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 이주아동 리포트]①있지만 없는 아이들

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ㆍ인권 사각 ‘18세 미만의 사람’
ㆍ2만여명 추정뿐 실태 불명확
ㆍ불법체류 부모 추방에 생이별

불법체류 외국인인 몽골 출신 여성 가나(가명)가 한국에서 태어난 미등록 이주아동인 9세 아들과 함께 지난 1일 서울 청계천에 발을 담근 채 물놀이를 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불법체류 외국인인 몽골 출신 여성 가나(가명)가 한국에서 태어난 미등록 이주아동인 9세 아들과 함께 지난 1일 서울 청계천에 발을 담근 채 물놀이를 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자동차, 팽이, 엄마가 제일 좋아요. 아빠는…한번도 본 적이 없어요.”

휴대전화를 손에 쥔 채 자동차게임에 정신이 팔린 현우(9·이하 가명)가 말했다. 현우 기억에 아빠는 ‘없는 존재’다. 몽골 국적으로 한국에서 미등록(불법체류) 이주노동자로 일하던 현우 아빠는 현우가 태어난 지 5개월 만에 강제추방돼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 후론 연락이 닿지 않는다.

“남편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몰라요. 몽골 가서 찾고 싶지만, 그러다 잡힐까봐….” 현우 엄마 가나(46)의 얘기다. “경찰만 봐도 무서워서 도망 다닌다”는 가나 역시 미등록 신분으로 서울 중구의 영세 비닐공장에서 일한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아침부터 밤까지 한 달을 꼬박 일해 손에 쥐는 돈은 150만원. 오후 2시면 학교에서 돌아오는 현우는 엄마를 기다리며 집에서 TV를 본다. 현우는 얼마 전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진단을 받았다. 일 때문에 아이와 함께할 수 없는 가나는 지난달부터 현우를 몽골어 학원에 보내기 시작했다. “언제 추방될지 모르니까, 말이라도 가르치려고요.” 한국에서 태어난 현우는 한국말밖에 하지 못한다. 

현행 출입국관리법에 따르면 체류자격이 없는 외국인은 강제추방 대상이며, 아동 역시 별도 규정이 없어 성인과 동일하게 강제추방된다. 다만 2013년부터 법무부는 이주아동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최장 15세 또는 중학교 과정 수료 시까지 학생과 그 부모에 대한 강제퇴거 집행을 유예한다는 지침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 이주민들의 얘기다.

실제 나이지리아 출신 불법체류자 ㄱ씨는 한국에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자녀들이 3명이나 있지만 2013년부터 지난 3월까지 화성외국인보호소에 구금돼 가족들을 돌볼 수 없었다. 출입국당국은 ㄱ씨가 구금돼 있는 동안 강제추방 시도도 여러 차례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우와 그의 어머니도 당국에 적발되면 강제추방되거나 어머니가 외국인보호소에 수용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특히 이 지침은 이주아동의 학습권을 보장한다는 취지에서 시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취학 전의 영·유아 이주아동이나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미성년자 이주아동을 둔 불법체류 외국인 가족들은 그대로 강제추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부모 국적·체류자격 따지기 전에 ‘아동인권’ 보장이 먼저” 

법무부 강제퇴거 우려에 출생신고도 외국인등록도 못해 

복지부 ‘보호 지침’은 강제성 없어 지자체마다 제각각 

또 다른 미등록 이주아동인 지훈(15), 지원(10) 형제는 3년 전 보육시설에 맡겨진 채 베트남인 엄마 응옥(46)과 9개월간 떨어져 있어야 했다. 1999년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입국한 응옥은 한국에서 동향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았지만, 남편은 불법체류 신분이 발각돼 강제출국됐다. 이후 응옥은 단기 비자를 얻기 위해 아이들을 이웃에게 맡기고 베트남으로 갔다. 그런데 이웃이 갑작스러운 사정이 생겨 아이들을 보육원에 맡겼다. 베트남에서 소식을 들은 응옥은 곧바로 보육원을 찾았지만, 보육원 측은 그의 불안한 체류 자격을 문제 삼으며 아이들을 돌려주지 않았다. 한국인 신원보증인을 구해 가까스로 아이들을 찾게 된 응옥은 자신의 불안한 신분 때문에 언제든 홀로 남을 수 있는 아이들이 걱정이다. 

법무부 출입국기록상 국내 만 18세 미만 미등록 이주아동은 2895명(2월 기준)이지만, 이는 현우나 지훈이 형제처럼 국내에서 태어나 출입국기록에 남지 않는 아이들은 포함되지 않은 수치다. 이들처럼 단속과 강제퇴거 우려 때문에 출생신고 및 외국인등록 등을 하지 못한 국내 출생 이주아동은 2만여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대권 아시아의친구들 대표는 “부모의 나라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부모의 국적국으로 돌아가라고 등을 떠미는 것이 옳은 일인지는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정부 공식 통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인 이들 미등록 이주아동에게 유엔아동권리협약이 밝히고 있는 ‘아동의 부모와 함께 살 권리’는 요원한 일인 것이다. 

부모의 불안정한 체류 자격으로 인해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해 차라리 ‘행려자’가 되는 길을 택하는 이주아동들까지 있다. 2011년 한국에서 태어난 준영(6)이의 어머니는 베트남 출신 결혼 이민자였다. 결혼 이민자로 입국해 한국 남성과 결혼했지만 곧 이혼해 체류 자격을 잃었고, 그 뒤 준영이를 낳았다. 엄마가 결핵 진단을 받아 전문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 준영이는 보육원에 맡겨졌고, 퇴원한 엄마는 강제출국돼 본국으로 돌아갔지만 건강 악화로 세상을 떠났다.

