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주워야 했던 외국인 부부…출국명령에 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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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1 16:44 전남CBS 박형주 기자블로그

모로코인 후산(가명)씨(43)의 부인은 지금 여수의 한 종합병원 중환자실에 있다. 지난 7일 오전 11시쯤 전남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출국 상담을 받던 중 5미터 높이의 2층 난간에서 뛰어내렸기 때문이다.

부인 카밀라(가명)(38) 씨는 양쪽 발목이 부러지고 허리를 다쳐, 평생 하반신을 못쓰고 살아야 할 위기에 처해 버렸다. 합법체류자인 카밀라씨는 왜 몸을 던져야만 했을까?

약 9년 전, 후산 씨는 한국산 중고차를 해외에 수출하는 사업을 하겠다며 B-8(비즈니스 비자)비자를 받고 입국했다. 하지만 사업은 좀처럼 잘 풀리지 않았고, 궁여지책으로 여수에서 외국 음식점을 차렸지만 이 역시 변변치 못했다. 급기야 1년여 전 모로코 본국에 있던 부인 카밀라씨까지 한국으로 들어왔고, 약 한달전 주변의 도움으로 돈을 빌려 어렵사리 인근 광양에 갈비 음식점을 차려 재기를 다짐했다.

그런데 돌연 지난달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연락이 왔다. 상표법을 위반해 벌금형을 받았으니 본국으로 돌아 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모로코를 방문했다가 친구가 준 선물들이 문제였다. 후산 씨는 악세사리 노점를 하던 모로코 현지 친구가 한국 친구들에게 주라며 준 가짜 명품 시계 30여 개를 갖고 들어왔고, 인천공항의 검색 과정에서 이것이 문제가 됐다. 후산 씨는 전부 조잡한 플라스틱 시계여서 팔 수도 없다고 했다.

법원은 결국 지난 8월 12일 후산 씨에게 상표법 위반 혐의로 벌금 4백만 원을 선고했다. 후산 씨는 그러나 이처럼 2백만 원 이상 벌금을 받으면 강제 출국당한다는 고지를 전혀 받지 못했다고 했다.

가뜩이나 생계가 어려웠던 H 씨 부부는 이 벌금을 갚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폐지를 주워야 했다. 주변 사람들은 외국인 부부가 무슨 일로 폐지를 줍나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부부는 막노동과 식당 주방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처럼 어렵사리 돈을 모아 벌금을 다 갚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출국명령을 받은 것이다. 후산 씨는 "1년 이상 나가야 했다면, 항소 등 구제 방법을 찾았겠지 벌금을 서둘러 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부는 지난달 22일 여수출입국사무소를 찾았다. 부부는 "광양에서 갈비집을 운영하고 있는데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개업한 지 한달도 안됐는데 선처방법이 없겠냐"고 물었다.

후산 씨는 "사무소 직원 A 씨에게 이것저것 물으니깐 '자꾸 귀찮게 말을 시키면 당장 보호소에 감금시켜 내일 본국으로 보내버리겠다. 둘 중에 한가지만 택해라. 내일 당장 나가든지 아니면 14일 이내에 정리하고 나가든지'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출입국사무소는 이같은 일은 없었다고 공식부인했다.
한 달간 유예기간을 받은 후산 씨 부부는 지난 7일 출국 연장 방법을 찾기 위해 다시 출입국사무소를 찾았다. 이번에 만난 사무소 직원 B 씨는 친절했다고 했다. "사업 정리를 할 시간이 필요하니 한달 더 연장해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다른 직원 C 씨가 나타나 손짓을 하며 "안돼, 나가! 나가!"라고 했다고 후산 씨는 주장했다. 출입국사무소 측은 "'카밀라 씨라도 남아 남편이 일년 뒤 돌아올 때까지 사업을 계속할 수 없겠냐'고 요청했는데, 부인의 비자(F-3)는 남편과 반드시 동반하도록 하고 있어 안된다고 한 것"이며, "고압적으로 대한 것은 없다"고 했다.

한국말을 잘 모르는 카밀라 씨는 그러나, 사무소 직원들과 후산, 신원보증인 등이 한눈을 판 사이 사무실 옆으로 난 작은 옥상 문으로 나가 5미터 높이의 난간에 잠시 메달려 있다 투신했다. 전 재산이 한국에 남은 상황에서 어떻게든 남아야 겠다는 생각에 생명을 무릅쓰고 뛰어 내린 것이다.

후산을 오랫동안 봐왔다는 주민 51살 윤 모 씨는 "그렇게 열심히 사는 부부는 처음 봤다"며, "벌금을 나눠서 낼 수도 있는 방법도 있었을테고, 항소하는 방법도 있었을텐데 외국인이라 전혀 알지 못했던 것 같다"며 무척 안타까워했다. 병원 중환자실에서 만난 후산은 이말을 반복했다. "안돼! 안돼! 나가!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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