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축제·외국인 밀집지역…"이주노동자 소외만 더해"

기사크게보기 기사작게보기 이메일 프린트


▶1-3-2 날짜, 기자

2011-12-06 06:00 경남CBS 이상현 기자블로그

국내 거주 외국인 120만명 시대. 이 가운데 이주노동자들이 55만명으로 가장 많다. 물론 통계에 빠진 불법체류자들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많아진다.

최근들어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은 분명 나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산업재해에 노출되는 등 노동환경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특히, 이들의 '퇴근 후 삶'에 대해서는 관심자체가 없다. '월급주면 딴 생각 말고 일만 해야한다’는 인식 속에 기본적인 여가조차 허락되지 않고 있다.

고된 육체노동에, 고향을 떠나온 스트레스를 풀 곳 없는 이들은 이곳 저곳 떠돌다 결국 유흥이나 범죄로 빠진다. 과연 이들에게 여가를 즐길 권리는 주어질 수 없는것인지 경남CBS가 짚어본다. [편집자 주]


지난 달 19일 경남 김해의 대성동고분박물관 앞에서 열린 '아시아문화축제'. 네팔인 시워(28)씨는 모처럼 잔업이 없는 날이라, 친구들과 함께 축제 현장을 찾았다.

하지만, 축제 이름과는 다르게 어찌된 영문인지 무대 위에는 한국 청소년밴드들의 노래와 춤 공연만 계속됐고, 친구들의 공연을 보러온 교복차림의 십대들만 북적거렸다.

공연장 주위에 마련된 각국 부스에서도 소개와는 달리 별다른 체험거리나 놀이거리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부스에는 먹거리 장사치들 밖에 없다. 일부 국가 부스는 아예 비어있었다.

고국 네팔 부스에도 볼 만한 것들은 없었다. 전통 의상과 악기 몇 점, 네팔을 소개하는 안내 팜플릿이 고작이었다.

이리 저리 공연장을 기웃거리던 시워 씨 일행은 이내 흥미를 잃고 축제장소를 떠났고, 공연장 옆 언덕 위에 올라 자기네들끼리 모여 앉고 말았다.

시워 씨는 "한국 청소년들이 공연하는 것만 계속 보여주고, 우리들이 즐길만한 내용은 하나도 없어 실망했다"며, "다른 나라 문화도 소개해 주는 게 진짜 외국인축제 아닌가"라고 말했다.

하루만이라도 축제를 즐기려 했던 시워 씨와 친구들은 결국 '나는 이방인'이라는 좌절감만 느끼고 말았다.

◈ 외국인 축제서도 '이방인' 취급…한국문화 강요도

늘 이런 식이었다. 항상 '이주민과 함께' 이라는 타이틀이 달리지만, 정작 축제의 주인은 이주노동자가 아니었다.

자치단체나 공공기관에서 예산을 들여 주최하는 수많은 외국인 축제들은, 대부분 일회성 '전시용' 행사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각 나라별 전통문화 체험 프로그램이라며, 외국 전통의상이나 소품 몇 개만 덜렁 갖다놓거나, 전통 음식을 만들어 맛보게 하는 정도로 진행되는가 하면, 빠지지 않는 한국 노래자랑대회, 사물놀이나 태권도 시범 등의 천편일률적인 프로그램 등으로 채워지기 일쑤다.

올해로 한국생활이 10년째인 방글라데시인 아메드(39) 씨는 "외국인 축제라고는 하지만, 다 똑같은 내용들 뿐이다. 외국인 축제에 몇번 가 본 친구들은 이제는 재미없다며 가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는 대부분의 외국인을 위한 축제들이 축제를 만드는 단계에서부터 외국인들과의 소통을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눈높이를 맞추지 않고, 그저 한국인의 시각에서 쉽게 채워넣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갖고 축제를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기도 부천지역 미얀마인 공동체 회장을 맡고 있는 킹 마웅옌(45)씨는 "지자체나 공공기관에서 주최하는 외국인 축제는 대부분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니 일방적으로 인원 동원 정도만 맡아달라고 통보한다"며 "축제를 만드는 과정에서 우리의 얘기들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이주민노동자들이 스스로 만드는 행사에 대한 이주노동자들의 참여가 폭발적이라는 점은, 이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낼 축제가 많이 없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해마다 스리랑카인들이 자발적으로 여는 크리켓대회의 경우, 전국의 스리랑카인 4~5천명이 모인다. 하루동안 운동장 하나를 빌려 스리랑카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인 크리켓과 몇 가지 단체게임들을 하는 정도지만, 참가자들의 만족도는 높다.

'외국인 노래자랑대회'에 수 백만원의 상금을 걸거나 고가의 상품을 주기도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의 참여는 이끌어 내지 못하면서 사실상 헛돈만 쓰는 셈이다.

심지어는 평일에 열리는 외국인축제들도 있다. 그나마 일요일이 아니면 하루 쉬기도 불가능한데도 말이다.

김해이주민노동자 인권센터 김형진 소장은 "지자체에서 주최하는 외국인 축제의 경우, 공무원들의 성과주의와 연결돼 보여주기식 행사에 그치고 있다"며 "진짜 이주노동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다문화는 곧 외국인들의 한국화'라는 인식으로 외국인들에게 한국 문화 체험에 참여할 것을 은근히 강요하기도 한다.

베트남인 이주노동자 이반송 씨는 "크고 작은 외국인축제들이 열리기는 하지만, 베트남 문화를 즐길 만한 축제는 잘 없다"며 "우리들이 한국 문화를 즐기도록 유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곽대경 교수는 "외국인들을 위한 행사들에서 한국의 문화를 전하는 것도 좋지만, 자기들에게 익숙한 자기나라의 고유한 놀이문화를 즐기는 것이 그들에게는 놀이적인 측면에서는 훨씬 효과적"이라고 지적했다.

◈외국인 밀집지역은 '쇼핑가' 불과…'놀이터' 못돼

경기도 안산의 '국경없는 마을'은 우리 나라 최대의 외국인 밀집지역이다.

올해 6월 기준으로 등록된 외국인만 5만여명이 살고 있는 안산시, 그 중에서도 외국인들이 몰려있는 원곡동 일대는 지난 2009년 5월 다문화 공동체의 선도지역으로 시범화하는 지역발전 특화지구로 지정됐다.
'국경없는 마을'에는 여러 기관에서 운영하는 외국인 쉼터, 식당과 식료품점, 은행이나 여행사 등 편의시설은 물론 외국인 전용 노래방, 피씨방, 성인오락실 등 각종 유흥업소들까지 있어 겉보기에는 외국인들이 즐기기에 손색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곳에서 조차 이주노동자들은 마음 편히 즐길 형편이 되질 못한다.

먹거리 장터나 거리 이곳 저곳을 구경하면서 생필품을 사고 돌아다니는 게 전부. 사실상 쇼핑이 전부다. 자국의 문화나 즐길 꺼리가 없다.

인도네시아인 아렌드라(32)는 "국경없는 거리를 와도 별로 즐길꺼리가 없다"며 "특히 술과 고기를 먹지 않는 이슬람교도들에게는 더욱 놀이문화는 없다"고 말했다.

안산의 '국경없는 마을'이 그나마 나은 곳. 경기도 부천이나 경남 김해 등에서 외국인 밀집지역이 생겨나고 있지만, 단순 쇼핑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나 돈이 없는 나라의 노동자들에게 이러한 밀집지역은 소외감만 더 줄 뿐이다.

안산 외국인노동자의 집 김영선 사무국장은 "상대적으로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이 많은 지역에서 밀집거리가 생기고 있지만, 문화적 다양성을 품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