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나라 한국, “마음만큼은 따뜻하면 좋겠어요”한울타리 (2)스리랑카
  • 수정 2018.03.07 11:44
  • 게재 2018.03.07 10:07
  • 호수 363
  • 16면
  • 이정호 선임기자(cham4375@gimhaenews.co.kr)
▲ 스리랑카 이주노동자들이 주말에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른쪽부터 인두닐, 버삼, 우다야, 갈얀, 시리말 그리고 산다겔룸

 

 

이주민 산재처리·임금체불 편법 여전
가족 초청 회사 여건 만들기 쉽지 않아

체류 보장하는 E7-4 비자가 ‘꿈’
앞선 기술 배워 본국에서 활동 바라

외로움 오래돼 습관처럼 몸에 배어
불교신도 많아 한국과 비슷한 문화



밤이 이슥해지자 김해시 동상동 인근의 한 가게에 친구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인두닐(36)이 운영하는 가게인 DC마트는 주말 저녁이면 스리랑카 이주노동자들의 사랑방이 된다.
 
"어 추워~" 키가 멀쑥하게 큰 우다야(36)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3월이 되었지만 여전히 밤 기온은 쌀쌀하다. 스리랑카 친구들이 한국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것 중 하나가 추위다. 스리랑카는 적도에 가까운 곳이다. 연평균 기온이 섭씨 27, 28도 정도인 고온다습한 열대 기후에서 살다가 한국에 와서 만나는 겨울은 그야말로 혹독하다.
 
"한겨울이 지나니 좀 살만 하네요. 10년을 살아도 추위는 정말 적응 안돼요. 눈물 콧물 다 나오고…" 인두닐의 푸념이다. 친구들은 주로 토요일 밤 이곳에서 음식을 나눠먹으며 그간 있었던 일들 이야기하고, 술도 마시고 또 흥이 나면 여기 있는 노래방 기기에 맞춰 노래도 부른다. 평일에는 낮 근무에 야근까지 하다보면 모이기 힘든 탓이다.
 
"평소에는 뭐 숙소에서 밥 해먹고 잠자기 바쁘죠." 이주노동자들은 혼자 한국에 와서 몇 년을 지내다보니 외로움이 숨결처럼 몸에 배어있다. 지난해 고향을 다녀온 산다겔룸(34)은 행복한 경우다. 6살짜리 딸과 이제 두 돌이 지난 아들을 실컷 안아주고 왔다. 하지만 결혼 두 달 만에 한국으로 와 7년째 총각처럼 살고 있는 버삼(36)은 고향에 두고 온 아내가 너무 그립다.
 
이들이 고향에 자주 못가는 것은 비용 탓도 있지만, 한국에서 체류를 연장하는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이주노동자들에게 E7-4(숙련기능인력 점수제) 비자 제도가 시행됐다. 이 비자를 따면 2년마다 심사를 거쳐 계속 체류연장이 가능하다. 한국에서 오래 일하고 싶은 게 이들의 공통된 희망인 만큼 이주노동자들에게는 '꿈의 비자'라 할 수 있다. 기존 E-9(비전문 취업)이나 H-2(방문취업) 비자의 경우 4년 10개월까지만 체류가 가능하다. '성실노동자'에 한해 체류 기회가 한 번 더 주어진다.
 
"2년간 소득이 6600만 원이 되어야 점수를 제대로 받는데… 그 이하는 점수가 낮아요. 고향 가서 한 달 남짓 지내고 오면 수입이 쑥 빠지니까 갈 엄두를 못내는 거죠." 버삼의 설명이다. 
 
물론 수입만 충분하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니다. 토픽(TOPIK:한국어능력시험)에서도 좋은 점수를 얻어야 한다. 그러자면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토픽이 가장 어려워요. 하지만 공부할 시간이 없어요." 한국에 온 지 5년째로, 침대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는 우다야는 E7-4 비자를 따겠다는 욕심을 냈다. 그리고 주말에 외국인지원센터 등에 나가 강의를 들었지만 오래 지속하지 못했다. 주간근무에 야근까지 하다보면 너무 피곤해서다.
 

