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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라고 말해주세요, 우리도 한국은 처음이에요

등록 :2017-11-16 19:39수정 :2017-11-17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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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란의 스리랑카 한국어 교실

제목부터 다정하기 그지없다. 친절과 환대의 느낌이 가득하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엠비시(MBC)에브리원에서 지난 6월부터 방송하는 외국인 예능 프로그램을 눈여겨봤다. 몸매, 얼굴, 태도가 모델 못잖게 완벽한 이탈리아인 알베르토와 그의 친구들이 첫 여행손님. ‘한국에서 활동 중인 외국 출신 방송인이 자신의 친구들을 한국에 초대해 따로 또 같이 여행을 하며 외국인들의 시선을 통해 우리가 몰랐던 한국을 새롭게 그려내는 신개념 여행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는 기획의도를 읽었다. ‘알베 투어’를 시작으로 크리스티안의 멕시코 친구들, 독일 3인방을 위해 다니엘이 직접 준비한 그들만의 맞춤 투어가 이어졌다. 흰 피부의 외국인들이 한국인조차 잘 모르는 서울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좋다’를 연발하고 ‘맛있다’는 말을 배워 쓰면서 셀카봉 속에서 환하게 웃으며 흔들흔들 여행하고 있었다.

수도 콜롬보에서 열린 코리아 페스티벌에 참가한 학생들. 이들은 한국에 가기 전에 한국어만 배우는 게 아니라 한국문화 전반에 대해서 배운다. 심지어 트레이닝 센터에 돈 내고 입소해 유격훈련까지 받아야 한다. 지금은 저 아이들 거의 다 한국에 있다. 이들이야말로 ‘어서 와요’ 소리를 들을 만하지 않은가.
수도 콜롬보에서 열린 코리아 페스티벌에 참가한 학생들. 이들은 한국에 가기 전에 한국어만 배우는 게 아니라 한국문화 전반에 대해서 배운다. 심지어 트레이닝 센터에 돈 내고 입소해 유격훈련까지 받아야 한다. 지금은 저 아이들 거의 다 한국에 있다. 이들이야말로 ‘어서 와요’ 소리를 들을 만하지 않은가.
‘유세요, 주세요’ 어눌한 한국어를 주워섬기며 소주와 불고기의 맛을 예찬하는 모습을, 헐떡이며 북한산에 올라 서울이란 도시를 찬양하는 외국인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아니 당연하게도 현재 한국에 사는 마흔 명 정도의 내 학생들 얼굴이 오버랩 되었다. 아, 저 복 많은 사람들. 잘나고 훌륭한 친구 덕에 융숭한 대접을 받으면서 자유롭게 여행하는 외국인들과 우리 스리랑카 사람들은 얼마나 다른가. 알베르토, 크리스티안, 다니엘과 럭키는 얼마나 똑똑하고 잘생기고 부자인데다 예의 바른지. 유창한 한국어와 웬만한 한국인보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해박한 그들이 자기 친구들을 이끌며 발을 딛는 한국의 방방곡곡을, 우리 애들은 가봤을까, 마음이 아렸다. 일이년 먼저 온 사람이라 할지라도 처음 온 사람보다 좀 더 많이 일했을 뿐 여행을 다니지는 못했을 것이다. 채용 인터뷰 동영상을 찍으면서 열심히 일하겠다고, 한국을 여행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던 아이들의 떨던 얼굴이 생각났다. 아이들의 여행이라곤 떨어져 사는 친구들의 집을 찾아가는 정도에, 소주도 외식하면 비싸니까 기숙사에서 마신다 했다.

