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허가제, 현대판 노예법"…법 보호 못 받는 이주노동자들

사업장 이동제한·숙식비 징수 등 노동자에 불합리
"사업장 변경 인정하고 사업주 권리 대폭 줄여야"

(서울=뉴스1) 권혁준 기자 | 2018-05-27 06:00 송고
이주노동자들이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뉴스1 © News1 박지수 기자

2004년 시행된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를 합법적인 노동자로 채용할 수 있게 된 토대였다. 그러나 정작 이주노동자들은 오히려 고용허가제로 인해 '합법적 착취'를 당하는 실정이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사업주들은 여전히 이주노동자를 '물건' 취급하고,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배경에는 고용허가제가 노동자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것이 크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고용허가제는 애초에 사업주에게 외국인 노동자의 고용을 허가하는 관점에서 시작된 제도라고 꼬집는다. 사업주가 노동자의 체류와 노동여건에 지나치게 많은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임금체불을 비롯한 부조리한 현실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점은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은 특정사업장에서 3년 동안 일한 뒤 체류기간을 1년10개월 연장할 수 있다. '성실근로자 재고용 제도'에 따라 4년10개월간 성실히 근무할 경우에는 자국으로 돌아가 3개월을 휴식한 뒤 일했던 사업장으로 재취업할 수 있다.

사업장을 이동하기 위해서는 사업주의 동의와 휴업·폐업 등의 경우를 제외하면 근로조건 위반 행위와 폭언·폭행 등 부당한 처우가 있어야만 한다. 그나마도 입증 책임이 노동자에게 있기 때문에 대부분은 고용주와의 합의를 본 뒤 이동하는 실정이다.

다시 말해 사업주의 임금체불 등 부당행위가 있었다 하더라도 이를 명확히 입증하지 못하면 사업장 이동을 하기 위해서는 사업주의 동의를 얻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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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찰을 빚고 있는 이주노동자에게 휴가를 준 뒤 '이탈신고'를 해 불법체류자 딱지를 붙이는 일도 부지기수다. 사업주가 이탈신고를 하면 노동자들은 행정소송을 걸지 않는 한 이에 맞설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주노동자들이 2017년 9월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이주노동자 주거권보호를 위한 법률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News1 이동원 기자

지난해 3월부터 시행된 '숙직비 징수지침' 역시 고용노동부가 만든 '합법적 제도'다. 이에 따르면 이주노동자의 숙식비를 월 통상임금에서 주거시설의 여건에 따라 최대 20%까지 공제할 수 있다. 이로인해 이주노동자는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박스에 살면서 20만~30만원 가량 깎인 월급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주노동자의 서면동의가 필요하다는 조항이 있지만 한국에 오려는 이주노동자가 이를 거부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이주노동자들은 퇴직금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국내 노동자의 경우 퇴직 후 14일 내에 퇴직금을 받게 돼 있지만, 이주노동자는 출국 후 14일 이내에 퇴직금을 받는다. 한 사업장에서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옮겨도 퇴직금은 지급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나마도 '출국만기보험'의 형식으로 기본급의 10%를 적립하는 형식이고, 일부 사업주는 이를 월급에서 공제하기도 한다.

김이찬 지구인의 정류장 대표는 "이주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의 굴레에 묶여있다. 불합리한 일을 당했다고 말하면 쫓겨날 수도 있다는 불안감, 사업주가 언제든 나를 '불법체류자'로 만들 수 있다는 공포감, 법 제도 마저 내편이 아니라는 상실감에 옭죄인다"고 말했다.

조영관 이주민지원센터 '친구' 사무국장은 "고용허가제는 전면적인 수정이 필요하다. 사업주와 노동자 간 형성된 수직관계와 권력관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 사무국장은 "사업장 변경을 원칙적으로 인정하고 예외적으로 사업주의 거부를 인정하는 제도가 시급하고, 사업주에게 노동자의 체류자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을 바꿔야한다. 숙식비 징수의 경우에도 노동자의 '동의'에 대한 부분을 좀 더 엄격하게 보고 협상도 가능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starburyn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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