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체류자인가요? 아니면 말고… 인권위, 출입국관리소에 주의조치 권고

 

2010년 04월 13일 (화) 18:37   국민일보

 

지난해 5월 경기도 시흥의 한 시장에서 찬거리를 고르던 김모(30·여)씨에게 남자 2명이 다가와 느닷없이 영어로 물었다. “Excuse me. Immigration?(실례합니다. 이민자인가요)” 당혹한 김씨는 알아듣지 못했다. 김씨가 서둘러 자리를 피하자 다른 남자 1명까지 가세해 3명이 뒤쫓았다.

남자들은 김씨를 양팔로 안아 꼼짝 못하게 했다. 행인들이 모여들었다. 남자들은 “경찰”이라며 신분증을 보여주는 듯하더니 금세 지갑을 닫아버렸다. 정말 경찰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김씨를 둘러싼 남자들은 “미등록 외국인 아니냐”고 추궁했다. 김씨는 주민등록증을 보여줬다. 한국인이었다. 혼혈도 아니고 귀화 외국인도 아니었다. 남자들은 서울출입국관리소 단속반 공무원들로 드러났다. 김씨를 불법 체류 동남아 여성으로 오인하고 단속한 것이었다.

김씨가 사과를 요구했지만 단속반원들은 “적법한 단속이었다. 사과할 용의가 없다”고 했다. 김씨는 이 일로 여러 곳을 다쳐 병원에서 전치 2주 진단을 받았다. 우울감과 불안감, 깜짝깜짝 놀라는 증상 탓에 4주간 치료해야 한다는 진단도 나왔다.

김씨는 지난해 6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냈다.

그동안 조사를 벌인 인권위는 13일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고 서울출입국관리소장에게 손모씨 등 단속반원 3명을 주의조치토록 권고했다. 손씨 등에게는 김씨에게 병원 진료비와 위자료를 지급토록 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신분증 제시와 단속사실 고지 등 절차를 준수하지 않는 데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강압적으로 단속해 김씨가 수치심을 느끼게 한 것은 신체의 자유와 인격권 침해”라고 지적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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