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동포인가 외국인인가

 
"조선족은 달고 시원한 '사과배'"

(서울=연합뉴스) 양태삼 기자 = 조선족이 동포인지, 한국말을 하는 중국인, 즉 외국인인지 따지는 질문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역사, 체제 논쟁과 맞물린 거대 담론으로 비화한다.

중국에서 태어나 중국 국적을 갖고 한국에 들어온 조선족은 법적으로는 엄연한 외국인이다. 그러나 굴곡진 근현대사 속 '고난의 이주사'의 기억과 서로 금세 통하는 언어의 동질성으로 조선족은 다른 외국인과 달리 '우리 동포'라는 심정적 유대감과 함께 다가온다.

하지만 '동포냐, 외국인이냐'를 따지는 이런 양분적 시각의 질문은 세계화, 다문화 한국 사회에서 조선족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상생의 길을 찾는 데 장애가 된다는 게 학자들의 시각이다.

정부의 정책 철학은 과거에 조선족을 동포 관점으로 봤다가 최근엔 외국 인력으로 접근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조선족 출입국 규모를 정하는 정부 국무총리실의 외국인력정책위원회는 2009년 3월 조선족 체류자 상한선을 30만3천명으로 정했다. 이들이 중국으로 돌아가 국내 체류자가 줄면 그만큼만 입국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조선족이 받는 방문취업사증(H2)으로 국내에 머무는 규모는 2009년 말 30만6천명, 지난해는 28만6천명, 올해 3월 말 현재 29만7천명이다.

방문취업 비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인 2007년 비자 문제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해 가족 해체 등 고통을 겪는 조선족들을 구제하는 차원에서 5년 기한으로 언제나 왕래할 수 있게 내준 것이다. 조선족을 다른 외국인 노동자와 달리 동포로서 포용한 정책인 셈이다.

하지만 외국인력정책위원회의 조선족 상한 결정은 이들이 저소득층의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는 부정적 여론과 함께 국내 노동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나왔다는 점에서 조선족을 외국인, 외국인력으로 보는 쪽으로 정책 철학이 바뀐 것이라고 관련단체들은 지적한다.

이에 따라 2007년 입국해 비자 시한이 끝나는 조선족들은 내년부터 매년 6만∼7만명씩 출국해야 한다. 하지만 불법체류자로나마 계속 머물면서 한 푼이라도 더 벌겠다는 게 상당수 조선족들의 입장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서경석 조선족교회 목사는 "조선족도 동포인 만큼 재미동포나 재일동포에게 내주는 자격을 누려야 한다"며 "단순노무를 하는 조선족에겐 재외동포 비자를 주지 않는 법무부 출입국관리법 시행령을 두고 헌법 소원을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곽재석 이주동포연구소 소장은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중국 경제도 커져 조선족들은 서울이 아니라 베이징, 상하이로 일하러 떠날 것"이라며 "그간 한국에서 일하고 싶어했던 조선족들은 대부분 이미 입국했고, 이제 6만명밖에 남지 않았는데 (한국이) 약간의 손해를 보거나 다소 논란이 있더라도 큰 틀에서 포용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곽 소장은 "남북통일을 염두에 두고, 중국과의 관계 등을 감안해 한국과 중국, 북한의 연결고리로서 이들과 상생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인터넷 카페를 중심으로 사회 일각에서는 조선족들이 저소득층의 일자리와 복지를 빼앗아간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반감을 드러내는 움직임도 없지 않다.

다문화반대모임 카페의 한 회원은 "건설 공사장에 가면 일자리를 구할 수 없고 조선족 탓에 일당이 10년간 오르지 않고 있다"며 "이들 탓에 한국 경제의 저임금이 고착화해 빈곤의 악순환이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이 카페에는 차별과 편견에 가득찬 인종차별주의 성향 발언들도 많이 올라온다.

이런 인터넷 카페가 잇따라 등장하는 것은 2000년대 초반 조선족에 대한 온정적 시각이 경제 위기를 거치면서 냉각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을 쫓아낸다면 역시 저임을 쫓아 공장도 해외로 옮겨가고, 식당 종업원이나 간병인 등의 임금도, 물가도 덩달아 상승해 '고비용 저효율' 경제구조로 퇴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간과할 수만은 없는 실정이다.

조선족의 정체성과 관련, 김호웅 연변대학교 문학부 교수는 작년 한 강연에서 '연변 사과배'가 함경남도 북청의 사과나무 가지를 연변의 돌배나무 뿌리에 접목해 만든 과일 품종이라고 거론한 다음 조선족도 중국인, 한국인이라고 굳이 구분하지 말고 조선족 자체로 봐줄 것을 당부했다. 김 교수는 "조선족은 중국 주류 민족의 장점을 받아들이고 그들과 선의의 경쟁을 해 자립할 수 있는 민족으로 거듭나야 한다"며 "세계화 시대에 국적이란 살기 위한 방편이면서 허구이자 거품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tsy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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