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동고동락 네팔 친구 간데없고…

신년모임서 단속 ‘따갈리’
세간도 못챙기고 쫓겨나
이주노동자 고된 현실 고발


[현장] 강제추방 외국인 노동자 물건 파는 벼룩시장

“사람은 쫓겨났지만, 물건은 남았잖아요….”

2일 오전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한편에서 사회진보연대 활동가인 이은주씨가 작은 천막을 친 뒤 정성스레 좌판을 펼쳤다. 이씨가 준비해 온 종이 상자엔 옷가지가 한가득 담겨 있었다. 출입국 단속에 걸려 강제 추방된 외국인 노동자들이 입던 옷가지들이다.

이씨를 비롯한 활동가들은 깨끗이 정돈된 남성용 티셔츠에 ‘1000원’, 여성용 블라우스에는 ‘1500원’이라고 적힌 가격표를 붙였다. 이곳에서 아동용 점퍼 한 벌을 산 시민 정은주(36)씨는 “옷이 싸고 깨끗해 구입했다”고 말했지만, 정작 이 옷들이 간직한 사연은 듣지 못했다. 다만 활동가들은 이날 좌판에서 팔린 옷의 주인이 지난 2월23일 강제 출국된 네팔인 비노드 따갈리(44)였다고 전했을 뿐이다.

따갈리는 설 연휴 마지막 날이던 지난 2월15일 서울 동대문역 근처 네팔 식당에서 열린 신년 모임에 나갔고, 그를 포함해 9명의 네팔 노동자들이 단속에 걸렸다. 그의 네팔인 후배 ㄱ은 “그날 아침 형이 친구들 만난다고 동대문으로 갔는데 그것으로 끝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추방된 뒤 정영섭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사무차장과 ㄱ 등이 서울 문정동 그의 집을 찾았다. 7평짜리 반지하방이었다. 따갈리의 한국 생활은 올해로 14년째였다. 오랜 한국 생활 탓인지, 장롱 등 가구를 빼고도 한 리어카가 넘는 짐이 나왔다.

따갈리는 처음 산업연수생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옷 공장에서 봉제일을 하다가 추방 직전에는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에서 닭의 배를 갈라 내장을 빼는 일을 했다. 이주노동자 모임과 네팔 불교 모임에서 그를 만났던 이들은 “힘겹게 살면서도 후배들의 고민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다”고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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