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사랑방
위기의 결혼이주 여성들에게 관심을!
내 친구(이름은 밝히지 않는다)는 꽃다운 나이에 남편을 따라 모든 꿈과 희망을 안고 고향을 떠나 한국에 왔다. 하지만 남편은 뭐가 그렇게 급한지 개구쟁이 두 아들만 남겨놓고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부모 형제 없이 낯선 땅에서 남편의 갑작스런 사망이 이 친구한테는 청천벽력이 아닐 수가 없었다.

남편의 갑작스런 사망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두 아들과의 생계 문제다. 남편이 살아있을 때 둘이서 같이 가꾸던 텃밭이랑 집은 모두 시댁에서 가져갔고, 이 친구한테 남은 것은 단지 두 아들뿐이다. 젊은 나이에 감당하기 힘들지만 두 아들을 생각해서 마냥 눈물만 흘리고 있을 수는 없는 일. 당당한 엄마로 태어나기로 마음먹었다. 한국에 온 지 7년이 되었지만 남편과 농사를 짓느라 제대로 된 한국어 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 하지만 평소 라디오와 책을 통해 배운 한국어 실력은 사람들이 놀랄 정도다.

아기를 낳고부터 계속된 허리 통증이 최근에는 무릎까지 내려와 걷기도 힘들 정도가 됐고, 며칠 전 아침에는 왼쪽다리 전체를 움직일 수 없게 됐다며 울먹이며 나한테 전화를 걸어왔다. 때마침 대구 출장을 가야 하는 상황이라 나도 어떻게 해 줄 수가 없었다. 걱정되는 마음에 퇴근하고 아기를 남편한테 맡기고 저녁에 병원을 찾아갔다.

그는 의지대로 몸을 뒤척일 수도 없을 만큼 악화된 상태였다. 화장실에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식은땀을 뻘뻘 흘려야 했다고 한다. “혹시 너의 엄마가 출생신고를 20년 뒤늦게 한 것 아니야? 20대 나이에 몸은 완전 40대잖아 이 할멈아!”라고 농담을 던졌다. 혹시 또 저녁에 혼자 화장실 간다고 고생할까봐 아예 화장실 수발을 들고 돌아가려고 기다렸다. 마침 화장실에 가겠다며 내 목을 잡고 겨우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런데 다리에 힘이 전해지질 않아 스스로 침대에서 내려놓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옆 침대의 아저씨 도움으로 겨우 내려와 화장실을 다녀올 수 있었다.

어느새 밤 10시 30분이 훌쩍 넘어 집에 가야 하는데, 그 친구를 두고 발걸음이 차마 떨어지지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는 동안 친구의 병실 문을 바라보니, 병실 호수가 적힌 아크릴 판 공란에 보호자가 없는 병실이라고 명시돼 있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집에 들어가 보니 남편이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남편의 존재가 그렇게 고맙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나도 부모 형제도 없고, 주변에 일가친척이라고는 한 명 없는 이곳에서 남편,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만약 남편이 없었더라면 나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이런 외로움은 다들 알고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진정으로 공감하는 사람은 우리 같은 결혼이주 여성이나 이주노동자들 뿐일지도 모른다. 사회에서 소외되어 있는 결혼이주 여성에 대한 관심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같다.
박혜영 / 김천다문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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