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이주노동자 3명 중 1명 하루 11시간 이상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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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2021.05.26. 오후 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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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1%가 부당한 대우 경험…언어폭력이 91.5%로 가장 많아
광주·전남 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 노동인권 실태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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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임금 노동자(PG)
[이태호, 정연주, 최자윤 제작] 일러스트


(광주=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쉬는 날에도 사장 가족에게 보내져서 고추나 가지, 양파를 키우는 등 일을 해요."

"일 없는 날은 다른 사장님 집 일을 시켜요. 산에 가서 나무 구하고, 다른 사장님 집 지붕을 고치고요."

전남 지역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 3명 중 1명은 하루 평균 11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10명 중 7명은 휴일에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광주·전남 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이하 네트워크)는 지난해 8월부터 올해 1월까지 177명의 이주노동자를 면대면으로 만나 노동인권 실태를 설문 조사해 그 결과를 26일 발표했다.

설문 응답자들은 제조업 44%, 농·축산·양식·소금채취업 18.5%, 선원 16.1%, 기타 2.4% 등에서 종사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절반가량인 46.4%가 하루 9∼10시간을 근무한다고 답했다.

다음으로 1112시간 근무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22.0%에 달했고, 13시간 이상도 11.9%로 나타났다.

법정 근로시간인 8시간 이하는 19.6%에 불과했다.

농·어촌의 경우 농번기와 비조업기가 있어 법정 근로시간을 지키기 어려운 한계가 있지만 이를 이용해 근로자를 착취하지는 않는지 철저한 관리·감독이 필요한 지점이라고 네트워크 측은 지적했다.

장시간 근무에도 한 달 평균 휴일은 3∼4일에 불과하다는 응답이 48.8%로 가장 많았다.

한 달에 1∼2일(12.2%) 쉬거나 아예 안 쉰다(12.8%)고 응답한 사례도 있었다.

월평균 5일 이상 쉰다고 응답한 노동자는 26.2%였다.
특히 농·어업에 종사하는 외국인 근로자가 제조업과 비교해 쉬는 날이 더 적다고 응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의 월평균 급여는 192만5천원으로 나타났다.

2020년 기준 주 40시간씩 한 달을 근무할 경우 179만여원이 최저 임금인데,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가 상당한 점을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네트워크 측은 "근로계약서상 대가가 지급되지 않은 노동이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한 감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사용자나 함께 일하는 한국인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례도 나타났다.

외국인 노동자의 38.1%는 부당 대우를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복수 응답을 할 수 있도록 한 설문에서 부당 대우를 받았다는 노동자 91.5%는 언어폭력을 당했다고 밝혔다.

특히 폭언이나 폭행 가해자는 동료 한국인(57.7%)이 가장 많았고, 업체 사장(53.8%), 사장의 가족(7.7%) 등으로 나타났다.

이 외에도 '일이 끝난 후나 휴일에도 외출이나 외박을 마음대로 못 하게 한다(16.9%)', '밭일이나 집안일 등 다른 일을 시킨다(10.2%)' 등의 사례가 나타났다.

폭언이나 폭행을 당했을 때 그냥 참고 넘어간다는 응답은 53.6%로 2명 중 1명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미등록 이주노동자일수록 참고 넘어갔다고 응답(72.2%)한 비율이 더 높았다.

아울러 외국인 노동자의 41.7%는 차별을 당한다고 느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는 일의 종류와 양(44.1%), 언어폭력 등 처우(37.3%), 월급(35.6%), 숙소(22.0%) 등에서 차별을 느끼고 있다고 복수 응답했다.

네트워크 측은 "이주민 지원은 단지 시혜적으로 베풀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사람'으로서 가지는 인권을 실현해나가기 위한 방법으로 필요한 것"이라며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해나가기 위해서는 정기적인 실태조사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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