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소식 '창' 105호] 의료사각지대 방치된 이주민 건강권 확보 위한 부산시의 적극적인 시정을 촉구한다.

올해 법무부는 미등록 이주민의 인권 구제를 가로막아온 공무원통보의무제도를 유예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일부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주민 권리 구제가 이뤄져야 할 노동부, 보건소 등 일선 현장에는 이에 대한 명확한 지침이 전달되지 않고 있었다.

10월 초, 부산시 16개 구 보건소에 미등록 이주민의 보건소 이용 실태를 전화로 문의해보니, 사상구 등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일부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보건소에서는 미등록 이주민의 보건소 이용이 극히 제한적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 등록번호가 없는 미등록 이주민도 임의번호를 부여해 진료를 행할 수 있음에...도 외국인 등록증이 없으면 진료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엉터리 답변을 여러 번 들었고, ‘체류자격이 없는 사람을 왜 보건소가 치료해주어야 하느냐’며 미등록 이주민의 건강권 자체에 관심이 없는 곳도 있었다. 특히, 법무부에서 공무원통보의무제도를 유예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황임에도 보건소가 나서서 출입국에 신고를 하고 있다는 곳마저 있었다. 지역사회의 가장 기초적인 건강지킴이 역할 해야 할 보건소가, 지역주민인 미등록 이주민의 건강권 수호에 앞장서지는 못할망정, 의료보험이 없어 병원에도 잘 가지 못하다가 어렵게 보건소를 찾은 이들을 내쫓고 심지어 잡아가라고 신고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아픈 이주민이 찾기 어려운 것이 보건소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12시간 이상 장시간 근무가 일상적인 제조업 현장에서 병원 갈 시간을 내는 것도 쉽지 않고, 어렵게 병원을 찾는다 해도 말이 통하지 않아 증상을 설명하는 것은 물론 진단과 처방에 대한 설명을 알아듣기도 어렵다. 사정이 이러니, 이주민들이 아플 때 마음 놓고 이용할 수 있는 곳은 조건 없는 진료를 하고 있는 이주민진료소들뿐이다. 그러나 전문적인 진단기구가 없는 진료소에서는 간단한 진단과 초보적인 약 처방 이상의 진료가 어렵다는 한계가 분명하다.

때문에 2차적인 진료가 필요한 경우, 진료소에서는 민간의 협력병원 및 보건복지부의 ‘외국인근로자 등 소외계층 의료서비스 지원사업(이하 지원사업)’ 지정 의료기관에 진료의뢰를 요청하고 있다. ‘지원사업’은 2005년 보건복지부가 미등록 이주민을 중점 대상으로 응급의료비 지원을 시작한 것으로, 단속 불안과 건강보험 가입 봉쇄 등으로 미등록 이주민의 건강권이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던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시행된 제도이다. 그런데 부산지역의 ‘지원사업’ 지정 의료기관은 부산의료원과 부산대학교병원 2곳뿐이고, 3차 의료기관인 부산대학교병원은 비급여 항목에 대한 본인 부담율이 높아 소득이 낮은 이주민이 이용하기에 어려움이 있고, 부산의료원의 경우 여성 이주민의 진료의뢰가 많은 자연분만 등이 지원되지 않아 오히려 민간 의료기관에 의존도가 높다.

이에 부산지역 이주민 의료지원 단체들은 ‘지원사업’이 실시된 2005년 이래 산부인과병원 등 ‘지원사업’ 의료기관 추가 지정을 담당 행정기관인 부산시 보건위생과에 지속적으로 요구해왔고, 중앙부처인 보건복지부와 국립의료원에서도 부산시에 추가지정을 권고해왔다. 그러나 부산시 보건위생과는 지정기관 요건 미충족 등을 이유로 지금까지 문제를 방관하고 있다. 이주민 건강권에 무관심한 부산시 보건위생과의 소극적인 행정으로 인해, 2008년~2009년 부산시의 ‘지원사업’ 실적은 외국인 거주비율이 더 낮은 대구시에 비해서도 1/6 수준에 그쳤다.

이주민 건강권을 더 이상 민간에만 맡겨두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부산시도 지역사회의 이주민 건강권 확보에 좀더 관심을 기울이고 그간 미뤄두었던 ‘지원사업’ 의료기관 추가지정과 이주민을 위한 통역 서비스 지원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 나아가 정부의 ‘지원사업’ 자체가 이주민을 건강권의 주체라기보다는 의료지원사업의 수혜자로 바라보고 있는 한계로 인한 문제점들도 함께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취지로 올해 초부터 부산시 보건위생과와 이주민 건강권 확보를 위한 간담회를 준비해왔는데, 동참하겠다던 담당자가 돌연 불참의사를 표해 난항을 겪고 있는 중이다. 부산시 행정이 좀더 전향적인 자세로 이주민 건강권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그동안 법이 울타리를 치고 정책이 온전히 끌어안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방치되었던 이주민 건강권을 조금씩이라도 확보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재산과 국적에 따라 생명과 건강이 담보 잡히는 비인간적인 일들을 언제까지 지켜만 보고 있을 것인가.

※ 10/23(일) 이주민 건강검진 및 독감예방접종 실시

2011년 10월 23일 일요일 오후 2시~4시, (사)이주민과함께 진료소에서는 이주민 건강검진과 독감예방접종을 실시합니다. 참여자의 인적사항은 (사)이주민과 함께가 관리하므로 미등록 이주민도 걱정 없이 건강검진과 독감예방접종을 받을 수 있습니다. 독감예방접종은 녹산이주노동자무료진료소, 양산외국인노동자의집, 희망웅상에서도 실시할 예정입니다. 문의사항은 ☎ 051-802-3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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