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법무부 훈령' 무시한 채 벌어진 이주노동자 강제 단속

 

IE001166975_STD.jpg

 

15일, 그들만의 설을 보내기 위해 모였던 30여 명의 네팔 이주 노동자들은 모인 지 30분 만에 모임을 해산해야 했다. 낮 12시, 동대문에 위치한 네팔 음식점에 들이닥친 경기 2청 경찰관들과 출입국사무소 직원의 합동 단속 때문이었다.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던 편안한 휴일에 떨어진 날벼락이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단속반에 하나였던 모임 참가자들은 둘로 나뉘었다. 비자가 있는 자와 비자가 없는 자로 나뉜 그들은 이 후 운명도 갈렸다. 한쪽은 단속반에게 끌려갔고 다른 한쪽은 끌려간 이들을 걱정하며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남는 자와 끌려간 자가 구분되는 데에는 4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설 연휴의 평화는 그렇게 깨졌다.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실시된 단속의 명목은 "불법 도박, 여권 위조 및 불법 체류하는 자가 불법 행위하는 것을 단속하는 것이었다"고 경기 2청 외사과 관계자는 밝혔다. 그러나 불법 도박 현장은 발견 되지 않았다. 여권을 위조한 사람도 없었다. 불법 체류 중인 이주 노동자들만 있었다. 10명의 이주노동자들은 그 자리에서 연행되었다.

 

법무부 훈령을 무시한 강제 단속

 

16일, 네팔 음식점을 방문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한 노동자는 "처음엔 사복을 입은 사람 4명이 들어와서 비디오 카메라로 찍고 후에 15명 정도가 들어와 비자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구분했다"며 "처음엔 신분증을 보여주지 않았고 식당 주인의 허락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단속했다"고 말했다.

 

그는 "비자가 있다고 하는 사람도 데려갔다"며 "다들 자기 일도 해야 하는데 해도 해도 너무하다"고 토로했다. 법무부 훈령은 출입국직원들이 이주 노동자를 단속할 시 '제복 착용, 증표 제시, 방문 이유 고지'를 의무화 하고 있는데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울 경기 이주노동조합은 성명서를 통해 "1년에 그나마 맘 편하게 쉴 쉬 있는 설 명절에까지 출입국은 이주노동자 강제단속을 벌이냐"며 "한 편에서는 설날이라고 이주민들의 떡국행사를 보도하면서 또 한편에서는 명절에 모여 정을 나누는 이주민들을 강제단속하는 것이 정부가 말하는 다문화사회냐"고 반문했다.

 

이주노조는 "음식점 업주의 동의 없는 침입과 단속은 불법이라는 법원 판결이 지난 12월에 나왔는데도 이렇게 불법침입을 해도 되는 것"이냐며 "식당 주인들이 임의로 조사에 응하지 않는 이상 법관이 발부한 영장 없이는 압수·수색 등 강제처분을 할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현실에서는 이렇게 헌신짝이 되어도 되는 것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기 2청 관계자는 "식당 주인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판결 난 것은 민사상이고 우리는 도박 현장을 급습하기 위해 식당을 방문한 것"이라며 "형사상에서는 주인 허락을 따로 받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는 신분증도 제시했고 미란다 원칙도 고지했다"고 말했다. 이에 신분증을 제시하고 미란다 원칙을 고지한 명확한 시간을 묻자 "그것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정영섭 이주노조 사무처장은 "현재 경찰서에 잡혀가 있는 이주 노동자는 한 명도 없다"며 "경찰이 영장을 발부 받아 집행한 지점에서 법을 위반한 자가 한 명도 없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정 사무처장은 "설 연휴에  도박혐의 이주 노동자를 단속하겠다고 대대적으로 나섰는데 아무 성과가 없자 빈 손으로 갈 수 없어 애꿎은 이주 노동자들만 잡아 들인 것"이라며 "이후에 불법 체류 부분을 단속할 거라면 다시 절차를 밟아서 식당 주인의 허락도 받고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또한 "불법 이주 노동자를 단속하려면 경찰이 아닌 출입국 관리 사무소 직원이 단속을 진행 해야 한다"며 "단속에 참가한 것으로 알려진 인천공항 출입국 관리 사무소 직원들은 신분증 제시나 증표 등을 제시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소에 오후 5시 30분부터 세 차례에 걸쳐 전화 했지만 관리소 측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수사 중엔 면회가 불가능?

 

16일, 이주 노동자들이 후송된 양주 출입국 관리소를 방문해 구속된 노동자 자따빠(Jhatthapa)씨와의 면회를 신청을 했다. 면회소 안 까지 들어가서 자따빠씨와 대면하는 순간 출입국사무소 직원이 제지하며 자따빠씨와의 관계를 물었다. 기자임을 밝히자 직원은 "기자가 취재할 경우 3층 운영지원팀에 가서 확인을 받고 와야 한다"고 했다. '면회 대상자를 제한하는 규칙이 있느냐'고 묻자 출입국사무소 직원은 "규칙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라며 "모든 상황을 적어둘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3층에서 만난 임장웅 조사실장은 "수사 중인 사건은 면회 및 취재가 불가능 하다"고 말했다. '규정이 따로 있냐'고 묻자 임 조사실장은 "규정이 있다"고 답했다. 규정을 보여줄 것을 요청하자 그는 "자료를 가져 오겠다"며 나가 1시간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그 한 시간동안 15일에 구속된 이주 노동자 전체에 대한 면회는 일체 중단 되었다. 당시 연행된 수먼 라이씨를 면회하러 온 홍은희씨는 "수사 중일 때 면회가 불가능하다고 하는데 이제껏 그런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IE001166976_STD.jpg
  
'외국인의 인권보호와 권익 증진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양주 출입국관리소.
ⓒ 이주연

좌파 모임에 속해 자해 위험이 있다?

 

1시간 뒤 운영지원팀 직원은 다시 4층 법사팀에 가 보라고 말했다. 4층에 올라가자 또 다른 직원이 "면회를 하게 해주는 대신 면회할 때 뒤에 서 있어도 되냐"고 물었다. '평소에도 (면회 때) 뒤에 서 있느냐'고 묻자 "그렇진 않지만 자해의 위험이 있다고 보여서 그렇다"며 "단속된 노동자가 속한 네팔 모임이 좌파들의 모임으로 이념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강경하게 나가지 않을까 우려 된다"고 말했다.

 

출입국 사무소를 방문한 후 2시간 만에 면회할 수 있었던 자따빠씨는 "우리는 우리만의 설을 보내려고 네팔 음식점에 모여 이야기 나눈 것 뿐"이라고 말했다. 자따빠씨는 "네팔 경기가 안 좋아서 가서 잘 살 수 있을지 우려된다"면서도 "가족들이 많이 보고 싶어 빨리 가고 싶다"며 힘없이 웃었다. 잡혀 온 이상 손쓸 방도가 없기에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그의 얼굴 어디에도 자해하려는 사람의 절박함은 보이지 않았다.

 

'외국인의 인권보호와 권익 증진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양주 출입국관리소는 갖은 핑계를 대며 면회를 막아설 뿐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를 자해할 위험이 있는 '강성분자'로만 보고 있었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