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협받는 외국인 노동자 주거권…당국은 나몰라라 팔짱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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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노동자 고용허가제 시행 7년. 임금 체불이나 산업재해 보상, 장시간 노동 등 외국인 노동자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여전히 '전방위'적이다.

고용노동부와 산하 기관은 정기 점검을 하고, 상시 상담 창구를 여는 등 다방면으로 외국인 근로자들의 침해된 인권을 구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사각지대는 여전히 존재한다. 바로 외국인 노동자의 숙소, 주거권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0월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 주거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 결과만 보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회사가 제공한 기숙사나 회사 소유의 가건물 등 숙박시설 천 백 57곳이 모두 근로기준법 시행령을 준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고용 노동부 관계자는 "관계 법령에 따라 1인 면적 2.5 제곱미터 준수 여부, 혼숙 여부 그리고 사생활 침해, 소음 노출 등을 조사한 결과 위법 사항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정부 조사 결과는 현장의 실상과는 정반대다. CBS의 현장 취재에서도 확인됐듯, 고용허가제에 의해 합법적으로 국내에서 일하고 있는 상당수 외국인 노동자들도 위생과 안전 등에서 상당한 문제를 안고 있는 무허가 건물에서 살고 있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 등 관계기관은 정부에서 점검을 한 조사 대상 자체가 사업주가 숙소를 제공해 등록한 경우에 한정돼 있는데다 전체를 일괄 조사한 게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고용허가제 제도 자체가 외국인 노동자를 열악한 숙소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고용허가제가 외국인 노동자에게 기숙사 제공을 사업자의 선택사항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양주시외국인근로자복지센터 이주민복지사업부 조은우 팀장은 "사업주가 숙소를 배정해주지 않을 경우 외국인 노동자 스스로 숙소를 찾는데 경제적 부담 때문에 무허가 가건물에 세를 얻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는) 이런 경우 개인의 선택에 따른 결과로 보고 조사에서 제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도 "외국인 노동자의 숙식 여부는 노-사 간의 계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식사와 기숙사 제공은 법적 의무가 없다"고 말해 시민단체의 원인 파악이 틀리지 않음을 사실상 인정했다.

이같은 고용허가제의 맹점은 외국인 노동자를 계속해서 열악한 주거 환경으로 내쫓고 있다.

조 팀장은 "외국인 노동자들은 관련 법률이나 생활 상식을 모르니 세입자로서 집주인에게 보수 요구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나중에 잘못된 것을 알게 된다 하더라도 환경이 달라지지 않으니 차츰차츰 현실에 순응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외국인 노동자들을 돕는 단체들은 "이들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법적으로 사측이 원룸형 기숙사를 제공해주는 게 가장 이상적이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의 여건을 배려해 현실에 맞는 방값을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영세 사업장에서는 숙식 제공에 임금까지 맞춰 외국인 노동자에게 주는 것 자체를 꺼리고 있는 실정이다.

오히려 일부 사업장은 컨테이너 박스를 기숙사로 사용하면서 월세는 물론 전기세, 수도세, 청소 비용 등을 급여에서 공제하는가 하면, 아예 입국 전후로 계약 내용이 달라지는 횡포도 비일비재하다.

외국인 이주노동.운동 협의회가 최근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 931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58.3%가 근로 계약이 다르다고 답했다.

특히 식사와 기숙사 제공 여부가 다르다는 답변이 각각 18.3%와 13%로 나타나 가장 기본적인 근로 계약부터 위반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따라 외국인 노동자들의 열악한 주거환경 개선을 서두르지 않을 경우 인권 침해의 또 하나의 유형으로 국제사회의 비판에 직면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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