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 30년, 아직도 우리는 '물건'일 뿐"

이주노동자 투쟁투어버스 동행 취재
"임금 체불·열악한 환경 여전"

(서울=뉴스1) 권혁준 기자 | 2018-05-27 06:00 송고 | 2018-05-27 11:50 최종수정
이주노동자들이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결의대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News1 박지수 기자

"We are not machine."(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23일 충남 논산의 한 농장 앞에 집결한 이주노동자들의 표정은 결연했다. 무서운 '사장님' 앞에서 늘 움츠러들던 모습은 사라졌다. 그들은 더 이상은 물러날 수 없다는 듯 그들의 일터에서, 사장님 앞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이주노동자들이 국내에 유입된 것은 30년이 넘었지만, 이들의 인권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2004년 고용허가제가 시행되며 '노동자'의 위치를 인정받게 됐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발을 들여놓은 지 어느덧 30년이 됐지만 여전히 30년 전과 다르지 않은 구호를 외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근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지구인의 정류장, 수원이주민센터 등의 주도로 진행되고 있는 이주노동자 투쟁투어버스는 이같은 문제에 대해 적극 목소리를 내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각 지역 고용노동청과 사업장을 찾아다니며 항의집회를 여는 '투투버스' 현장에서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에는 절실함이 배어 있다.

충남 논산의 한 농장에서 일한 이주노동자들의 개인별 체불 내역. © News1

◇"하루 할당량이 상추 30박스…임금도 제대로 못 받아"

캄보디아에서 온 미니(24·여), 찬톤씨(26·여)는 3년 전 일했던 농장에서 하루 5㎏짜리 박스를 총 30개 채우는 '할당량'을 받았다. 고용주는 개인 할당량을 해내지 못하면 임금을 깎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이들은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휴식시간 1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11시간을 일했고, 한 달에 2번만 쉬면서 100만원도 채 되지 않는 임금을 받았다. 당초 계약서에 명시된 하루 8시간 노동에 130만원의 임금을 받는 것도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했지만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았다.

고용주는 숙식비 명목으로 1인당 30만원을 공제했다. 숙소로 제공한 곳은 가건물 형태의 컨테이너박스로, 한 방에 3명의 여성이 함께 생활했다. 이주노동자 출국만기보험 10만원 역시 노동자들의 월급으로 납입했다.

애초 계약된 금액에서 40만원을 공제한 금액조차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참다못한 두 노동자가 항의하자 고용주는 "나가라"고 횡포를 부렸다.

이들은 이후 논산의 또 다른 농장으로 일터를 옮겼다. 한 달에 이틀을 쉬고 9시간을 일하면서 받는 돈은 168만원. 여전히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액수지만 이들은 그래도 만족스러워하고 있다. 

미니씨는 "지금은 계약서대로 하고 있다. 사장님, 사모님 마음이 착해서 일하기 편하다"며 웃어보였다.

충남 논산의 한 농장에서 이주노동자들에게 제공한 숙소 내부. 비닐하우스 내부에 컨테이너박스를 설치한 형태다. © News1

◇스티로폼 창고부터 비닐하우스까지…"우리가 물건인가요"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캄보디아에서 온 A씨(24)는 일터인 경기 안산시의 공장을 처음보고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숙소는 스티로폼을 단열재로 사용한 가건물로, 본래 창고로 쓰이던 곳이었다. 그나마도 6~7평 정도의 비좁은 곳이어서 생활에 불편함이 많았다. 자고, 먹고, 씻는 곳을 모두 그 곳에서 해결해야 했다.

A씨는 "숙식을 제공해준다고 해서 좋아했는데 와 보니 숙소라고 할 수 없는 곳이었다"면서 "사장님은 오히려 출퇴근 시간이 얼마 안 걸리니 좋지 않느냐고 하는데 화가 났다. 창고에는 물건을 넣어놔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털어놨다.

논산의 농장에서 일하는 캄보디아 출신 여성 B씨의 숙소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용하지 않는 비닐하우스의 내부에 컨테이너박스를 설치한 형태로, 환기가 잘 되지 않고 여름에는 찜통같은 더위에 시달려야 했다. 배수도 잘 되지 않아 비가 조금만 내려도 '숙소' 주변은 진흙탕이 되곤 했다.

이주노동자들의 숙소는 열악하기 그지없다. 대부분의 고용주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컨테이너박스나 임시가건물, 스티로폼창고, 비닐하우스를 숙소로 제공한다.

안전사고 위험에도 크게 노출돼 있다. 컨테이너박스의 경우 불이 붙으면 빠르게 타면서 유독가스를 내뿜는 샌드위치 패널로 만들어져, 화재에 취약하다. 가건물의 경우 전기시설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아 누전사고가 나는 경우가 많다.

김이찬 지구인의 정류장 대표는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이 비슷한 처지"라면서 "이주노동자들을 노동자로 보지 않고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인식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고 지적했다.




starburyny@news1.kr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