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주 여성 80% 이상 도시에 산다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ㆍ한국 다문화사회에 대한 오해와 편견

결혼이주 여성들은 도시와 농촌 중 어디에 더 많이 살고 있을까. 새터민(탈북자)과 중국동포(조선족) 중 우리가 더 가깝게 느끼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많이 느끼는 사람은 외국인에 대해서 더 배타적으로 행동할까. 2011년 현재 대한민국 인구는 4898만명, 국내 체류 외국인 수는 126만명에 이른다. 어림잡아 한국에 사는 사람들 40명 중 1명은 외국인인 셈이다. 그럼에도 앞서 질문에 자신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역사상 유례없는 ‘다문화사회’를 맞고 있는 우리는 얼마나 현실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일까?

최근 출간된 다문화사회 관련 연구서 <지구·지방화와 다문화 공간>(푸른길), <한국의 다문화 상황과 사회통합>(한국학중앙연구원)은 그에 대한 적잖은 오해와 편견이 존재함을 확인시켜준다.

농림어업 종사자의 40%가량이 외국인 여성과 결혼하고, 농촌지역의 국제결혼 비율이 17~18%에 이르는 터라 우리는 보통 결혼이주 여성들이 대부분 농촌에 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정책적 관심과 연구도 이에 집중돼 있다. 그러나 한국 결혼이주 여성의 거주지는 80% 이상이 서울·경기 등 도시 지역이며 배우자가 농업에 종사하는 경우도 평균 10% 남짓에 불과하다. 농촌지역에 가장 많이 사는 캄보디아 출신 여성조차도 64.3%가 도시에 산다.

 

대구대 지리교육과 최병두 교수 등이 공동 집필한 <지구·지방화와 다문화 공간>은 기존의 사회학·인류학적 다문화사회 연구와는 달리 이처럼 이주민들이 사는 ‘공간’에 중점을 뒀다. 최 교수는 “외국인 이주자들이 국내로 들어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특정 지역으로 한정돼 있다”며 “이주와 정착 과정에도 국가적 정체성보다 지역에 대한 소속감이 더 중요한 영향을 끼치며 그런 면에서 지리적으로 접근했다”고 말했다.

흔히 결혼이주 여성에 대한 지원이라고 하면 한국어 교육을 쉽게 떠올린다. 2008년 10월 전국의 결혼이주 여성 391명을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한국어 구사능력’은 지역사회 적응에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 지역 주민으로서의 정체성, 국내의 한국인 친구 수 등 ‘사회적 연결망’이 사회 적응의 중요한 요소로 분석됐다. 최 교수는 이를 ‘국지적 시민성’이라고 표현했다. 이주와 정착이 그들이 살고 있는 특정 장소의 사회경제적 관계와 과정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한데 이 조사는 결혼이주 여성들이 이러한 사회적 연결망이 대체로 취약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약 40%가 이웃과 의사소통이 잘되는 편이라고 답했지만, 급전을 빌릴 수 있는 이웃이 있느냐는 질문에 57.4%가 “없다”고 대답했다. 이웃의 도움을 받은 적이 없다는 응답도 34.9%에 달했다. 이주노동자들의 경우에도 대부분 합숙소(44%)나 직장에서 주선해 준 주택(16%)에 살면서 생필품을 대부분 주변 슈퍼에서 해결(50%)하고, 여가도 대부분 집주변(27%)에서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다문화사회에 대비하는 정책이 지역 사회 적응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의 다문화 상황과 사회통합>은 다문화사회를 맞이하는 한국인들의 ‘인식’에 대해 조사한 연구서다. 연구진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2008년 9월부터 10월 사이 만 19세 이상 한국인 110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살펴보면 일반적인 통념을 배반하는 것이 적잖다.

일례로 흔히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국수주의자로 간주되기 쉽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외국인을 더 친근하게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가지는 것이 전통보다 근대적 가족가치를 옹호하거나 진보적 이념성향을 지니는 쪽보다 외국인에 대한 거리감을 좁히는 데 보다 영향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인에 대한 친밀도를 조사한 항목도 흥미롭다. 한국인들은 새터민보다도 중국동포를 더 가깝게 느꼈으며, 일본인보다 중국인에 대해 더 크게 거리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인에 대해선 이중적 태도를 보였다. 미국인은 중국동포 다음으로 거리감을 적게 느꼈지만 상당한 거리감을 표시했던 중국인·동남아시아인만큼이나 일을 열심히 하지 않으며, 범죄율을 높이고,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으로 인식했다. 또한 미국인이라 해도 흑인은 더 거리감을 느꼈고, 러시아인도 백인이면 거리감이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전히 인종주의적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방증이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식은 일반적 통념보다 전향적이었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47%가 우리나라 노동자와 같은 노동법적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답했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인권침해나 차별을 없애기 위해 정부가 강력히 개입해야 한다는 대답도 43%에 달했다. 대체로 외국인 노동자가 경제에 기여한다고 응답했고, 범죄율을 높인다거나 업무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반대 의견이 높았다.

하지만 이웃으로 두고 싶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20%가량(복수 응답)이 외국인 노동자를 꼽기도 했다. 특히 법적 지위로서의 시민권 부여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지만, 정치적 행위자 차원의 실질적 참정권 부여에 대해선 거부의사가 확연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국적을 쉽게 취득할 수 있어야 한다(32.3%), 장기 거주 외국인에게 투표권을 줘야 한다(23.5%)는 문항에는 낮은 찬성률을 보인 것이다.

연구를 맡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사회과학부 서호철 교수는 “정부나 한국사회 전체가 고민해야 할 문제가 오히려 문화적 적응보다는 영주권 등 외국인의 기본적 권리와 복지 보장이라는 게 드러난 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 ‘다문화사회’라는 말 자체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묘사하는 술어에 가까운 만큼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국어 가르치기, 김치 담그기 등 시혜적·동화적 정책을 넘어서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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