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불법체류 신세 된 이주노조위원장(종합)

"필리핀으로 추방되면 한국기업 반대 운동 펼 것"

(서울=연합뉴스) 양태삼 구정모 기자 =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동원해 한국에 머물면서 이주노조 운동에 헌신하겠습니다. 필리핀으로 쫓겨간다면 그곳에서 한국기업 반대 운동을 펼칠 생각입니다."

필리핀 출신 미셸 카투이라(39) 이주노조 위원장은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가 통보한 출국 데드라인인 31일 연합뉴스와 만나 한국에 가능한 한 오래 머물 것이며 이주노조 운동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는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조치를 납득할 수 없다며 "합법적으로 머물 수 있고,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누릴 수 있는 법적 방안을 변호사와 함께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주한 필리핀 대사관과 접촉해 도움을 청할 계획"이라며 "(내 문제가) 한국과 필리핀 간 외교 문제로 비화하더라도 개의치 않는다"고 강조했다.

카투이라 위원장은 2006년 한국에 와 경기도 부천 등지에서 일하다 2009년 7월 민주노총 이주노조위원장을 맡아 활동 중이다. 지난해 3월 서울 성동구 성수동 제화공장으로 작업장을 옮겼다가 공장이 가동을 멈추자 지난달 15일 출입국관리사무소로부터 위장취업이라는 이유로 '체류허가 취소 및 출국 명령서'를 받았다.

출입국관리사무소 결정에 반발해 그는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과 함께 행정소송을 냈고, 서울행정법원은 2일 출국명령 집행을 정지하라는 결정을 내렸으며, 본안 소송은 아직 진행 중이다.

하지만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출국명령 집행 정지와 별개로 현재 취업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17일 그의 체류연장 비자를 내주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면 이제 그는 불법체류(미등록) 신세가 된 셈이다.

불법체류자로 단속돼 추방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노조를 이끌면서 배운 경험을 살려 필리핀에서 한국기업 반대운동을 펴겠다"며 "법원의 결정을 무시하는 처사는 독재정권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라고 분을 삭이지 못했다.

한국기업 반대 활동과 관련, "필리핀 현지 한국기업들의 부당한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대학생들과 연대하는 운동이 될 것"이라고 풀이했다.

한국에 5년간 체류하며 일하다 느낀 애환도 털어놓았다.

그는 "작년 여름 향린교회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 중지를 요구하는 단식 농성을 30일간 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단식으로 병원에 실려갔을 때 동료가 보여준 우정과 연대감, 일체감 등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모친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하다 최근 귀국했고, 형은 싱가포르에서 일했으며 이모 둘은 미국과 오스트리아에서 각각 일한다고 전하며 "고향에 돌아간다면 농장을 꾸려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사는 게 소원"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쓰레기 더미가 산처럼 쌓인 곳에서 쥐처럼 살아가는 필리핀 현실에 비하면 내 꿈은 사치스러울 수 있으나 한국 사람들이 보기에는 작고 소박한 소원"이라며 "나만 잘살겠다는 꿈을 갖고 왔지만 모두가 함께 잘 사는 꿈을 키우는 법을 이곳에서 배웠다"고 말했다.

pseudoj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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