고향에 자주 가지 못한다면 대신 가족들을 초청할 수도 있다. 적어도 제도적으로는 그렇다. 근무하는 회사의 사장이 가족을 초청해주면 3개월간 체류할 수 있다.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초청 받은 가족이 3개월이 지나도 돌아가지 않으면 불법체류가 되는 거죠. 그러면 사장이 책임져야 해요. 그 회사는 다음번에 외국인노동자 못받아요" 그런 위험이 있기에 사장이 가족 초청을 안 해준다는 인두닐의 설명이다.
 

▲ 지난해 4월 스리랑카 설날에 열린 체육대회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스리랑카 이주민들.

 
이전보다 나아지기는 했지만 임금 체불이나 산재처리 등도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여전히 심각한 문제다. "한국 사람들처럼 25일이면 25일 그렇게 월급날을 정해주면 되는데 어떤 사장은 10일에 얼마, 17일에 얼마 이런 식으로 찔끔찔끔 줘요. 한 번에 달라고 하면 '나도 원청에서 돈 받아야 주지' 이런 식이죠." 어떤 이주노동자는 퇴직금도 제대로 못 받는다. 사업주가 임의로 깎아서 주거나 아예 안 주고 법대로 하라고 한다.
 
산재도 마찬가지다. 사업주가 산재처리를 않고 공상처리 한다. 그러면 나중에 후유증이 생기면 보상도,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주변 동료들 이야기 들어보면 희한한 사업주들 많아요. 불량 많이 나온다고 욕하고 구박하고, 어떤 사장은 밖에 외출도 못나가게 해요. 감시카메라 달아놓고…"
 
이런 문제들은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 모두에게 해당되는 어려움일 것이다. 하지만 착하기로 소문난 스리랑카 사람들에게는 닥칠 경우 더 아픈 일들이다.
 
"여자친구가… 음… 저 보고 착하다고 그래요." 한국인 여자친구와 3년째 사귀고 있는 우다야가 씩 웃으면서 수줍게 말했다. "그런데 한국 여자는 스리랑카 여자보다 손놀림이나 행동이 재빨라요. 머리도 좋은 것 같아요." 4계절이 뚜렷한 온대 기후의 사람들과 일 년 내내 여름인 열대 기후 사람들의 특징이 같을까마는 한국 사람의 민첩함과 총명함이 이들 눈에 두드러지게 보인 것 같다.
 

▲ 이주민들이 준비한 선물을 받고 있는 스리랑카 어린이들.

"한국은 불교 신도가 많은 게 스리랑카와 비슷해요. 좋은 사람도 많고 배워야 할 것도 많아요." 우다야는 한국에서 기술 배워서 스리랑카에 가서 자동차정비 회사를 차리는 것이 꿈이다. 산다겔룸은 돈을 많이 벌어 자동차 수입상을 하고 싶다. 스리랑카에서 경찰을 하다가 그만두고 한국에 온 갈얀(42)은 고향 바닷가에 호텔을 지어 운영하는 게 인생의 목표이다. 
 
"스리랑카는 한국보다 20년 정도 늦은 것 같아요. 그래서 여기에 온 친구들이 앞선 기술을 배워서 스리랑카에 가서 사회 활동 하고 싶어 해요." 인두닐의 말이다.
 
인두닐 자신은 한국에 와서 결혼해 이곳에 눌러앉았지만 언젠가 스리랑카에 가서 살고 싶다. 한국과 스리랑카 간에 상품을 교역하는 무역회사를 차릴 생각이어서 그 준비도 차근차근 하고 있다.
 
"스리랑카만큼 좋은 곳 없어요. 먹거리 많고 볼 것 많고 사람들은 착하고…" 그 좋은 곳을 뒤로 하고 추운 한국에 온 그들. 힘든 여건에서도 야무진 꿈을 키우고 있다.  

김해뉴스 /이정호 선임기자 cham4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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