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김수현 기자] 올해부터 바뀐 여권 만드는 제도, 알고 계십니까?

얼마 전 일본에서 지인에게 초청을 받게 되어 부랴부랴 마포구청으로 여권을 만들러 갔다.
마침 여름방학 성수기를 맞아 사람들이 밀려 여권이 늦게 나올까 걱정했는데 이제 그럴 일은 없어졌다.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우선, 여권 나오는 날짜가 정해져 있다는 점. 예전처럼 사람이 많이 밀려 있을 시즌이 되면 여권이 늦게 나와서 출국날짜를 받아놓고 불안에 떠는 일은 없어졌다. 마포구청의 경우엔 월요일날 신청하면, 그 주 목요일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사이에 찾으러 가면 100% 나온다. 정확하게 4일만에 나오는 셈이다. 그리고 이제 여권만들기는 여행사에서 대행이 불가능해지고 본인이 직접 가야 한다. 그 이유는? 앞으로 쓸 이야기와 연관이 있다.

여권사진이 없어서 난감했는데, 마포구청 바로 앞 건물에 여권사진 찍는 곳이 있어 5분만에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6장에 만 원이고, 사람은 조금 붐비지만 사진은 금방 나왔다.

다음은 마포구청. 사진과 주민등록증 가지고 가서, 신청서 작성하여 번호표를 받으니 내 앞에 30명이 밀려 있었다. 접수하는 데만 1시간이 소요되었다. 올해부터 또 한 가지 바뀐 점은 소요 비용을 카드로 결제할 수 있다는 점. 복수여권 10년짜리가 5만5000원인데 카드결제를 하였다.

자, 여기까지 좋다. 그러나 이게 다였다면 내가 왜 이 글을 쓰고 있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여권 접수대에 논란 많은 '지문감식' 시스템이?







지난 2008년 8월 25일부터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전자여권 발급이 개시된 가운데 서울 송파구청 여권과에서 한 관계자가 전자여권을 보여주고 있다. IC칩을 내장한 이 여권에는 앞표지 하단부에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표준을 준수하는 전자여권임을 나타내는 로고가 삽입되어 있고 뒤표지에는 칩과 안테나(빨간 원 부분)가 내장되어 있으며, 수록 범위는 얼굴, 지문 등 바이오인식정보와 여권 내에 기재된 신원정보이다.

ⓒ 뉴시스


지난 5일, 1시간을 기다려 여권신청서와 주민등록증을 들고 접수대에 앉았는데 떡하니 지문감식 기계가 놓여 있다.

'검지'를 올려 놓으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써 있다. 속으로 적지 않이 당황했다. 몇 년 전부터 여권을 만들 때나 공항출입국시 지문감식 관련 법통과를 놓고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있었다는 정도밖에 아무런 정보가 없는데, 지문날인 기계를 보고 어떻게 해야할지, 대략난감이었다. 요근래 몇 년간 해외여행을 하지 않아 무심코 지나쳤는데, 내 인체 정보가 이렇게 입력된다는 사실에 우선 거부감이 들었다.

접수처의 구청직원은 간단하게 서류의 영문명을 다시 확인하고 여행목적을 물은 뒤, 양쪽 검지를 기계에 올려 놓으라고 하였다. 불쾌감이 들었지만 내 뒤에 대기자만 30명이 넘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저것 물어 보기에는 시간적 여유도 없었고, 이번 달에 당장 출국해야 하는데 지문감식 안 하겠다고 거부할 처지도 못 되었다.

할 수 없이 양쪽 검지손가락을 번갈아 인식시키고 기다리는데, 구청직원의 표정이 조금 이상해 지더니, 이번에는 양쪽 엄지 손가락을 대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별 생각없이 갔다 대었다. 그런데 직원의 표정이 또 이상해 진다. 이번에는 양쪽 중지 손가락을 갔다 대란다. 또 갔다 댔다. 그런 식으로 온 손가락을 다 갔다 대었다. 직원의 표정이 점점 더 가관이다.

범죄자 취조 장소로 변한 여권 접수처

그러더니, 불쑥 나에게 엉뚱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직원 : "계속 이문동에서 사셨었나요?'
: "네, 계속 그쪽에서 살았습니다."
직원 : "아닌데요. 회기동에서 한 때 사셨었는데요?"
: "아, 참, 잠깐 그 쪽 동네 몇 년 살다가, 이문동으로 다시 왔어요. 회기동이 이문동 바로 옆이라 제가 깜박 했었나 봐요.'

