이다. 콩고 정부는 “앙골라 경찰들에 의해 수십 명이 살해됐다”고도 주장한다.

루렌도 가족의 비극도 여기서 시작됐다. 지난해 11월 루렌도가 운전하던 택시가 앙골라 경찰의 지프와 부딪혔다. 경찰은 현장에서 루렌도를 체포했다. 택시는 사고현장에 둔 채였다. 루렌도는 열흘간 구금됐다. 그는 “경찰이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무작정 나를 때렸다”고 말했다. 이후 현장을 찾았지만 택시는 없었다. 그렇게 생계수단을 잃었다.

루렌도가 구금되어 있는 동안, 경찰 2명이 그의 집을 찾았다. 집에는 바테체와 아이들이 있었다. 경찰은 다짜고짜 주먹으로 바테체의 얼굴을 때렸다. 안경이 날아가며 부서졌다. 이어 경찰들은 바테체의 멱살을 잡아당겼고, 옷이 찢어지자 그를 강간했다. 경찰에게 당한 일이라 신고할 곳조차 없었다.

여전히 바테체의 몸에는 당시의 흔적이 남아있다. 그는 경찰에게 맞으면서 날아간 안경을 아직 쓰고 있다. 부러진 안경테에는 투명 테이프가 감겨 있었다. 성폭행을 당한 뒤에는 복통에 시달리고 하혈도 했다. 한국에 와서야 자궁에 이상이 생긴 걸 알았다. 인천공항에 있는 병원에서는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집을 팔아 항공권을 샀다. 한국에 대한 정보는 별로 없었다. 하루빨리 앙골라를 떠나야겠다는 마음이 컸다. 누군가 “한국은 인권이 보장되는 망명의 나라”라고 했다. 루렌도 가족이 살던 동네에는 한국대사관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인천공항에서 입국조차 거절당했다. 난민심사를 본격적으로 받을 만하지 않다는 것이다.

루렌도는 한국 정부가 강제송환을 시도했다고 주장한다. “뒤에서 밀면서 비행기로 들어가라고 했어요. 하지만 우리는 차라리 공항에 남겠다고 했어요. 아이들은 ‘아빠를 죽이지 말라’며 무릎을 꿇고 울었어요.” 이에 대해 법무부 난민과는 “한 번도 강제송환을 시도한 적은 없으며 (루렌도 가족이) 송환지시를 두 차례 거부했다”고 밝혔다.

공항생활은 쉽지 않다. 의식주 모두 정상적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공항에는 24시간 불이 켜져 있다. 적정한 온도 유지를 위해 에어컨을 가동한다. 낮에는 괜찮지만 잠을 청하기엔 낮은 온도다. 11일 밤, 루렌도 가족의 거처 끝자리에 누웠다. 경량패딩에 패딩, 담요까지 덮었지만 추위가 가시지 않았다. 코끝에 에어컨 바람이 느껴졌다. 2개뿐인 침낭은 아이들 몫이다.

루렌도는 늦게까지 잠들지 못했다. 밤에도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녀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또 혹시 사고가 일어날지 몰라 걱정된다고도 했다. 실제 많은 이들이 가던 걸음을 멈추고 루렌도 가족을 빤히 쳐다보곤 했다. 루렌도는 새벽 1시가 다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오전 6시쯤 눈을 떴다. 얼굴에는 피곤이 묻어났다. 밥은 하루 두 끼만 먹는다. 아침마다 루렌도는 근처 빵집에서 가장 값싼 식빵 세 봉지를 산다. 2월 12일 오전 10시, 아이들이 하나둘 일어나자 바테체가 아침을 준비했다. 루렌도가 기자에게 “같이 먹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성인인 기자와 바테체, 루렌도에게는 음료가 전부였다. 아이들은 딸기우유와 식빵을 한 조각씩 먹었다.

인천공항 임시거처에서 아이들이 블럭을 가지고 놀고 있다. /루렌도 제공
오가는 한국인들의 호의가 큰 힘

몸이 상할 수밖에 없다. 자궁에 문제가 있는 바테체는 물론이고 루렌도의 건강도 나빠지고 있다. 최근 그는 인공조미료가 가미된 자극적인 음식은 먹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모르지만 자꾸 구토를 한다. 하지만 공항에서 구할 수 있는 음식은 인공조미료가 들어간 것이거나 가공식품뿐이다. 그래서 가끔 지나가는 사람들이 주는 과일이 큰 도움이 된다.

아이는 넷이지만 신발은 두 켤레뿐이다. 그나마도 슬리퍼다. 겨울에 신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아이들은 양말을 신은 발을 슬리퍼에 우겨넣고 왔다갔다 했다. 물기가 있는 화장실을 갈 때가 아니면 그냥 ‘버선발’로 지낸다. 부모는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게 걱정이다. 말이 통하는 친구도 없다. 가족 중 바테체만 영어가 가능하고 모두 프랑스어를 쓴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한국인 변호사와 시민단체들 도움으로 바테체가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서울 녹색병원이 무료로 검진과 치료를 해주겠다고 나섰다. 바테체는 2월 14일 ‘긴급상륙허가’를 받아 공항을 떠나 병원으로 갔다. 바테체는 “간단한 처치로 끝나면 좋겠지만 수술을 해야 한다면 아이들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국인들의 호의도 큰 힘이 된다. 이들의 사연이 알려지자 출국하는 사람들은 이들에게 각종 음식과 칫솔 등 생활용품, 아이들 장난감, 그리고 겨울옷 등을 가져다주었다. 아이들은 아침식사가 끝나자마자 기부받은 블록을 쌓으며 놀았다. 12일 오전에는 한모씨(33)가 자신은 쓰지 않는다며 노트북을 루렌도에게 건넸다. 한씨는 “난민심사를 준비하려면 필요할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개인들의 호의에 기대 지낼 수는 없다.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하다. 루렌도 가족의 변호인인 이상현 변호사는 “루렌도 가족의 경우 난민심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한두 시간만 조사하고 난민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건 굉장히 섣부르다”면서 “무조건 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정식 심사를 받을 기회를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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