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이주노동자 4명 중 1명 “남녀 숙소 구분 안돼 있어”

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입력 : 2018.03.26 22:46:00 수정 : 2018.03.27 00:30:18

ㆍ인권위 조사…10명 중 1명 “성희롱·성폭력 경험”
ㆍ예방교육도 전무…노동부·여가부에 대책 권고

캄보디아 출신 여성 이주노동자 ㄱ씨는 다른 여성 노동자 4명과 방 한 칸짜리 기숙사에서 지내야 했다. 방이 좁다는 여성 노동자들의 항의가 쏟아지자 고용주는 황당한 답변을 했다. “캄보디아 남성 노동자와 한방을 쓰라”는 것이다. 이에 여성 노동자들이 다시 항의하자 고용주는 “같은 나라 사람인데 뭐가 문제냐”고 했다. 다른 여성 이주노동자 ㄴ씨는 “한국 남자들이 ‘애인하자’고 치근덕거리거나 몸을 만지는 경우도 있다. 외국 사람은 함부로 대해도 되는 줄 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6년 제조업에 종사하는 여성 이주노동자 38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제조업 분야 여성 이주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나오는 사례들이다.

인권위는 26일 여성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성희롱·성폭력 예방과 구제 제도를 마련하라고 고용노동부와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권고했다고 밝혔다. 

인권위 조사에 따르면 여성 이주노동자들은 남녀가 분리되지 않은 숙소·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등 성희롱·성폭력이 취약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33.3%는 ‘남·여 화장실이 구분돼 있지 않다’고 답했고, 24.3%는 ‘남·여 숙소가 분리돼 있지 않다’고 답했다.

상당수 여성 이주노동자들은 잠금장치가 없는 숙소·화장실을 이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20.7%는 ‘숙소에 다른 사람들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다’고 답했고, 9.9%는 ‘화장실·욕실 등에 안전한 잠금장치가 없다’고 답했다. 

조사 대상 중 11.7%는 성희롱·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피해 경험도 2회 이상 반복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성희롱·성폭력 피해자의 40%는 ‘말로 대응하거나 그냥 참았다’고 했다. 노동부나 관련 단체에 신고하는 경우는 8.9%로 매우 낮았다. 

소극적으로 대응한 이유에 대해 응답자의 23.2%는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라고 했다. 이어 ‘누구에게 말해야 도움이 될지 몰라서’(21.8%), ‘창피하고 오히려 내가 비난받을까봐’(18.2%), ‘불법체류 상태 때문에 신고가 두려워서’(16.8%) 등의 순이었다.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성희롱 예방교육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15년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 조사에 따르면 경기도 여성 이주노동자 85.2%는 취업교육 과정에 성희롱 예방교육이 있음에도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응답했다. 한 여성 이주노동자는 조사에서 “사장님이 몸을 건드리면 피해야 한다는 것이 (성희롱 예방교육의) 전부였다”고 답했다.

인권위는 노동부에 이주노동자들이 남녀 분리 공간에서 거주하도록 지도·감독하고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 실태를 점검할 것 등을 권고했다. 여가부에는 이주여성 폭력피해 전담 상담 기능 설치 등을 권고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3262246005&code=940702#csidx71406fee807d05d99f762aa48b0a7c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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