퓰리처상 기자 “난 불법체류자” 미 들썩
심혜리 기자 grace@kyunghyang.com
ㆍ‘조승희 총기 난사’ 보도 필리핀 출신 바르가스
ㆍ이민법 개정 논의 불지펴

“나는 불법체류자다.”

2007년 미국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 보도로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 유명 기자의 고백에 미국 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특히 그가 몸담았던 워싱턴포스트가 이러한 사실을 숨겨온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국 언론계가 혼란에 빠졌다.

워싱턴포스트에서 특종기자로 이름을 날렸던 필리핀 출신 호세 안토니오 바르가스(30)는 자신이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16세 이후 불안했던 불법체류자의 삶을 22일 뉴욕타임스 주말매거진에 털어놓았다. 바르가스는 2007년 한국계 조승희가 벌였던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 보도로 긴급보도 부문에서 퓰리처상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페이스북의 설립자인 마크 저커버그와 첫 단독 인터뷰를 해 유명세를 더했다. 바르가스는 고백 후 가진 미국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저커버그와 인터뷰하는 그 순간에도 ‘나는 이곳에 있으면 안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살아남고 싶었고 살기 위해 인터뷰를 했다”고 절박했던 심정을 토로했다.


 
고백 기사에 따르면 바르가스는 12살 때 고국 필리핀에서 조부가 살고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로 보내졌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라고 어머니는 설명했다. 자신이 불법체류자라는 사실을 몰랐던 그는 16살 때 운전면허를 신청하러 교통국에 갔다가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은 위조 영주권”이라는 직원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불법체류자라는 사실에 화가 났지만 미국 시민이 될 방법은 묘연했다. 정체를 숨기기 위해 필리핀 억양을 없앴을 뿐이다. 고교 회장을 지내고, 장학생으로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에서 수학한 뒤에는 지역 유력지에서 인턴기자를 할 기회를 얻었다. 이후 몇몇 언론매체를 거쳐 워싱턴포스트에 입사할 때는 신분증명으로 운전면허증을 요구해 신분이 탄로날 뻔했다. 그러나 운전면허증 발급절차가 까다롭지 않은 오리건주에서 면허증을 받아 제출하면서 위기를 모면했다. 이후 언론인으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겉으로 보이는 허울의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매 순간 노력해야 했으며 항상 불안했다”고 말했다.

그는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는 언론인으로서 치명적일 수도 있는 고백을 한 이유에 대해 두 가지를 꼽았다. 진실을 추구하는 일을 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진실을 더 이상 은폐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미국 의회에서 추진되고 있는 불법이민 학생들에 대한 영주권 발급요건을 대폭 완화하는 법안(드림액트)을 통과시키는 데 일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온라인 매체 허핑턴포스트의 수석 에디터직을 사임하고 ‘미국인을 정의(定義)하라’는 이름의 불법이민자 관련법 개정을 위한 비영리기구를 세워 활동하고 있다. 유일한 신분증이었던 오리건주 운전면허증의 8년 기한이 끝나가고 있기도 했다.

바르가스는 당초 전 직장인 워싱턴포스트에 고백기사를 넘겼다. 22일 정치전문지 폴리티코에 따르면 워싱턴포스트는 불법이민자를 고용해 법을 어겼다는 부담에 수주 동안 게재를 망설였다. 평소 이민자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여온 워싱턴포스트 역시 불법체류자에 대한 톨레랑스(관용)를 발휘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결국 워싱턴포스트가 게재하지 않기로 결정하자 실망한 바르가스는 경쟁사인 뉴욕타임스에 연락을 했다. “뉴욕타임스는 기사를 읽어보지도 않고 게재를 결정했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바르가스의 사연이 공개되면서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에서는 이민자 문제에 대한 논의가 급속히 번져나가고 있다.

이번 고백은 그의 인생에서 두 번째다. 바르가스는 고교 시절 자신이 동성연애자라는 사실을 커밍아웃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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