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피난처와 난민인권센터 등, 난민을 돕는 사람들을 만나다

 

  
영화 <호텔 르완다> 포스터(왼쪽)/영화 <디스트릭트9> 포스터
ⓒ 동숭아트센타·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
 

 

'난민'을 주제로 일주일에 한 번씩 스터디를 했었다. 난민인권센터 최원근 사업팀장과 일대일로 진행했는데 꽤 빡빡한 수업에 때마다 숙제까지 있었다. 한 번은 <호텔 르완다>를 보고 영화감상문을 써오라고 해서 별생각 없이 영화를 보다가 눈물 마를 새 없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후투족과 투치족의 대립이 심화되자 후투족 자치군은 투치족을 닥치는 대로 살해한다. 주인공 폴 루세사바기나는 투치족 아내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지배인으로 근무하는 르완다 최고급 호텔에 가족들을 피신시키고, 수천 명의 난민들이 이 호텔로 몰려든다. 내전으로 난민이 된 사람들의 실상은 그야말로 참혹했다.

 

최근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도 소수자의 아픔을 리얼하게 느낄 수 있는 영화를 보았다. 닐 브롬캠프 감독의 <디스트릭트 9>. 남아프리카공화국 상공에 외계인이 나타나자 국제사회는 국제법에 따라 그들을 수용하고 통제한다. 그러던 중 외계인 수용소 통제 직원인 비커스가 외계인 유전자에 감염된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싸움을, 영화는 공상과학영화로 충분히 잘 그려냈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영화는 인종차별이 횡행하는 현실을 꼬집는다.

 

괜히 영화 얘기를 한다. 누군가 솔깃해서 '난민'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난민이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 국제법에 따라 보호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제대로 된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한국에 거주하는 난민 2410명, 우리나라 인구 2만 명당 한 명 꼴인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만나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어려움은 없는지, 가장 절실한 문제는 무엇인지 물어 보았다.

 

[NGO단체] 피난처와 난민인권센터

 

지난 6월 20일, 난민의 날에 개정된 출입국관리법이 발표됐다. 이에 따라 난민 신청 후 1년 안에 심사가 끝나지 않으면 난민들도 취업 허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러자 법무부는 이전까지 3~5년씩 끌던 난민 심사를 서둘러 마무리하고 있다.

 

2009년 9월 현재, 847건을 심사했는데 이는 지난 15년 간 진행한 587건보다 훨씬 많다. 문제는 847건 중 난민 불허 결정을 내린 게 791건이라는 점이다. 난민 신청자들이 난민을 가장해 불법 취업을 하려는 속셈이 있을 수 있다고 법무부는 의심한다. 난민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정적이다. 불허 결정을 통보 받은 난민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있다. '피난처'와 '난민인권센터'다.     

 

피난처(대표 이호택)는 난민을 돕는 대표적인 NGO다. 1999년 문을 열어 난민지원사랑방, 나눔 창고, 난민학교, 열국아이학교 등을 운영하고 있다. 난민학교에서는 일주일에 두 번 난민들에게 난민 이슈·컴퓨터·한국어·재난구호 등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 생활에 필요한 한국어, 난민들조차 잘 모르는 난민협약 내용을 가르쳐 난민 인정 절차를 준비하도록 돕는다.

 

"불어 통역 봉사해 주실 분 찾습니다"

 

  
이호택 피난처 대표
ⓒ 피난처

이호택 대표에게 난민 사역에 있어 절실히 필요한 것과 힘든 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난민 신청을 하기 위해 불어권 난민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불어가 가능한 봉사자를 찾는 것이 힘들어요. 정기적으로 불어 통역 봉사를 하러 오시는 분이 한 분밖에 없어서 그들을 상담하는 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또 한국어 수업과 태권도 수업을 정기적으로 가르쳐줄 수 있는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일반인들의 난민에 대한 인식이 적은 것이 가장 힘든 부분이지요. 난민들은 본국의 박해를 피해 망명한 사람들이고 대부분의 난민들이 본국이 안정되면 돌아갈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간혹 사람들이 난민들을 이주노동자나 불법체류자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또한 아프리카에서 온 난민들은 피부색 때문에 인종차별을 받기도 합니다. 한국 사람들이 선진국에서 우리가 받는 인종차별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정작 한국 내에 있는 타인에게는 배타적으로 대하는 것 같습니다."