휴일이 여러 날이면 한국 각 지방에 흩어져 일하던 친구, 형, 동생들이 한 친구의 집을 정해 모여서 논다. 광주, 대전, 포항, 안산에서 일하는 스리랑카 사람들이 횡성에 있는 닐루셔네 회사로 놀러왔다. 스리랑카 음식을 만들어서 섬강 끝자락에 모여 소주도 마시고 스리랑카에서처럼 물놀이도 했단다.
휴일이 여러 날이면 한국 각 지방에 흩어져 일하던 친구, 형, 동생들이 한 친구의 집을 정해 모여서 논다. 광주, 대전, 포항, 안산에서 일하는 스리랑카 사람들이 횡성에 있는 닐루셔네 회사로 놀러왔다. 스리랑카 음식을 만들어서 섬강 끝자락에 모여 소주도 마시고 스리랑카에서처럼 물놀이도 했단다.
소도시나 시골에 사는 마두랑거, 아신떠, 다르셔너, 삼받, 위라저, 닐루셔, 딜샨 같은 내 학생들의 이름을 불러봤다. 가본 적 없는 한국의 먼 도시 이름들, 횡성 영양 김해 안동 포항의 공장과 물고기 양식장, 생전 처음 침대 없이 요를 펴고 잠을 자는 공장 옆에 붙어 있는 기숙사를 떠올렸다. 사진으로 보내준 부엌엔 칠리 페이스트, 커리, 병아리콩 같은 것들이 낡은 행주와 함께 놓여 있었다. 단풍이라곤 한국어 교재에선 본 것밖에 없는 아이들이 노란 은행나무 아래서 ‘한국은 정말 너무 아름다워요’라고 찍어 보낸 사진을, 태어나 처음 본 눈덩이를 잡고 ‘한국은 정말 추워요’ 털모자 쓰고 신나 하는 얼굴들을 다시 봤다. 얼마 전엔 횡성에 사는 학생이 횡성에서 열리는 한우축제 소식을 전해왔다. 횡성에는 섬강이라는 예쁜 강이 있다고도 했다. 한우축제가 그곳에서 열린다고 했다. 소고기를 먹지 않는 그 학생이 강물을 따라 도축한 소 수십 마리의 피가 빨갛게 흐르는 천변에서 갓 잡은 소고기를 연기 피우며 먹고 있는 모습을 축제라며 찾아가 보고 있을 모습에 머리끝이 쭈뼛했다.

각자 다른 시기에 한국으로 들어온 벨리아타 한국어반 학생들. 일 년이 넘거나 이년이 된 학생들이 추석연휴를 맞아 모두 모였다고 한다. 종종 스리랑카 사람들이 모두 모여 뮤지컬도 만들고 스리랑카 식 절에 모여 기도도 한다.
각자 다른 시기에 한국으로 들어온 벨리아타 한국어반 학생들. 일 년이 넘거나 이년이 된 학생들이 추석연휴를 맞아 모두 모였다고 한다. 종종 스리랑카 사람들이 모두 모여 뮤지컬도 만들고 스리랑카 식 절에 모여 기도도 한다.
아무튼 <비정상회담>에도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도 우리 아이들은, 동남아시아 가난한 나라에서 일하러 온 황갈색 얼굴빛의 사람들은 나오지 않는다. 그 애들은 다른 곳에 살고 있으니까. 이를테면 충북 음성군 삼성면 같은 내 고향의 주민이 되었다. ‘리’ 단위의 고향 집 바로 옆집에도 네다섯 명의 외국인들이 살고 있다고 했다. ‘차부 슈퍼’였던 오래된 가게는 ‘월드 마켓’으로 간판을 바꾸어 달고 세계의 향신료를 판다. 차별이나 홀대는 어디나 있는 일이니 새삼스레 서럽다 할 것은 아니지만 가끔은 우리 아이들 같은 이주노동자들도 작은 환대를 받았으면 좋겠다. 어서와, 처음이지? 다정하게 물어봐주면 좋겠다. 저 아이들은 제 나라에서도 ‘Foreigner Only’(외국인 전용)라며 레스토랑과 휴양지 해변의 입장을 거부당했던 쓰라린 기억을 갖고 있다. 저 잘 살려고, 돈이나 벌겠다고 들어왔어도 한국은 저들 생애 처음의 여행지이고, 이들은 명실상부한 ‘외국인’이다. 일이년 넘게 한국을 공부하고 비행기도 생전 처음 타 본 여행자이기도.

글·사진 전 페미니스트저널 <이프> 편집장, 코이카 스리랑카 한국어 교사

생전 처음 맞는 강원도의 추위가 신기하다는 닐루셔. 단풍이 너무 아름답고 모든 곳이 너무 깨끗해서 한국이 정말 좋다고 했다. 한국에 온 지 세 달. 무료 한국어 강좌를 찾아가 일요일마다 공부하고 있단다. 백일도 안 되어 살이 10kg쯤 빠졌다고.
생전 처음 맞는 강원도의 추위가 신기하다는 닐루셔. 단풍이 너무 아름답고 모든 곳이 너무 깨끗해서 한국이 정말 좋다고 했다. 한국에 온 지 세 달. 무료 한국어 강좌를 찾아가 일요일마다 공부하고 있단다. 백일도 안 되어 살이 10kg쯤 빠졌다고.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19468.html#csidx3ce6e007237e7fe87cf4c8eb4683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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