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드림’ 품고 왔는데…몸과 마음만 다쳐 돌아가네요”

     

   
여전히 소외·차별받는 이주노동자들…“위험의 이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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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출신 노동자 A씨가 17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국민일보와 만나 사업장 관리자의 폭행으로 다친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방극렬 기자


충남의 한 철강회사에서 일하는 네팔 노동자 A씨(27)는 매달 모국에 있는 가족에게 보냈던 200만원을 이번 달엔 부치지 못했다. 지난달 회사 숙소에서 만취한 한국인 관리자에게 맞아 손가락이 부러져 일을 못했기 때문이다. 이 관리자는 평소에도 A씨를 포함한 외국인 노동자들의 면전에 대고 “가난한 XX들, 돈 없어서 한국 왔지”라는 폭언과 함께 폭행을 일삼았다고 한다. A씨와 동료들이 회사에 폭행 문제를 제기하자 회사는 해고를 시도했다. A씨는 세계이주노동자의 날을 하루 앞둔 17일 국민일보와 만나 “사장님이 아무 설명 없이 서류를 내밀고 사인하라고 했는데 알고 보니 사직서더라구요. 너무 억울해 눈물만 났어요”라고 토로했다.

회사는 500만원 가까이 되는 수술비도 지급하지 않았다. A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보상을 신청했지만 신청이 받아들여질지는 알 수 없다. 그를 돕고 있는 우삼열 아산이주노동자센터 소장은 “근무지와 숙소에서 1년 반 동안 일상적으로 폭언과 괴롭힘에 시달려온 만큼 산업재해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사업주들은 문제가 불거지면 이주노동자를 자르는 것으로 덮으려 한다”고 덧붙였다. A씨는 “한국에서 지낸 4년 동안 한국말을 잘 못한다고, 네팔 사람이라고 무시당하고 냉대 받았어요. 한국에 더 있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A씨처럼 ‘코리안 드림’을 품고 왔다가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는 이주노동자들이 매년 늘고 있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주노조)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받은 ‘최근 5년간 내‧외국인별 산업재해 발생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36명의 이주노동자가 산재로 숨졌다. 2014년 85명에 비해 60%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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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알마문 이주노조 수석부위원장이 17일 서울 영등포구 이주민 문화예술공간 ‘프리포트’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현규 기자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주로부터 폭행을 당하거나 사고로 다치더라도 피해 보상을 받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CCTV가 설치되지 않은 소규모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많아 증거를 확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섹알마문 이주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이주노동자들이 상담을 오면 ‘맞으면서 증거를 확보하라’고 조언할 수밖에 없다”며 “그런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1998년 한국에 와 가구단지 등에서 일하다 2012년 노조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공장장으로 일할 때 전화로는 존댓말 하던 사람들이 방글라데시에서 왔다고 하면 바로 반말을 하더라고요. 지금은 어떻냐고요? 달라진 게 별로 없어요”라고 허탈해했다.

사업장에서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안전교육은 사고 발생을 높이는 요인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17년 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근로자가 많이 일하는 건설 현장에서 안전 교육이 통역 없이 이뤄져 교육 효과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주노조는 “비용 절감, 작업 효율 등을 이유로 이주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위험한 업무에 투입되고 있다”며 “위험이 이주화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주노동자들은 불가피한 사유가 있을 때에만 사업장을 옮길 수 있도록 한 고용허가제를 고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섹알마문 부위원장은 “지금의 고용허가제 하에서는 사장이 이주노동자의 재고용·재입국 등을 결정하기 때문에 사고 위험이 크거나 괴롭힘에 시달려도 사업장을 쉽게 옮기지 못한다”며 “정부가 이주노동자를 직접 관리·감독하는 노동허가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극렬 박구인 기자 extre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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