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중국인뿐 아니라 전체 아시아인이 한꺼번에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역 사회에서 따돌림과 폭력을 당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일부 언론도 혐오를 부채질하고 있다.
독일 방송 진행자 헤닝 보르네만이 ‘코로나 통에 빠진 세 명의 중국인’이라고 쓴 트윗.


‘콘트라베이스를 갖고 있는 세 명의 중국인(Drei Chinesen mit dem Kontrabass).’ 딸이 다섯 살 때 들어간 스위스 취리히의 공립유치원에서 처음 배운 노래의 제목이다. 가사는 이렇다. ‘콘트라베이스를 갖고 있는 세 명의 중국인/ 거리에 앉아 수다를 떨고 있네/ 경찰관이 와서 물었지, “대체 뭔 일이야?”/ 콘트라베이스를 갖고 있는 세 명의 중국인.’

독일, 오스트리아, 그리고 스위스의 독일어권 지역에서 널리 알려진 이 동요의 역사는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5년 이전에 기록된 버전에서는 일본인으로 돼 있는 경우가 많고, 일부 오래된 버전에선 콘트라베이스 대신 ‘신분증(Pass)을 안 갖고 있는’ 중국인으로 불리기도 했다. 어떻든, 아시아인들이 모인 자리에 경찰관이 나타난다는 얼개는 같다.

내가 독일어를 배우면서 이 가사를 처음 제대로 이해했을 때 든 생각은, 아이들이 중국인과 경찰을 연결 지어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동요집에는 보통 간단한 삽화도 실리는데, 이 노래가 들어간 동요집에는 예외 없이 눈이 위로 찢어지고 가늘고 뾰족한 콧수염이 턱 아래까지 늘어진 중국인들이 그려져 있다. 유튜브에서 이 노래를 검색하면, 중국인들이 모여 있다가 경찰관이 다가가자 급히 도망가는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다.

이 노래가 최근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WDR(서부 독일 방송)의 진행자 헤닝 보르네만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장난꾸러기 아이들의 노래’라며, ‘코로나 통에 빠진 세 명의 중국인(Drei Chinesen im Corona-Fass)’이라고 썼다. ‘콘트라베이스’를 ‘코로나 파스’로 절묘하게 단어를 바꾼 것이다. 중국인들이 물통 속에 들어가 씩 웃고 있는 삽화도 곁들였다. 격렬한 항의를 받자 이 트윗을 삭제하고 사과했지만, 공영방송의 진행자가 이 시국에 이토록 인종차별적인 트윗을 농담 삼아 올린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취리히에 사는 한국인 여성 진미영씨(34)는 나의 이웃이다. 진씨는 2월3일 기차 안에서 봉변을 당했다. 학생으로 보이는 10대 청소년 10여 명이 진씨를 보고 “코로나바이러스다, 도망가자!”라고 소리치더니 다 같이 입을 가리고 뛰어갔다. 아이들만이 아니다. 기차역에서 살짝 마른기침을 한 아시아계 여성에게 중년의 스위스 남성이 소매로 입을 가리라고 소리쳤다든가, 사우나에서 스위스인들이 한 아시아계 남성에게 어느 나라 출신이냐고 계속 따져 물었다든가 하는 얘기가 매일같이 들린다. 가까운 독일에선 물리적 폭력도 있었다. 지난 1월31일 베를린에서 23세 중국인 여성이 다른 여성 2명에게 인종차별 발언과 욕설을 듣고 심하게 구타를 당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주독일 대한민국 대사관은 홈페이지에 ‘동양인에 대한 경계와 혐오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공지사항을 올리며 이 사건을 언급하고, 한국인에게도 유사 사건이 발생할 수 있으니 신변 안전에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우한과 관련 있는 중국인뿐 아니라 전체 아시아인이 한꺼번에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것은 한국인인 내게 흥미로우면서도 두려운 현상이다. 나는 스위스로 이주한 지 10년 가까이 되는데, 그동안 동아시아인이 소수집단에 속할지언정 차별받는 인종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스위스 청소년들에게 BTS는 선망의 대상이고 취리히의 대형 쇼핑몰에서는 흔히 케이팝이 흘러나온다. 내 주변에는 집에서 직접 김치를 담가 먹는 유럽인이 꽤 많고, 일본 요리 강습에 다닌 스위스인이 집에서 척척 스시를 차려내기도 한다. 요즘 취리히에선 어린아이들을 위한 중국어(만다린) 교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케이팝을 줄줄 따라 부르지만···