문제는 준영이의 ‘미등록’ 신분. 현행 아동복지법은 국적과 관계없이 아동을 ‘18세 미만의 사람’으로 포괄적으로 정의하고 있지만 보육원은 준영이를 돌보기 위한 의료급여나 기초생활수급 등 지원금을 받을 수 없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과 사회복지사업법 등 사회복지 관련 법령에서 보호 대상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아동’으로 한정되기 때문이다. 결국 준영이는 구청의 도움으로 ‘행려자’로 인정됐다. 준영이를 도와주고 있는 이주아동 지원단체 관계자는 “행려자로 인정된 후 지원을 받고 있지만 준영이가 출생 등록을 한다면 베트남 국적자가 돼 지원이 모두 끊길지 모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아동 분야 사업 안내 지침’을 통해 보호조치가 필요한 무국적 및 외국 국적, 미등록 상태의 아동에 대해서도 적절한 보호조치를 하라고 안내했다. 하지만 이 또한 강제성이 없는 지침인 데다 일선 지방자치단체나 복지시설의 이해와 의지에 따라 일관성 없는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김종철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는 “미등록 신분인 나이지리아 여성이 생활고로 인해 아이를 복지시설에 맡기기 위해 찾아갔는데, 복지시설에서 아이를 맡기 위해서는 ‘아동학대’라도 인정돼야 가능하다고 해 경찰에 엄마를 신고한 사례가 있다”면서 “결국 엄마는 경찰 신고로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됐다”고 말했다. 김사강 이주와인권연구소 연구위원은 “아동은 부모의 국적이나 체류자격과 무관하게 ‘아동’이라는 이유만으로 기본적인 권리를 누려야 하지만, 이런 사회적 권리를 오로지 ‘국민’에게만 한정하는 법과 제도 때문에 미등록 이주아동은 장애가 있어도 장애인 등록을 하지 못하고 건강보험에도 가입하지 못한다”며 “보호받아야 할 대상의 국적과 체류자격이 ‘아동’이라는 사실에 우선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미등록 이주아동 리포트]①‘출생등록권 보장’ 법 개정이 출발점

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ㆍ유엔아동권리협약에도 명시
ㆍ영토 내 모든 아동에 적용해야

몽골 출신 불법체류자 가나(가명)가 아들과 함께 지난 1일 서울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정지윤 기자

몽골 출신 불법체류자 가나(가명)가 아들과 함께 지난 1일 서울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정지윤 기자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2008년 5만8007명이던 이주아동 수는 2016년 20만1333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이는 ‘결혼이민자’와 ‘한국 국적 취득자’의 외국 국적 자녀들만 포함하고 있어 부모가 모두 외국 국적자인 이주아동은 반영되지 않았다. 법무부는 출입국기록을 바탕으로 국내 만 18세 미만 미등록 이주아동을 2895명으로 집계하고 있지만 국내에서 태어난 미등록 이주아동을 포함하지 않아 현실성이 떨어지는 수치다.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가 지난해 경기도에 거주하는 만 0~12세 이주아동 14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명 중 1명(26.2%)은 미등록 상태였다. 이에 비춰 상당수 이주아동들이 미등록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정부 차원의 미등록 이주아동 수에 대한 집계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원인은 현행법상 외국인의 출생등록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은 대한민국 국민의 출생에 대해서만 증명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한국도 1991년 당사국이 된 ‘유엔아동권리협약’은 모든 아동의 출생신고를 보장하는 ‘보편적 출생신고 제도’를 도입할 것을 촉구하고 있지만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이주아동도 부모의 국적국 재외공관에서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등 한국에 대사관이 없는 국가는 30개 이상이다.

전문가들은 ‘출생등록권’ 보장이 이주아동 인권의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김사강 이주와인권연구소 연구위원은 “출생등록을 하지 못한 아동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의료·교육·복지 등 기본적인 사회서비스에서 배제되고, 아동학대 같은 문제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게 된다”면서 “이주아동의 출생등록을 제도적으로 보장해 이주아동 수를 정확히 집계해야만 그에 맞춰 정책을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진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동 변호사는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에 이주아동의 출생신고에 대한 별도의 특례조항을 도입하는 등 이주아동이 공적으로 기록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대한민국 아동의 권리만을 한정적으로 보장하는 관련법 개정도 시급하다. 캐나다, 영국 등은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 보장하는 모든 권리를 국적과 상관없이 영토 내 모든 아동에게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현행 아동복지법,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등이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아동에게만 무상보육, 교육비, 기초생활수급 등을 지원하게 하고 있다. 출입국관리법에는 이주아동 부모에게 임시체류 자격을 부여할 법적 근거가 없다. 

김종철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는 “헌법 제6조 1항에 따르면 유엔아동권리협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이 있는데, 현행 아동복지법 등은 이 협약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않다”면서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맞춰 법을 개정하든지 아니면 해석상이라도 이주아동에게 적용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5032315005&code=940100#csidxf091bca581f18718e217b34b9b8ec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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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5032334005&code=940100#csidxd7f36f87b65470e891a9c12a5490840 onebyone.gif?action_id=d7f36f87b65470e891a9c12a549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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