이런 젠장. 내가 왜 갑자기 여권을 만들다 말고 취조를 받고 있나.
직원 : "어머님이 몇 년생이시죠?"
허걱. 갑자기 48년생인지, 49년생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이거 곤란하다.
: ".......음....저....48년생인데요....."
직원 : "아닌데요, 49년생인데요."
직원의 눈초리는 점점 더 의심스러워지고, 어머나, 나 이러다가 여권 못 나오겠다.
이제 보니 내 지문에 뭔가 이상이 있어, 본인인지 확인하려고 하는 수작이구나. 하도 여권위조가 많으니까 지문이 안 맞으니, 일단 의심부터 하고 개인적인 인적정보를 물어보며 본인이 맞는지 대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은 못참겠다.



: "도대체 뭐가 잘못된거죠???"
직원 : "검찰청 지문하고 안 맞아서 그래요."
검찰청??? 웬 검찰청!!! 그 단어 자체가 나같은 소심쟁이에게는 꽤나 위압적으로 다가온다. 내가 마치 무슨 국제적 테러리스트들의 명단에 올라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구청 직원의 저 짧은 단답형 문장이 내게 주는 것은 불안함뿐이다. 이 문장만으로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하나도 알 수가 없다. 내 머리는 재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다시 질문했다.



: "그러니까, 제가 예전에 주민등록 만들 때 동사무소에서 날인한 지문이랑(그게 벌써 몇 년 전인가!) 지금 제 지문이랑 일치가 안 된다는 거네요? 그래서 개인정보로 본인인지 확인하는 거구요."

직원은 고개를 끄떡이며 다시 질문 공세를 시작한다. 결국 나는 친동생 세 명의 이름과 태어난 년도를 모두 말하고서야 본인인지 확인할 수 있었고 접수를 마칠 수 있었다. 갑작스런 퀴즈대회도 이런 퀴즈대회가 없다. 슬슬 짜증이 치밀기 시작했다.

목요일(8일)날 여권을 받으러 오라는 접수증을 받고 집으로 돌아오며, 어찌된 일일까, 찜찜함과 불쾌감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었다. 아니, 나는 내 인체 정보가 이런 식으로 이런저런 기관으로 떠돌아 다닌다는 사실 자체에 강한 거부감이 들었다. 아무 문제없이 지문이 일치한 사람들은 간단하게 양쪽 검지손가락 대는 것만으로 무사통과겠지만, 나처럼 불일치가 되어 취조를 당하고 나와 봐라. 이게 별 일인가.

내 지문 누가 마음대로 쓰라고 허락했나







구청에서 여권을 만들 때 지문날인 기계를 보고 어떻게 해야할지, 대략난감이었다. 내 인체 정보가 이렇게 입력된다는 사실에 우선 거부감이 들었다. 사진은 지문 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이것은 지문인식시스템의 오류, 명백한 국가시스템의 허점이다. 내 인체정보가 국가권력 기관의 감시 하에, 그들의 필요에 의해서, 철저하게 노출되어 있구나. 아니, 누구 마음대로? 난 그렇게 하라고 허락한 적이 없다!

언제 찍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주민등록증을 만들 때 동사무소에서 종이에 찍은 지문날인이 컴퓨터 데이터베이스화 되어 검찰청에서 관리하고, 그것이 다시 각 구청으로 연결되어 여권을 만들 때 본인인지 대조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시스템 구축 자체도 큰 문제지만, 그 시스템조차 지금 이렇게 허점이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내가 그 피해 당사자다. 나처럼 이렇게 시스템 상에서 지문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만약 내가 이 시스템 불일치로 인해, 앞으로 살아가면서 공항에서든 경찰서에서든 어디서든 본의 아니게 피해를 당하게 된다면, 국가는 나에게 어떻게 배상할 것인가? 왜 구청직원은 나에게 그에 대한 친절한 안내 한마디 없이, 마치 여권을 위조하려는 사람 취급하며 취조를 하는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불안이 밀려오고, 점점 더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저기 인터넷 검색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여권을 만들 때 지문대조는 올해부터 시행된 제도로서, 이제 고작 7개월 넘게 시행되었을 뿐이다. 그러니 사람들에게 아직 홍보가 잘 안 되어 있는 것 같다. 그에 관한 정보나 대응할 기관도 찾기 힘들었다. 생각해 보면 여권이라는 것이 그렇게 자주 만드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해외에 수시로 다녀오는 사람도 복수여권의 경우에는 몇 년만에 만들게 되고, 또 여권이 만료되었다고 하더라도 당장 해외에 가지 않는 한, 바로바로 갱신하지는 않는다. 보통 여권은 출국을 여유있게 앞두고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시행초기라 할 수 있는 지금 시기에, 지문대조가 어떤 시스템인지 도입배경과 과정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는 안내문을 마련하는 게 필요한 것 아닌가.

