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현장사람> 샬롬의집 이영 신부



"고용허가제는 노비 문서나 마찬가지"

(서울=연합뉴스) 경수현 기자 = "한국 사회를 다문화라고 얘기하는 것은 허상이고 포장일 뿐이죠. 다문화라고 얘기하려면 우리 의식이 먼저 다문화 돼야 합니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외노협) 사무처장으로 알려져 있는 성공회 소속 이영(43) 신부를 15일 경기 남양주시 외국인복지센터 샬롬의집에서 만났다. 성공회에서 하루 전 발령을 받아 외노협에서 샬롬의집으로 옮기게 됐다고 한다.

마석가구공단 입구에 있는 샬롬의집은 그에게 이주민 문제에 눈을 뜨게 했던 장소다. 원래 이 주변은 음성나환자들이 돼지를 키우던 마을이었으나 산업화와 함께 가구공장들이 들어서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유입됐다.

"서글픈 면도 있지만 약자들이 모여 희망을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마을이죠."

이곳에서 그는 2003년 7월부터 약 5년간 샬롬의집 사무국장으로 이주노동자들한테 '신부'가 아닌 '형'으로 불리며 그들의 임금체불 해결, 인권 보호 등 활동을 펼쳤다.

그들을 대신해 출입국관리소 단속반과 싸우다 공무집행 방해로 붙잡히기도 하면서 현장 활동의 한계를 고민했다고 한다. "단속반 차를 막아선다고 문제가 근본적으로 풀리지는 않기 때문이죠."

큰 틀에서 근본적인 정책이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2008년 5월 외노협 사무처장을 자원했다.

"하지만 때가 좋지 않았어요. 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전 정부에서 보완됐던 시스템이 오히려 해체되기 시작했어요."

일례로 불법체류 이주노동자의 임금체불 문제를 인지한 근로감독관은 임금 문제를 해결한 뒤 출입국관리소에 통보하도록 돼 있던 선구제-후통보제도 폐지됐다고 그는 지적했다.

현장 활동가로서 날선 발언이 이어지다가 고용허가제 문제로 초점이 옮겨졌다.

"사장님이 노비 문서를 들고 있는데 선한 사장님도 있으니까 괜찮다라는 얘기에 불과해요."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을 제한하는 현행 고용허가제가 노비 문서처럼 강제 근로의 요소를 품고 있다는 비판이다.

그는 고용허가제와 같은 단기순환 정책은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례가 없다며 현행 제도에서 불법체류 이주민의 증가는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이제는 새로운 틀이 필요해요." 5년간의 고용허가 기한 뒤에도 추가로 특별체류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고 이후에는 영주권도 부여하자는 식의 주장이다.

그에게 정부의 다문화 정책에 대한 의견도 물었다.

"한국 사회의 다양한 이주민들이 자기 얘기를 할 통로를 우선 만들어야 합니다. 이주민은 배제한 채 자기 틀 속에 들어오라고 해서는 안 되죠. 이주 현장에서 느꼈던 점은 상호 이해와 존중이 바탕되지 않는 다문화는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죠."

이어 그는 "외국인이 '찬찬찬'을 부르는 게 다문화는 아니지 않느냐"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주와 관련된 모든 문제는 결국 빈부 문제, 양극화 문제라고 생각된다"며 "이 부분을 공유하고 해소할 지점을 만들지 못하면 해결이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계적인 양극화 문제의 해소 없이는 이주노동자의 동생이나 아들이 다시 이주노동에 나서면서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면서 한국과 일본에서 일한 뒤 고국으로 돌아가 공장을 운영 중인 이주노동자 출신 방글라데시 사람의 얘기를 소개했다. 이주노동 기간에 배웠던 12시간, 2교대제를 자신의 방글라데시 공장에 적용해 사업에 성공했다는 자랑을 들으면서 서글펐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어두움에만 초점을 맞추지는 않았다. 희망 섞인 얘기도 했다.

"남북한도 단절이 오래 된 만큼 이미 이질적인 문화가 형성됐다고 생각해요. 다문화 사회는 통일국가에 대비해 훈련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어요."

ev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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