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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답게 살고 싶습니다!” 지난 2007년 2월11일 발생한 전남 여수 출입국관리사무소 화재참사 부상자들의 절규이다.

현재 국내에는 여수화재참사 당시 부상자로 분류됐던 17명의 피해자중 15명이 치료를 위해 재입국해 생활하고 있다. 이는 법무부와의 양해각서에 따른 것으로 이들은 모두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는 사고 휴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전쟁, 사고, 자연재해, 고문 등 생명을 위협당하는 심각한 상황을 직면한 후 나타나는 정신적 휴유증이다. 개인 차이에 따라 사건발생 직후 또는 수일에서 수년 후에 나타날 수 있는 질환이다.

주로 환자들은 극도의 불안감과 경계심, 불면증, 우울증 등의 증상을 보이며 사건 당시에 겪었던 공포감이 기억, 꿈, 환각 등으로 재연될 수 있다. 한마디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어려움이 따른다고 할 수 있다.

현재 11명의 여수화재참사 부상자를 돌보고 있는 이주민여성상담소 안현숙 소장은 “부상자들이 겪고 있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예전으로 회복할 수 없는 평생 장애로 지속적인 심리치료가 필요한 질환이다”며 “이들 대부분은 약 없이는 잠도 못 이룰 정도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이들은 화재당시 마신 유독가스로 호흡기 질환과 장기적인 약 복용에 따른 위장장애 등 합병증까지 겹쳐 건강이 좋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나빠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여수화재참사 부상자들과 그 가족들을 더욱 절망으로 빠뜨리고 있는 것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아니라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 등 정부관계당국의 이들에 대한 정책 때문이다.

◆ 법무부, 치료받다 굶어 죽어도 모르는 일

부상자들은 G1비자를 발급받아 국내에서 생활하고 있다. G1비자란 치료 등 ‘인도적’인 사유가 발생해 3개월 이상 체류가 불가피할 경우 발급해주는 것을 말한다. 즉, 치료 목적을 위한 것으로 이들은 원칙적으로 국내에서 취업을 할 수가 없다.

법무부가 이들의 치료비를 지원하기는 하지만 여기까지이다. 법무부가 발급한 G1비자라는 족쇄 때문에 인간의 가장 기본적 생계수단인 의식주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자가 취업하지 않고 먹고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없다. 더구나 요즘처럼 경기가 어려운 시기에 취업자의 생활형편도 어렵다고 각종 언론매체에서 아우성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유일한 생존수단이라 할 수 있는 국내 취업길을 막아버린 법무부의 G1비자 발급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G1비자는 한국이 자랑하는 성형수술 등 의료관광상품을 팔기 위한 해외 환자 유치에나 어울릴 법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현숙 소장은 “여수화재참사 부상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G1비자가 아니라 취업이 가능한 H2를 발급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이들에게 국내 체류비 등을 지원해주지 못할 것이라면 치료받는 동안 스스로 벌어서 최소한 먹고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대로 먹지 못해 날이 갈수록 말라가는 부상자 A씨의 상황을 이야기할 때 안 소장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 고용주, G1비자 악용해 노동착취

그렇다고 부상자들이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일. 이들은 먹기 위해 일자리를 찾아 천안, 목포 등지로 흩어졌다. 이주민여성상담소와 연락망을 갖추고 있지만 여관방, 이주노동자 쉼터, 노숙 등을 전전하며 일터에서 빠듯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이들에게 발급된 G1비자는 일자리에서도 고통을 가중시킨다. 왜냐하면 G1비자라는 이유로 H2비자 취업자가 받는 임금에 절반정도 밖에 못 받기 때문이다. 1주일에 10~15만원 정도. 고용주가 이들이 G1비자 발급자라는 사실을 알기라도 하면 더 큰일이다.

안 소장에 따르면 고용주들이 취업을 할 수 없는 G1비자라는 것을 악용해 임금을 떼어먹기 일쑤이고, 이들을 대하는 자세도 비인간적으로 돌변해 버린다. 또한 직장 동료들에게는 ‘무언가 이상이 있는 사람’이라는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는 부상자들의 질환이 좋아지기는 기대하기조차 힘들다.

부상자들은 배고픔, 주변의 차가운 시선 뿐 아니라 살아가면서 흔히 발생할 수 있는 질병이나 사고도 몸으로 극복해야 한다. 여수화재 당시 유독가스로 인한 호흡기 질환이나 장기적인 약복용에 따른 위장장애 등 일반인보다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G1비자는 일반 의료수가가 적용되기 때문에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일반인보다 병원치료비가 비쌀 수밖에 없다. 이들의 소득을 생각해본다면 그 상대적 부담감은 더욱 증가한다.

지역의료보험 가입은 엄두도 낼 수 없다. 외국인의 의료보험료는 소득에 상관없이 최소 5~6만원가량이다. 결국 아무리 아파도 참아야 하며, 사고로 골절돼도 참아야한다.

◆ “이젠 그만 좀 한국을 떠나라(?)”

상황이 이래도 여수화재참사 부상자들은 그나마 법무부가 지원하는 휴유증 치료를 받기 위해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G1비자를 연장해야 한다. 이 또한 쉽지 않다.

이들에 대한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의 노골적인 무시와 의심, 이해하기 어려운 비자 연장기간 등을 묵묵히 이겨내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만 해도 부상자들이 병원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의사진단서만으로도 G1비자 연장이 가능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의무기록사본, 신원보증서 등도 요구하고 있어 비자 연장을 위한 준비서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게 안 소장의 설명이다.

또한 안 소장은 “병원치료 날짜와 출입국 방문 날짜가 비슷하기라도 하면 비자를 연장받을 목적으로 아프지도 않는데 병원진료를 받는 것이 아니냐며 달구치는 출입국 직원으로부터 부상자들은 인간적인 모멸감까지 느끼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마치 이들이 소위 ‘나일론’ 환자 행세를 하며 부당하게 비자를 연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고 있는 이들에게 또 다른 마음의 상처로 다가올 뿐이다.

일반적으로 병원치료 행위나 약 처방은 건강심사평가연구원의 전산망의 협조를 받아도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도 있고, 부상자들의 치료를 담당하는 강남성심병원에 확인해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받은 비자 연장기간도 2개월. 최근 부상자 B씨는 50일 이하의 비자 연장을 받았다. 이 또한 처음에는 6개월 연장을 해주던 것도 3개월, 2개월 등 점점 줄어들더니 급기야 50일에도 못 미치는 비자를 내준 것이다.

이는 결국 ‘한국을 떠나라’라는 무언의 압력과도 같다는 게 관련 민간단체 관계자들의 생각이다.

안현숙 소장은 “지금 정부관계당국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여수화재참사 부상자들이 최소한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해주고 이들의 질환을 치료해주는 것 뿐”이라고 밝혔다.

이에 안 소장이 부상자들의 G1비자를 H2비자로 바꿔줄 것을 끈질기게 요청하자 법무부가 H2비자 발급의 검토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무런 답이 없다.

이제 법무부가 양해각서에서 여수화재참사 부상자들에게 치료를 위해 최대 3년까지 허용한 체류기간이 점차 다가오고 있다. 이 기간이 지나면 이들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평생 장애를 안고 한국에서 내쫓기듯 출국할지도 모른다. 2년 전 강제 출국당한 것처럼.


여수화재참사 1주기 추모제 영상
http://qtv.freechal.com/Viewer/QTVOutViewer.asp?docid=385294&srchcp=N&q=여수화재참사

[뉴스추적] 여수화재참사 그 이후
http://netv.sbs.co.kr/newbox/newbox.jsp?uccid=10000351408&box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