하지만 동아시아에 대한 유럽인들의 관심이 기껏해야 여기까지라는 것이 함정이다. 유럽인 대부분이 한국·중국·일본인을 생김새로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많은 경우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인도 잘 구분하지 못한다. 그들은 케이팝을 줄줄 따라 부르면서도 한국의 정치나 교육체계, 의료 시스템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다. 그리고 이번 코로나19 유행처럼 큰 건수가 하나 생기면 그간의 모든 문화적 디테일은 사라지고 ‘알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아시아’가 한 덩어리로 남게 되는 것이다. 답답한 마음에 나의 스위스 이웃에게 ‘대체 스위스 사람들은 아시아라고 하면 뭘 떠올리느냐’고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아시아? 터키에서 일본까지지 뭐.”

‘우한 폐렴’이라는 용어를 써서 중국에 낙인을 찍은 건 한국 언론만의 문제가 아니다. 프랑스 지역 일간지 〈쿠리에 피카르〉의 1면 제목은 ‘중국 코로나바이러스-황색 경보’였다. 오스트레일리아 일간지 〈헤럴드 선〉은 1면에 ‘Pandemonium(대혼란)’을 ‘Panda-monium’으로 바꿔 씀으로써 이 혼란의 원인이 중국(Panda)에 있다는 것을 암시했고, 〈오스트레일리아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최근 중국에 다녀온 사람은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의 기사 제목을 ‘중국 아이들은 집에 있어야(China kids stay home)’라고 붙였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중국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 두 신문사에 사과를 요구하는 청원이 진행됐고, 7만5000명 이상이 서명했다.

낙인은 긴 후유증을 남긴다. 병명에 나라 이름이 붙어서 제일 큰 피해를 본 사례는 아마 ‘스페인 독감’일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스페인은 이 전염병의 원인이 아니었다. 1차 세계전쟁 중이던 당시 다른 국가들은 정보를 최대한 숨겼고, 중립국인 스페인만 정보를 공개하는 바람에 이목이 집중돼 생긴 명칭이다. 스페인 독감이라는 쉬운 명칭은 집단의 기억도 왜곡했다. 스페인 사람인 내 남편의 말에 따르면, 스페인에서도 젊은 세대는 그 전염병이 스페인에서 발발한 것이라고 잘못 아는 경우가 많단다.

중국 여성이 박쥐 요리를 먹는 유튜브 영상도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에 ‘야만적 아시아인’이라는 낙인을 찍었다. 그 영상이 중국에서 촬영된 게 아니라는 사실은 무시됐다. 엊그제 여덟 살짜리 딸이 학교에서 돌아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엄마, 근데 코로나바이러스가 박쥐에서 나왔어? 친구가 나한테 한국에서도 박쥐를 먹느냐고 물어보던데.” 가슴이 철렁했다. 자세히 들어보니 아이의 친구는 그저 한국과 중국이 헷갈렸을 뿐이고 인종혐오를 걱정할 상황은 아니었지만, 언론과 유튜브에서 편파적으로 제공되는 정보가 어린아이들에게까지 여과 없이 전해진다는 건 확실했다.

최근에는 기차를 타는 것도 망설이게 된다. 여기저기서 동아시아인들이 수모를 당했다는 얘기를 들으며 공포가 커지는 와중에, 나의 독일어 과외 교사인 스위스 사람 E가 신문 기사 하나를 가져다주었다. 스위스에서 가장 고품격 일간지인 〈NZZ〉 기사로, ‘한국에서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인종혐오 바이러스’라는 제목이었다.

©EPA1월29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중심가를 아시아 관광객들이 걷고 있다.


