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원 수순 대구적십자병원, 수십억대 국유지 매입 '뒤통수'
"국민회비 받아 땅투기, 인도주의 死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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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다친 다리를 끌며 대구적십자병원을 찾은 의료급여(무상진료)대상 환자가 진료를 받지 못하자 불끄진 복도를 따라 힘없이 돌아가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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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약자들을 외면하고 투기의혹까지 받는 대한적십자에 회비를 낼 마음이 생기겠습니까."

병원 폐원에 이어 투기 의혹(본지 3월5일 6면 보도)까지 받고 있는 대구적십자병원에 대해 시민들은 본연의 역할을 저버린 처사라며 분개하고 있다.

'인도주의' 구호 아래 창립된 대한적십자사는 시민들의 한푼 두푼 모은 적십자 회비로 운영되는 데도 경영 논리에 따라 의료 약자들을 '나 몰라라'하고 사실상 폐원을 진행하면서도 수십억원을 들여 병원부지(국유지)를 사들였기 때문이다.

 

◆적십자 공공의료 포기하나

몽골 외국인 노동자 A(29)씨는 하마터면 불구가 될 뻔 했다. 사고로 다리가 부러져 대구적십자병원을 찾았지만 병원이 사실상 폐업상태여서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결국 A씨는 2주간 치료를 못하고 있다가 대구적십자병원 노동조합측의 도움으로 상주적십자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A씨는 "불법 체류자 신분이어서 적십자병원이 아니면 치료받을 곳이 없다"고 울먹였다.

이 병원 노조측에 따르면 지난달 말 마지막 의사 두 명이 떠나 사실상 병원에서 치료가 불가능하다. 병원을 그만둔 의사 중 1명은 계속 근무할 의사가 있었음에도 병원측에서 일방적으로 재계약을 거절했다는 것이다. 10여년간 적십자병원에서 진료를 맡아왔던 B과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계속 일하겠다는 의사를 수차례 내비쳤지만 병원측에서 묵살했다. 2월말을 끝으로 재계약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머지 의사 한명 역시 대신할 이를 구해 놓고 퇴직하겠다는 의견이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빈곤층, 불법 체류자 등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서민 환자들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환자들은 다른 지역 적십자병원으로 원정 치료에 나서는 등 곤욕을 치르고 있다.

상주 적십자병원 관계자는 "대구의 의료 빈곤층이 우리 병원을 속속 찾고 있다"며 "수술 등 긴급의료를 필요로 하는 대구 환자들이 한 달 사이 5명이 왔다"고 말했다.

 

◆적십자 설립 취지 무색

적십자사가 매년 국민들이 내는 수백억원의 회비로 살림을 꾸려가고 있지만 대구적십자병원 폐원을 강행함에 따라 '사랑과 봉사', '인도주의'라는 적십자사의 설립 토대가 흔들리고 있다.

이 때문에 시민들은 "코 묻은 돈까지 모아 적십자 회비를 내고 있는데 뒤통수를 얻어 맞은 기분"이라고 꼬집었다.

2008년 기준 전국에서 거둬들인 적십자 회비는 515여억원에 달한다. 대구 시민들도 매년 20여억원의 회비를 내고 있다. 그러나 적십자사는 전국 6곳의 적십자 병원에 연간 회비의 0.7%만 지원할 뿐이다.

대구적십자병원이 적자 경영을 이유로 병원 진료과목을 축소하는 등 공공의료부문 역할을 소홀히 하기 시작한 2007년부터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의료 약자들의 진료 비율도 낮아지고 있다.<표 참조>

노조는 "시민 회비로 땅 투기하고 경영적자란 이유로 병원 문을 닫으려는 병원측 행보는 인도주의에 입각한 적십자 근본 정신을 망각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시민단체들은 적십자 회비 반대 운동까지 펼친다는 계획이다. '적십자병원 공공성 확대를 위한 시민대책위원회' 최성택 위원장은 "의료 취약계층이 이용하는 병원 문을 닫으면서 시민들이 낸 회비로 국유지를 사들인 뒤 땅값을 높여 팔겠다는 계획이 적십자 정신에 맞는지 되묻고 싶다"며 "이런 적십자사라면 시민들이 회비를 납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대한적십자 대구지사 관계자는 "병원 폐원여부에 대해 아직 어떤 결정도 내려진 바 없다"며 "중앙(대한적십자사)에서 병원에 대해 발전적인 방향으로 검토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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