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까지 외국인 근로자 시대… 1만명 넘었다

입력 : 2011.07.22 03:01

언제부터 들어왔나 - 2004년 고용허가제 이후
매년 1000~3000명씩 입국 올해 쿼터는 4500명
그래도 부족한 일손 - 농장주들이 乙의 처지
외국인 근로자 잡기 경쟁… 숙식은 기본, 휴대폰도 제공

20일 오전 경기도 시흥시 한국지도자아카데미 연수원 인근 고추밭. 고추 묘목 사이로 20~30대로 보이는 젊은 베트남 근로자 60여명이 서 있었다. 이 연수원의 이성진(52) 교육부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태풍이나 비바람이 심하면 고추 묘목이 쓰러져 썩을 수 있어요. 쓰러지지 않도록 지지대 끈으로 꽉 묶어주세요!"

한국 농촌에서 일하게 될 베트남 근로자 60여명이 지난 20일 경기 시흥시 한국지도자아카데미 강의실에서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위한 한국어 수업을 받고 있다. 농협중앙회는 매년 3000~4000명의 외국인 농업연수생들에게 2박3일 동안 한국어와 근로기준법, 기초 농업기술을 가르친 후 일손이 부족한 농촌에 투입하고 있다. /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강사의 말에 따라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실습을 하던 도 다이(Dai·26)씨는 "일곱 살 때부터 농사를 지어왔다"며 "돈도 벌고 한국의 선진 농업기술을 익혀 베트남에 돌아가서는 농장사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난 19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해 농촌취업교육을 받고 있는 160명 베트남 근로자의 일원이다. 지난 2004년부터 신설된 고용허가제를 통해 그동안 우리나라에는 '외국인 농촌 일손'이 매년 1000~3000명가량 유입됐다. 7월 현재 농촌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는 1만1394명(작년 말 9849명)으로, 올해 처음 1만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농촌에는 여전히 일손이 부족해 농가마다 '외국인 근로자 모셔오기' 경쟁이 벌어진다.

올해 농촌에 배정된 외국인 근로자 쿼터(취업 할당량)는 4500명. 농림수산식품부 등 농촌 유관기관에서는 "1만명으로 늘려달라"고 고용노동부에 요구했지만 반영이 안 됐다. 이 때문에 입국하는 '외국인 농촌 일손'을 놓고 농장주들의 신청을 받을 때면 일주일도 안 돼 신청이 마감된다. 어떤 지역에서는 1~2시간 만에 마감돼 버리기도 한다.

이날 오후 충남 논산의 한 마을에서도 인력난에 시달리는 농촌 모습을 볼 수 있었다.

2만6446㎡(8000평)의 상추밭에서 캄보디아와 베트남 출신의 근로자 6명이 상추를 수확하고 있었다. 이 농장에서는 최근 한 달 새 70~80대 연령층의 한국인 근로자 4명이 건강 때문에 일을 그만뒀다.

농장 대표 김영환(54)씨는 "외국인 근로자가 없으면 농사를 포기해야 할 판"이라며 "보통 오전 8시부터 일을 시작하는데 일손이 달리는 요즘엔 새벽 6시에 깨워서 잔업근무수당을 5000~6000원씩 더 주고 일을 시킨다"고 했다.

경남 하동군 옥종면에 있는 공영표(52)씨의 상추 농장은 베트남 근로자 4명의 일손으로만 운영된다. 이 마을에 있는 상추농장 10곳에서 일하는 사람 40명 중 30명이 외국인 근로자다.

농장주들은 언제 떠날지 모를 외국인 근로자를 붙잡느라 숙식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수시로 회식을 시켜주고 휴대폰까지 제공하기도 한다. 같은 외국인 근로자들끼리 결혼을 주선하기도 한다. 전남 나주의 한 버섯농장에서 일하는 베트남 근로자 엠고반(28)씨와 쿠티트(27)씨는 1년 전쯤 같은 농장에서 일하다 결혼했다. 농장주 박모(54)씨는 "예식장과 주례를 다 섭외해줬고 신혼여행도 보내줬다"고 했다.

하지만 5년이라는 제한된 체류 기간 안에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은 단 10만~20만원만 더 준다고 해도 계약을 어기고 다른 농장으로 옮겨버리기 일쑤다. 이들을 고용하는 농장주들이 '제발 있어달라'고 붙드는 '을'의 입장이고, 외국인 근로자가 '갑'이 되는 상황이다. 전북 장수군에서 파프리카 농장을 하는 백모(44)씨는 "지난 3년간 외국인 근로자 6명을 고용했는데 벌써 3명이 더 좋은 조건을 찾아 말도 없이 떠나버리는 바람에 황당했다"고 말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0년 현재 우리나라 농어촌취업자 수는 164만8000명이다. 정상적으로 농가를 운영하려면 21만명의 인력이 더 필요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전익수 부연구위원은 "농촌 인력의 60%가 65세 이상일 정도로 고령화돼 5~10년 지나면 대부분 일을 그만둬야 할 처지"라며 "올해만 해도 외국인 근로자가 1만명은 더 충원돼야 인력 수급을 맞출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외국인 근로자 쿼터를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어서 농촌에서 '외국인 일손 모셔오기'는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