 

난민인권센터(대표 홍세화·이하 난센)는 지난 3월 문을 열었으나, 김성인 사무국장을 비롯한 활동가들은 이전부터 난민 사역을 해 온 전문가들이다. 난센에는 지금까지 150여 명의 난민들이 다녀갔다. 대부분은 행정 소송을 도와달라고 오는 사람들이다.

 

난민들의 생활은 어떨까. 최원근 난센 사업팀장은 난민 신청자의 경우 대부분 생계 지원이 시급하다고 했다. 

 

"난민 인정자가 아닌 경우에는 최소한의 생계를 꾸릴 방법이 없습니다. 주거, 식량의 문제, 특히 의료 문제는 심각합니다. 출산이나 육아에 도움의 손길이 절실해요. 후원이 들어오는 대로 돕고 있지만 이후에 다시 도와달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 저희가 도와드리지 못할 형편이면 실망할 수밖에 없는 난민들을 위해 체계적인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긴급구호 기금으로 난민 도와주세요"

 

  
김성인 난민인권센터 사무국장
ⓒ 난센
 

난센은 지난 11월 20일, 한국에 들어와 있는 2410명의 난민을 위한 '2410 사다리 짓기 - 월담'이라는 행사를 진행했다.

 

난민들을 위한 긴급구호 기금 조성을 위한 행사였다. 단체나 교회 등에서 일정액을 긴급구호 기금으로 후원받으면 필요에 따라 난민 아이들을 위한 분유, 기저귀 값은 물론이고 식료품까지 주기적으로 제공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또 난센은 난민협약 가입국임에도 협약 내용을 준수하지 않는 법무부의 부당함을 고발하기 위해 국민감사를 청구할 계획이다.

 

김성인 사무국장은 "이를 위해 300명의 서명이 필요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3000명 아니 3만 명의 서명이라도 받아 이를 바로잡고 싶어요"라며 "그래도 안되면 유엔 인권이사회에 한국 정부의 실상을 고발할 것입니다, 한국 정부가 유엔 북한 인권 결의안에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했던 것처럼 말이죠"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북한 인권에 기울이는 관심 10분의 1이라도 난민에 쏟아 주길 바랍니다"라고 바랐다.

 

[법률 지원] 이주난민법센터와 공감

 

난민을 위해 법률 지원을 하는 대표적인 두 단체가 있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과 기독법률가회의 '이주난민법센터'이다. 지난 10월에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공익 활동을 위해 만든 재단법인 '동천'도 주목된다.

 

김종철(이주난민법센터), 황필규(공감) 변호사는 각 단체에서 주도적으로 난민을 위한 행정 소송뿐 아니라 제도 개선에도 앞장서고 있어 그들을 만나 각 단체 소개 및 난민 지원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아름다운재단이 공익 변호사 활동을 위해 만든 단체가 '공감'이다. 공감은 사회적 소수자, 약자들의 인권 문제에 초점을 맞춰 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제도를 개선하는 일을 한다. 7명의 변호사와 2명의 간사가 일하고 있는 공감은 국내 유일한 비영리 전업 공익변호사들의 모임으로 100% 기부자들의 기부로 운영되고 있다. 

 

"법무부의 난민에 대한 인식, 갈 길이 멀다!"

 

  
황필규 법무법인 공감 변호사
ⓒ 공감
 

난민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취약 계층이라고 볼 수 있지만 법무부의 부실한 난민 심사는 법률 지원을 하는 이들에게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의 많은 과제를 던져 준다.

 

지난 2004년 공감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황필규 변호사는 "법무부의 난민 심사 절차는 공정성과 투명성을 결여하고 있을 뿐 아니라 논리적 평가가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 심사 당 1분도 채 걸리지 않게 심사를 한다는 얘기를 외국에 가서 했더니 다들 입을 벌리고 말을 잇지 못하더군요. 법무부는 난민 신청자들을 마치 거추장스러운 쓰레기 처리하는 듯합니다. 심사에 기본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통역도 없는 경우가 많고 본국에 대한 조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본국의 상황과 관련하여 외국 정부기관, 국제기구, 국제인권단체 등 여러 권위 있는 보고서들이 존재하지만 법무부는 난민의 지위를 부정하는 데 유리한 정보만을 선별적으로 번역(경우에 따라서는 오역)하여 제시합니다. 어떤 난민 신청자는 출입국관리 공무원과의 면담에서 사실상 난민이 아님을 자백하라는 고압적인 질문을 받으며 마치 본인이 범죄자가 된 기분이었다고 하소연했습니다."

 

황 변호사는 법무부가 난민협약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고도 비판했다. 