춘절(춘제)에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들이 승차 거부로 택시를 타지 못했고, 서울 홍대앞에서 한 한국인이 중국인에게 한국을 떠나라고 하는 바람에 싸움이 벌어졌으며, 음식 배달 서비스의 배달기사들은 추가요금을 주지 않으면 중국인 집단 거주지로 배달을 가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기사는 우한 교민들을 격리한 지역인 아산과 진천의 주민들이 어떻게 길을 막고 항의했는지도 쓰고 있다. E가 말했다. “스위스에서 아시아 사람들 차별하는 것도 문제지만, 한국인이 중국인 차별하는 건 훨씬 더 심한 것 같은데.” 스위스에서 기차 타길 망설이는 한국인인 나는, 서울 홍대앞에서 모욕을 당했다는 중국인에게 감정이입이 됐다. 우한 교민을 들여보내지 않겠다고 아산에서 길을 막아선 이들은, 자기와 같은 한국인들이 유럽에서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를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도 바뀐다는 것을.

코로나19에 대해 현재 스위스인들이 보이는 태도가 인종혐오가 아니라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라고, 바이러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이 적대감은 정말 바이러스만을 향한 것일까, 스위스에 인종혐오는 없을까. 지난달 스위스의 도시 툰에 있는 괴티바흐 초등학교가 교사를 구하는 온라인 광고를 냈다. ‘스스로 업무량을 조절할 수 있음’ ‘잘 조직된 혁신적인 교사진’ 등 매력적인 근무환경을 제시했는데, 그중 하나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이민 가정 출신 학생들이 스위스 평균보다 훨씬 적음.’ 참고로 스위스 인구의 약 4분의 1이 이민자(외국인)이다. 외국인 학생이 적은 학교라 가르치기가 더 수월할 것이라는, 노골적인 인종차별 표현이었다. 교육계와 학계에서 거센 비판을 받은 뒤에야 학교는 ‘방향이 잘못된 것 같다’며 사과했다. 놀라운 건 관련 기사에 붙은 댓글이었다. ‘문제가 뭐지? 학교는 솔직히 말했을 뿐인데’ ‘저 동네로 이사가야겠다’ 같은 댓글이 줄을 이었다. 이 기사를 낸 언론사가 온라인 설문조사를 했는데, 2만명 가까운 응답자의 약 80%가 ‘광고 내용에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16%만이 ‘용인될 수 없는 광고’라고 답했다.

흰 양의 발에 걷어차이는 검은 양



스위스에 존재하는 인종혐오를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건 스위스국민당(SVP)이다. 지난해 말 스위스 총선에서 SVP는 지난번에 이어 다시 1위를 했다. 이 정당이 줄곧 내세우는 것은 반(反)이민 정책인데, 2016년에 SVP가 만든 포스터는 지금이 21세기가 맞나 의심이 들 만큼 노골적이었다. 스위스 국기 위에 서 있는 하얀색 양이 검은색 양을 국기 바깥으로 걷어차 버리는 그림이었다. 검은 양으로 상징되는 이민자들은 아주 가벼운 범죄만 저질러도 나라 밖으로 추방해버리자는 내용이었다. 내 피부가 검지는 않지만, 하얀 양과 검은 양 중 내 몫은 검은 양일 것이었다. 기차역이며 공원이며 가는 곳마다 붙어 있는 포스터에서 흰색 양의 발에 걷어차이는 검은색 양을 보며 위협을 느끼지 않은 이민자가 있었을까.

코로나19를 ‘메이드 인 차이나’라고 표현한 독일 주간지<슈피겔>(맨 왼쪽)과 영국 <이코노미스트> 표지(왼쪽).위는 2016년 스위스국민당이 만든 포스터.


독일어 동요 ‘콘트라베이스를 갖고 있는 세 명의 중국인’에는 또 다른 버전이 있다. 중국인(또는 일본인)의 수가 10에서 시작해, 다음 절로 넘어갈 때마다 하나씩 줄어드는 것이다. 당장 떠오르는 다른 노래가 있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숫자가 1씩 줄어드는 미국 동요 ‘열 꼬마 인디언(Ten little Indians)’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노래는 원래 ‘열 꼬마 흑인(Ten little niggers)’으로 시작했다가 인종차별적 단어 때문에 흑인에서 인디언으로, 또 꼬마 병사(soldier boys)와 꼬마 곰(teddy bears)로 가사가 바뀌었다. 영국 작가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And then there were none)〉 역시 이 동요에서 딴 최초 제목 〈열 꼬마 흑인〉이 나중에 바뀐 것이다. 흑인을 차별하는 영어 동요는 좀 더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바뀌었지만 중국인을 차별하는 독일어 동요의 가사는 한 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변함이 없다.

취리히·김진경 (자유기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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