마포구청 민원여권과에 전화해 보니... "그건 저희들이 걱정할 문제"

이에 관하여 신고를 하거나 상담을 받으려고 여기저기 검색하던 중, 마포구청 여권민원과가 따로 있기에 전화를 걸었다. 내 목소리가 격앙되어 있자 남자 직원이 자신은 잘 모른다며 다른 여직원을 연결시켜 주었다. 접수번호를 부르라기에 불렀더니 이미 내 상황이 기록되어 있었던지 내가 전화한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 "지금 검찰청 시스템상의 지문이랑 현재 제 지문이랑 불일치라고 하는데, 여권 나오긴 나오나요? 불안하네요! 그리고 신문에 보니 일본은 입국시 지문을 검사한다고 하는데 저 이것 때문에 입국 못 하는 거 아닌가요? 어떻게 된거죠???"

거세게 항의하자 나를 안심시키려는 여권민원과 직원의 친절한 목소리가 나를 더 화나게 했다.

직원

:"아니에요~ 절대 그럴 일 없으세요. 가끔 그런 오류가 있나 봐요."
허허. 점입가경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일 게다. 논란이 많은 제도를 시행함에 있어,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지문시스템오류'를 두고 '가끔' 있는 일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다니. 놀랍기만 했다. 그런 일이 있으셨냐고. 드문 일이지만 알아 봐 드리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직원

: "그건 저희들이 걱정할 문제이지, 지금 전화주신 분이 걱정하실 일이 아니세요. 아무 염려 마시고 제 날짜에 여권 찾으러 가시면 됩니다."

지문대조시스템 오류 인정, 범죄자 취급한 것 사과는 없어

그리고는 그건 '저희들이 걱정할 문제'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러면서 걱정 끼쳐드려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가 없었다. 마포구청 민원여권과는 올해부터 새롭게 시행하는 이 '지문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명백하게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렇게 허점이 뻥뻥 뚫린 새로운 제도를, 그렇게 고압적인 자세로, 자신들은 마치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이, 국민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태도는 과연 무엇인가? 이게 과연 '저희들이 걱정할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태도인가? 최소한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시스템 오류일 수 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나에게 죄송하지만 개인정보 몇가지를 물어보겠노라 협조를 구할 수는 없었는가.

나는 여기서 내 신청서를 접수한 구청직원의 개인적인 서비스 태도를 비판하고자 하려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논란 많은 제도를 범국민적 합의 없이 스리슬쩍 시행한 데 분노한다.

지금 여권 없이 해외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은 국가급 원수나 장관급 주요인사들 빼놓고 평범한 국민들 중 아무도 없다. 또 제도가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코앞에 닦친 출국 때문에 현장에서 문제제기하기도 쉽지가 않다. 그러나 나와 같은 피해자가 나와서 온종일 불안에 떠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고 그 누가 보장할 수 있나.

국가가 국민 개개인의 인체 정보를 활용함에 있어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하고, 시행도중 착오가 있을 때는 투명하게 처리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이제 시행초기라고 해서 민원여권과에서조차 그런 식의 구렁이 담 넘어가는 듯한 대응은 진정한 민원처리라고 볼 수 없다.

지문날인, 인체정보의 국가시스템화에 반대한다

앞으로 인간의 지문, 안구 등을 비롯한 신체정보는 점점 더 국가시스템화 될 것이고, 그 활용범위가 넓어질 것이 분명하다. 세계적으로도 이것은 많은 논란거리이며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각국의 인권단체들은 이에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몇 년 전인가 공항에서 지문대조 시스템 오류로 입국불허자로 오인되면서, 그 과정에서 경찰의 전기충격기를 맞아 사망한 사람이 있었다는 기사가 있었다. 당연히 그는 테러리스트도, 범죄자도 아니었다. 평범한 시민이었다. 이 사건은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불러 일으켜, 더욱더 거센 여론의 반대를 일으켰다. 백 사람의 범죄인의 출입국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무고한 국민 어느 한 사람도 희생될 수는 없다. 지금의, 그리고 앞으로의 '인체정보 시스템'은 수많은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인권단체는 그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아찔하다. "제 지문이 그 사이에 변한 건가요?"라고 묻자 구청직원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며칠 후 여권은 순탄하게 나왔고 지금 내 손에 쥐어져 있으나, 여전히 찜찜함은 남는다. 나와 같은 '지문 불일치자'에 대해 어떻게 시스템상의 오류를 수정할 것인지, 동사무소에 가서 지문날인을 다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에게 아무런 답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각종 인체 정보가 국가의 통제시스템 하에서 오류를 일으키고, 그 때문에 크든 작든 국민 개개인에게 피해가 발생하는 상황은 불을 보듯 뻔하다. 현재 국가의 인체정보 시스템 운용 능력, 결코 신뢰할 수 없다.

이 제도를 즉각 폐지하라. 강력하게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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