 

"종교의 자유, 정치적 자유 등을 인정하고 그 자유를 행사함으로 인해 박해의 위험이 있을 때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난민협약의 기본 전제입니다. 그런데 어떤 판결문에는 종교를 혼자만 조용히 믿지 왜 선교 활동을 했느냐는 취지의 언급을 하고, 난민들이 본국 대사관 앞에서 데모한 것을 두고 마스크를 쓰고 하지 왜 신분을 노출시켜 위험을 자초했느냐고도 합니다. 이건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조차 비판하는 난민협약의 근간을 뒤흔드는 발상이죠."

 

한국 상황이 어렵긴 하지만 공감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난민까지 끌어안기 위한 계획을 갖고 있다. 황필규 변호사는 올해 두 번째 열린 아태지역 난민을 위한 NGO 대회에서 '아태지역 난민 권리 네트워크' 부의장에 선출됐다. 앞으로는 국내 난민들뿐만 아니라 아태지역의 난민들에게도 눈을 돌려 인도적 지원을 넘어 네트워크를 통해 현지 조사를 하는 등 직접적으로 난민 문제에 개입할 계획이다.     

 

기독법률가회에서 난민·이주민·탈북자 등을 법률적으로 지원하다가 올해 만든 단체가 이주난민법센터다. 기독법률가회는 주로 법무법인 소명에서 활동하는 변호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난민 제도 악용보다 당국의 오판이 더 위험"

 

  
김종철 기독법률가회 변호사
ⓒ 이종연
 

김종철 변호사를 비롯한 공익 활동 변호사들은 민간 차원에서 수 년 전부터 출입국관리법, 난민법 등을 논의해 왔다. 그리고 얼마 전 서울변호사협회를 통해 법안을 냈고 한나라당 황우여 의원이 '난민법'을 발의했다.

 

"발의한 법안의 핵심은 절차와 처우에 관한 것입니다. 적법 절차가 이루어져서 난민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 첫째고, 난민이 우리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하자는 것이 둘째죠.

 

가령 영국은 공항에서 난민 신청을 할 수 있도록 안내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난민들은 난민 신청을 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다가 본국 커뮤니티를 통해 알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 상황에 법무부가 왜 신청을 늦게 했냐고 하는 건 말이 안 되죠.

 

2001년에 단 한 명의 난민만 인정한 나라에 난민 신청을 하면 자기 신분만 노출될 위험이 있다는 실존적인 고민도 있었을 겁니다. 저라도 신청 안 하죠. 문제는 재판할 때 보면 사법부는 난민이 난민 제도를 악용하고 있다는 선입견으로 꽉 차 있다는 겁니다.

 

물론 어느 제도나 그걸 남용하는 사람이 있죠. 하지만 선입견 때문에 난민이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강제 퇴거를 당하면 그들은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에 도달할 수도 있습니다. 재판부의 오판이 초래할 결과를 생각하며 접근할 필요가 있는 거죠."

 

난민이 우리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난민 처우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것도 시급한 문제다.

 

"유럽에서는 난민 신청을 하면 그때부터 언어와 직업 교육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난민 인정도 안 받고 어떻게 그런 교육을 받느냐고요? 난민에게 사회에 통합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으면 난민 인정을 받은 후에는 통합되는 게 더 힘들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난민 네트워크] 난민 정책 개선 모임

 

난민을 지원하는 NGO와 변호사 그룹, 유엔난민기구(UNHCR)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까지 한자리에 모이면 어떻게 될까. 실제로 우리나라엔 난민을 지원하는 모든 사람들이 모이는 모임이 있다.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이 모임은 2006년 시작됐으며 난민법 초안도 여기서 만들었다. 2008년 국가인권위원회 주최로 한 '난민 인권 실태 조사'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한 법안팀이 이후 정기적 모임을 정례화해서 만나고 있다.  

 

10월 29일 오후, 유엔난민기구에서 모인 이들은 '무국적자 관리 및 체류 질서'에 관한 피난처 이호택 대표의 논문으로 토론을 하고 한 달 동안 진행된 각 단체 업무 등을 공유하는 등 난민 지원 전반에 관한 정보를 나눴다.

 

많은 이들이 난민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 우리 사회 많은 이들이 난민을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는 사람들' 쯤으로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김성인 난민인권센터 사무국장은 "난민은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지닌, 우리와 같은 식탁에 앉아야 할 사람들입니다"라며 "자칫 난민이라는 단어가 인간을 차별하는 또 하나의 잣대로 사용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난민 인권을 위해 일하는 저부터 말입니다"라고 말했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