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가다 사고난 불법체류자 산재 인정 기준은
2011-06-27 오후 2:29:41 게재

업주가 "튀어라" 지시했다면 산재
옆사람 말만 듣고 도망갔다면 불인정

중국인 불법체류자인 손 모씨는 2009년 2월 10일 동양건설의 하청업체에서 형틀 목공 일자리를 얻었다. 출근한지 하룻만인 11일 오전 화성동탄공사현장에서 200미터 떨어진 현장식당에서 점심을 먹던 중, 출입국관리사무소 단속반이 떴다.

팀장급인 중국동포 임 모씨가 "도망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도망치던 손씨는 3층에서 굴러떨어졌다. 왼팔과 허리가 부러지고 얼굴이 상처투성이 된 채 머리가 깨져 뇌진탕을 일으키는 큰 사고를 당했다.

요양을 신청을 했으나 근로복지공단은 도망치다 일어난 사고는 사적 행위에 해당하며 사업주가 제공하는 시설물의 관리소홀로 일어난 사고로 볼 수 없다며 승인을 거부했다.

이 사건을 맞은 서울행정법원 행정4단독 김영식 재판장은 불법체류자가 단속을 피해 도망가다 사고가 났을 때 산재인정의 기준을 제시했다. 김 재판장은 먼저 "불법체류자가 단속을 피해 도망하던 중 사고가 났다면 이는 산재로 인정할 수 없다"고 일반적 원칙을 제시했다. 김 재판장은 다만 예외적으로 '업주가 도망을 지시한 경우'는 "사용자의 지배관리하에 일어난 재해로 산재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기준에 따를 때 손씨의 경우는 어떻게 될까. 재판부는 "출근한지 이틀만에 일어난 사고로서 회사측은 그가 불법체류자라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였다"면서 "중국동포가 손씨를 돕는 차원에서 도망치라고 소리를 질렀을 뿐 회사가 그의 도주를 지시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산재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중간관리자격인 중국동포 임 모 팀장의 '도망치라'는 말을 재판부는 회사의 지시가 아닌 사적인 행위로 판단한 것이다.
진병기 기자 j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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