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2004-04-28 18:58]


아내는 합법-남편은 불법체류

안산의 한 공장에서 7년 동안 일해온 스리랑카인 아산타(30)는 아내, 네살짜리 딸과 함께 살고 있다. 그는 얼마 전부터 일을 그만 두고 집에서 숨어지내고 있고, 아내가 벌어온 돈으로 생계를 꾸려나간다. 아산타의 아내는 고용허가제 혜택을 입어 올해 말까지 합법적인 체류자격을 얻었지만, 한국에서 7년이상 체류한 아산타는 불법체류자 딱지를 뗄 수 없기 때문이다.
아산타 가족은 생이별의 불안감에 떨고 있다. 아산타는 “살림살이가 전보다 훨씬 쪼들리지만, 괜히 일을 나갔다가 불법체류자로 붙잡혀 아내와 딸을 두고 쫓겨나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했다.

지난해 정부가 고용허가제를 실시한 뒤 한국에 머문지 4년 미만인 이주노동자들은 체류허가를 얻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아산타 가족처럼 부부가 불법과 합법으로 신분이 갈려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몽골인 다말라(41·가명)는 지난해 가을 경기도 부천시 삼정동 집 근처에서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에게 붙잡혀 본국으로 강제 송환됐다. 당시 집에는 합법체류자인 부인 아킬라(38·가명)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인은 그때 남편을 따라 몽골로 함께 돌아가고 싶었지만, 갚지 못한 빚 때문에 발목이 잡혔다. 아킬라는 “한국에 올 때 브로커에게 준 돈만 800만원이 넘기 때문에 지금 당장 가족을 다시 만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가족두고 쫓겨날순 없어”
직장 그만둔채 숨어지내
자녀들도 불법 ‘꼬리표’
입학 거부로 나홀로 신세


아이들을 둔 이주노동자 가정 또한 걱정이 적지 않다. 아이들은 정부가 정한 외국인 노동자의 범위에 해당하지 않아 모두 불법체류자로 분류된다. 이때문에 몽골 소년 타시카(15)는 부모가 모두 합법체류자이지만,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다. 몇차례 중학교 입학을 신청해봤지만 거절당한 뒤, 결국 학교 다니기를 포기했다. 타시카는 “엄마아빠가 일하러 나가면 할 일이 없어 방안에서 인터넷 채팅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또 이주노동자들은 아이들과 함께 고향 나라로 출국할 수는 있지만, 재입국 때는 아이들을 데리고 올 수 없다. 28일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 만난 방글라데시인 쟈킬(30)은 “합법 신분을 얻어 재입국하려고 방글라데시로 갔다가 아이와 함께 올 수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을 포기한 친구가 있었다”며 “지금도 많은 동료들이 가족과 헤어질까 두려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박천응 목사는 “안산지역 외국인 노동자 쉼터인 ‘코시안의 집’의 40여 가정 중 70% 이상이 불법체류 신분인 배우자나 자녀 문제로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부천외국인노동자의 집’ 이란주 정책국장은 “가족과 함께 살 권리는 한국인 뿐 아니라 이주노동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며 “외국인노동자가 가족과 함께 살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기본적인 인권침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 출입국관리국 관계자는 “외국인 노동자의 체류허가는 ‘외국인근로자고용법’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에 4년 이상 국내에 불법적으로 머문 이들은 이산가족이 되더라도 법무부가 임의로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조기원 기자 baumgarten@hani.co.kr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