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 이주아동 리포트]③‘나홀로’ 방치된 이주아동들“학교 가고 싶어요”

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ㆍ“몇 달 걸려 서류 준비했는데 딴 학교 알아보라니요”
ㆍ이주아동의 ‘교육 받을 권리’

베트남 출신 박모군(오른쪽)과 한국인 양아버지 박모씨가 베트남 현지에서 보낸 박군의 중학교 입학 관련 서류를 살펴보고 있다. 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베트남 출신 박모군(오른쪽)과 한국인 양아버지 박모씨가 베트남 현지에서 보낸 박군의 중학교 입학 관련 서류를 살펴보고 있다. 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몽골에서는 친구들과 고무줄놀이하는 걸 가장 좋아했어요. 그런데 여기는 같이할 친구도 없으니까….” 

TV·컴퓨터도 없는 서울의 한 반지하 단칸방. 학교에 가야 할 시간인데도 몽골 출신 미등록 이주아동 나라(9·이하 가명)는 집에서 홀로 엄마를 기다린다. 나라를 받아주는 초등학교가 한 곳도 없기 때문이다. 식당에서 일하는 엄마는 오전 7시쯤 집을 나서 오후 7시가 넘어서야 돌아온다.

그동안 모델이 꿈인 나라는 혼자 여러 벌 옷을 갈아입고 거울 앞에서 ‘모델 워킹’ 연습을 한다. 나라는 요즘 초등학생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휴대전화 게임도 “만렙(게임에서 레벨 수치가 최고점에 이르렀다는 뜻)을 찍어서 재미없어졌다”고 했다. 배가 고프면 엄마가 사다놓은 라면, 빵, 과자 등으로 허기를 달랜다. 

집 밖으로 나가 또래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고 싶지만 나라는 한국말을 할 줄 몰라 나갈 수도 없다. 일주일에 두어 번, 집 근처 외국인근로자센터에서 이주노동자 자녀를 위한 무료 한국어 수업을 듣는 것이 또래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의 전부다. 

대부분의 시간 홀로 집에 방치되는 나라는 극심한 불안 증세를 보인 적이 있다. 센터에서 한국어 수업이 끝난 뒤, 일이 늦게 끝난 엄마가 밤 늦은 시간까지 나라를 데리러 오지 못한 날이었다. 당시 아이를 맡았던 센터 관계자는 “ ‘집에 데려다줄까’라고 했더니 나라가 집에 혼자 있으면 무섭다고 극구 거부했다”며 “숨을 제대로 못 쉴 정도로 울면서 10초에 한 번씩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고 말했다.

2만여명으로 추정되는 국내 미등록 이주아동 중 상당수가 공교육의 울타리 밖에 있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발표한 ‘서울시 중도입국 청소년 현황과 지원 방안’을 보면, 2010년 기준으로 나라처럼 중도 입국한 7~18세 아동 875명 중 초·중·고교에 다니는 비율은 5명에 1명(21.7%)꼴이었다.

초등학교의 경우 56.4%로 비교적 높았지만 중학교는 18.1%, 고등학교는 3.1%로 연령이 높아질수록 재학률이 낮아졌다. 

돌봄이 필요한 미취학 이주아동조차 일부 보육기관에서 입학을 거절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가 이주아동 부모 14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경기도 외국인아동 기본권 실태 모니터링’ 보고서에 따르면, 콩고 출신 이주민 ㄱ씨의 아이는 “어린이집에 흑인이 다닐 수 없다”는 이유로 입소를 거절당했다. ㄱ씨는 “그런 어린이집에 아이가 다녔다면 얼마나 힘들었겠나”라고 말했다. 6세 아이를 둔 중국인 이주노동자 ㄴ씨는 “어린이집에서 한국인 학부모들이 외국인 원생이 있으면 싫어한다고 거부한대서, 외국인 원생이 있는 곳을 수소문해서 들어갔다”고 말했다.

