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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시간 [137호] 2010.04.30  09:29:11장일호 기자 | ilhostyle@sisain.co.kr  

경기도 소재 한 외국인 노동자 쉼터의 점심시간. 베시시 웃고만 있던 한 남자가 라면 앞에서 완강하게 도리질을 쳤다. “면을 따로 삶아 기름기를 빼고 각종 야채와 고기까지 얹은 ‘특제 라면’이다”라고 설명해도 그는 기어이 라면 대신 밥을 입에 밀어 넣었다. 밥상에 모여 앉은 이들이 서 너번 더 권했지만, 그는 묵묵부답이었다. 한참 후 그가 침묵을 깨고 어눌한 한국어로 이유를 설명했다. “라면, 배에서… 너무, 많이 먹었다. 안 먹어”

그는 네팔 사람 카밀(가명·37)이다. 카밀씨가 한국에 입국한 건 지난해 11월. 그는 네팔에서 가구 공장을 운영하다, 계속되는 적자로 인해 결국 문을 닫았다고 했다. 아내와 곧 학교에 입학할 여섯 살짜리 첫 딸, 두 살 배기 막내 딸을 먹여 살려야 하는 일은 난망하기만 했다. 한국행을 결정한 건 그래서였다. 친구들이 한국에 많이 있다는 것도 마음의 의지가 됐다. 1개월 간 네팔에서 한국어 학원을 다니며 있는 돈 없는 돈 끌어 모아 100여만 원을 만들었다.

  
ⓒ전문수
한 이주노동자가 제조업에서 일을 하고 있다.
카밀씨는 네팔에서 본 한국어 시험 결과가 나빠 비전문취업비자 가운데 어업 분야(E-9-5)를 받았다. 점수에 따라 제조업 건설업 농축산 분야 순으로 비자를 받는다. 그다지 원하지 않았던 어업 비자였지만, 이왕 한국에 가기로 결심 한 후라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카밀씨는 네팔에서 ‘7시간 일한다’라고 적힌 근로계약서를 확인하고 서명했다. 
그가 6개월간 경험한 한국은 ‘바다’로 요약된다. “네팔, 바다 없어요” 내륙 국가 네팔에 37년간 살면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바다. 그러나 카밀씨를 포함해 전 직원 5명인 영세한 지역 사업장에서 카밀씨는 지난 4개월 반 동안 원 없이 바다를 봤다. 물론 그에게 바다는 ‘낭만’의 다른 이름이 아니었다. 출렁이는 바다 위에서 그의 삶도 함께 출렁였다. 새벽 3~4시면 배를 타고 나가 뭍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오후 6~7시. 날씨가 나빠 배를 띄울 수 없는 날이 휴일이었을 뿐, 따로 휴일은 없었다. 조업을 마치고 돌아와 주린 배를 붙잡고 그물정리를 하는 것도 카밀씨 몫이었다. 밥 다운 밥을 먹어본 기억은 없었다. 라면이 카밀씨의 주식이었다.

그러나 고된 노동은 임금 체불에 비해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고용허가제는 회사의 귀책 사유가 없는 한 최초의 근로 개시를 한 사업장에서 계속 근무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카밀씨 역시 힘든 일을 꾹 참아내곤 했다. 본국으로 추방되지 않기 위해서는 비자를 계속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첫 한 달을 버텼을 때 카밀씨가 손에 쥔 돈은 91만 원. “한국 선원들 300만 원씩 받아. 일, 힘들어 안 나와” 그리고 그 91만 원은 카밀씨가 OO호에서 일하는 4개월 반 동안 유일하게 받은 월급이었다.

월급을 달라고 요구하는 카밀씨에게 사장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내일 모레 줄게” 그러나 손꼽아 기다리던 내일 모레가 오면 사장은 다시 “내일 모레 줄게”라는 말을 반복하곤 했다. ‘내일 모레’를 기다리는 사람은 카밀씨 뿐만이 아니었다. 임금체불 시간이 길어질수록 네팔에 있는 가족들 역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뉴시스
불법체류 집중 단속에 항의하는 한 이주노동자.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인 농어촌 이주노동자

카밀씨는 자신보다 먼저 한국에 와 있던 친구에게 고충을 털어놓다가 이주노조를 소개 받았다. 그리고 이주노조 관계자들의 도움을 받아 노동부에 체불임금 건으로 진정을 넣었다. 마땅히 지낼 곳 없던 카밀씨에게 쉼터를 소개해 준 곳도 이주노조였다. 그러나 카밀씨는 마음 편히 쉴 수가 없다. 임금체불이라는 확실한 귀책사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부의 노동법 위반 사실 판정이 나기 전까지는 마냥 기다려야 한다. ‘사업장 변경 요건자’의 자격을 얻지 못한 채 일하다 단속에 걸리면 불법체류자로 분류되어 네팔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밀린 월급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일손마저 놓고 마냥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답답한 상황은 벌써 한 달째 지속되고 있다.

정영섭 이주노조 사무처장은 고용허가제 비자 중 가장 열악한 것이 농·어업 비자라고 말했다. 고된 노동에 비해 일손을 구하기 어려운 농어촌에서 이주노동자 수요가 늘고 있다. 정 사무처장은 “농·어업은 계절과 날씨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근로시간이 불규칙하다. 그러다보니 근로기준법 상 초과 수당과 휴일 등이 적용 되지 않는 예외조항이 있다. 이런 예외조항을 고용주들이 악용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어업 비자로 들어온 이주노동자는 1000여명. 이명박 정부가 경제위기를 이유로 입국하는 이주노동자 규모를 2008년 13만 명에서 2010년 2만 4천 명으로 대폭 줄였지만, 농축산업과 어업 비자로 들어오는 이주노동자의 규모는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상황이 이렇다보니 2009년 6월을 기준으로 제조업의 사업장 이탈율은 5.5%인데 반해, 어업 사업장 이탈율은 23.8%로 매우 높다.

카밀씨는 요즘 가족 사진을 보는 낙으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보고 싶으면 사진 보면서 참아요. 빨리 돈, 줬으면 좋겠어요.” 그가 받은 어업비자로는 다른 업종으로 일을 옮길 수는 없지만, 다음 번에 구하게 되는 일은 배를 타지 않는 ‘가두리 양식장’ 같은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월급, 제 때 나오는 곳. 가족한테 (돈)잘 보내줄 수 있게…”라는 카밀씨의 바람은 이뤄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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