결국은 체류 신분 문제 삼아 
브로커에 번역·공증까지
수백만원 썼지만 학습 공백
 

베트남 출신 박모군(18)의 한국인 양아버지 박모씨(49)는 아들의 중학교 입학을 위해 수백만원을 들여 브로커까지 이용해야 했다. 박군은 베트남에서 태어났지만 한국 남자와 결혼한 어머니를 따라 한국으로 입국했다. 박군이 중학교에 입학하는 과정은 험난했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초등학교 졸업·성적증명서, 중학교 재학·성적증명서 등 10여장의 서류를 준비하는 데만 몇 달이 걸렸다. 박씨는 “베트남에 있는 아들 조부모가 서류를 준비하기에는 절차가 복잡해 베트남 현지에 있는 브로커를 통해 준비했다”면서 “서류를 한국에서 번역하고 공증을 받는 데 드는 비용까지 합하면 300만원이 넘게 들었다”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교마다 요구하는 서류를 일괄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10년 넘게 이주아동의 학교 입학을 도왔던 이은하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 사무국장은 “서류가 완비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다보니 학교를 못 가게 된 아이들은 학습 공백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2010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으로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자녀도 국내 거주 사실만 확인되면 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 하지만 법을 개정해도 상당수 학교들은 체류 신분 등을 문제 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박씨가 학교에서 요구한 서류를 모두 가져갔지만 학교에서는 아들의 체류 신분을 문제 삼았다. 박씨는 “ ‘불법체류자 아니냐’ ‘한국 국적은 언제 나오느냐’고 묻는 선생님들이 많았다”면서 “문제가 생기면 책임진다는 각서라도 쓰겠다고 하자 그제야 학교 측은 검토는 해보겠다는 식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박군은 서울 서대문구와 은평구에 있는 모든 중학교에서 입학을 거절당했다. 다행히 베트남 학생을 받아준다는 중학교를 어렵게 소개받아 입학할 수 있었다. 교육부 관계자는 “출입국 사실증명 서류 등을 요구하는 사례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는 있지만 처벌 규정이 없어서 어쩔 수 없다”고 답했다. 이어 “현행 초·중등교육법은 대한민국 국민의 교육권 보장을 위한 것이고, 이주아동 학생들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입학을 받아준다는 취지라 이런 문제가 심화된 건 사실”이라면서 “차별 철폐를 위해서 처벌이나 징계 조항이 생기는 등 규정이 강화돼야 학교장 입학 거절 문제가 해결될 수 있지만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입국 이주아동 재학률 21.7% 
고등학교는 3.1%에 불과하고
미취학 아동부터 갈 곳 없어
 

“잘사는 집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라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이주아동을 거절하는 학교도 있다. 이주아동 ㄷ양(12)은 서울 성동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입학을 거절당했다. 교장선생님이 “특별활동 비용 등을 아이가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거절한 것이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제28조는 아동의 교육받을 권리는 소득, 국적, 인종, 불법 이주와 관계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1991년 유엔아동권리협약의 당사국이 된 한국에서 이주아동의 교육권은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법은 “거주 증명하면 입학 허용”…현실은 학교장 재량으로 “불가”

처벌규정 없어 거부 못 막아 
의무교육 권리도 ‘국민’ 한정

2010년 개정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19조에 따르면 미등록(불법체류)인 이주아동 학생도 거주지가 속하는 학군 안에 있는 초·중등학교의 장에게 학생의 입학 또는 전학을 신청할 수 있다. 2010년 전에는 출입국에 관한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제출해야 했지만 임대차계약서나 거주사실에 대한 이웃 주민의 보증서 등 거주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서류만 제출하면 입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귀국한 아동은 교육감이 정하는 바에 따라 귀국학생 특별학급이 설치된 초등학교에 입학 또는 전학할 수 있다”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19조 4항을 악용해 학교장들이 입학을 사실상 거절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은하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 사무국장은 “학교장들이 특별학급이 설치된 학교로 입학을 권유하지만 특별학급이 설치된 학교가 많지 않아 아이들이 장거리 통학을 해야 한다”며 “교육청에 도움을 요청해도 학교장 재량이라는 말만 되돌아온다”고 했다. 이주아동을 위한 예비학교를 운영하는 서울 지역 초등학교는 2017년 기준 9곳이고, 중학교는 3곳, 고등학교는 1곳뿐이다.

전문가들은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따라 의무교육의 권리를 대한민국 영토 내 모든 아동에게 보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진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동 변호사는 “현행 교육기본법 제8조는 의무교육의 권리를 “국민”으로 한정하고 있는데,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맞춰 모든 “아동”은 의무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등은 교육 관련 법령을 통해 국가의 영토 내에 존재하는 모든 아동이 의무교육을 받을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의 모든 아동들은 시청에 별다른 서류 없이 입학신청서만 제출하면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공립학교에 자동으로 배정된다. 이 과정에서 아동의 신분을 확인하는 절차도 없다. 프랑스는 학교장이 입학을 거부할 경우 소송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도록 했다. 

김 변호사는 “프랑스 등 많은 나라에서 이주아동 입학을 거부하는 학교에 법적 제재를 가한다”면서도 “전입학 거부를 금지하는 법 규정도 필요하고 예산 부족 등으로 이주아동을 감당하지 못하는 학교들을 감안해 이주아동 특별학급 설치를 지원하는 규정도 함께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석원정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장은 “이주아동에게는 취학통지서가 발부되지 않고 취학에 관한 정보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어 한국 상황을 모르는 이주노동자 부모가 적절한 시기에 자녀를 입학하도록 하는 것이 쉽지 않다”면서 “이주아동도 대한민국 아동과 동일한 조건에서 의무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5062235005&code=940100#csidx4cc6ec1a2bfae97b129e0fc23227b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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