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살지만, 나는 자랑스런 베트남인
모계사회 베트남과 부계사회 한국, 그 사이에서
 
여성주의 저널 일다 마이티증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와 일다는 공동으로 기획하여 이주여성 당사자들이 쓰는 인권이야기를 싣습니다. 이주민의 시선에 비친 한국사회의 부족한 모습을 겸허히 돌아보고, 이주여성의 입을 통해 다양한 문화감수성과 인권의식을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이 기획연재는 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필자 마이티증님은 베트남인으로, 한국으로 이주해 온 결혼이민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해 한국어로 집필하여 기고했습니다. -편집자주]
 

“나중에 또 딸 낳으면…”, “아들 한 명 낳아야 해”
 
안녕하세요, 베트남에서 온 마이티증입니다. 한국에 온 지 2년 7개월이 지났고, 지금 저에게는 22개월 된 딸이 있습니다. 시어머니와 같이 살지만, 음식은 따로따로 먹습니다. 시어머니가 2층에 살고, 우리는 아래층에 삽니다.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까 많이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정말 외로웠습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도 그렇지만, 시어머니와 남편 그리고 시누이들도 힘들어하는 저를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서 가족들에게도 물어보았고, 동네사람들에게도 물어보았지만 다들 모른다고 얘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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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을 낳고 축복받지 못했을 때, 가장 큰 외로움을 느꼈다. ©일러스트- [느티.박현정]
아기를 낳았을 때 (제왕절개)수술을 했는데 산후조리도 못했습니다. 아기를 혼자 돌보고,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을 때는 베트남에 계신 친정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매일 울었습니다. 남편이 멀리 일하러 갔기 때문에, 밤에도 혼자 아기를 돌보았습니다. 그땐 너무 무서웠고, 걱정도 많이 했습니다.

 
‘왜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기쁘고 행복하면 안 될까?’
‘내가 외로울 때마다 남편과 시집식구들이 도와주고 사랑해준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아기를 낳고 얼마 안 되었을 때, 시어머니는 “너 나중에 또 딸 낳으면, 나 너 싫어할 거야. 아들 한 명 낳아야 해”라고 말했습니다. 그때는 아무 생각이 없어서 ‘시어머니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하는구나’ 생각했는데, 어느 날 시어머니가 또 다시 “아들 못 낳으면 너희 집에 가”라고 말했을 때는 ‘장난이 아니구나! 왜 나를 차별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래 동서에게는 무엇이든지 “잘한다, 괜찮다.” 하시면서 저에게는 한번도 좋은 얘기를 안 하시는 시어머니가 너무 섭섭했습니다.
 
아주 사소한 일이지만, 조카 옷을 사줄 때도 동서가 사는 옷은 “예쁘다, 잘 샀다”라고 하시고, 제가 사는 옷은 “돈도 없고, 사도 못해, 이런 것 사와서 누가 입겠니?” 라고 말하셨을 때도 가슴이 아팠습니다. 필시 제가 외국인이라서 말씀을 함부로 하시는 것 같습니다. 외국인도 생각과 감정이 있습니다. 어느 나라 사람이나 똑같이 대우받고 싶고, 받은 만큼 잘해주고 싶은 건 당연합니다.
 
동서는 결혼한 지 10년이 되었지만 아기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시어머니는 아무 소리 안 하시고 “동서는 뭐든지 잘해” 라고 하십니다. 저는 동서가 싫지는 않지만, 어머님이 자꾸만 저와 비교하고 차별하니까 조금 미운 생각도 듭니다.
 
저는 친정이 멀어서, 이곳에서 시어머니가 조금만 마음을 주시면 훨씬 더 잘하고 잘살 수 있을 것 같은데…. 만약 시어머니의 딸들이 외국서 결혼하고, 말도 안 통하는 저 같은 처지에 있다면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아마 우리 친정엄마처럼 걱정하고, 매일 딸을 생각해서 살이 빠질 거예요.
 
‘외국인이면 어때서! 나도 사람이에요’
 
밖에 나가면 가끔 사람들이 저에게 “어디서 왔어? 너 베트남에서 왔지? 엉덩이하고 얼굴 보면 알아” 라고 말합니다. 그럴 땐 ‘외국인이면 어때서! 나도 사람이에요’ 라는 말을 속으로 하면서, 한편으로 ‘우리 아기는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사람들이 외국인들에게도 ‘보통 사람’처럼 대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남들도 그렇고, 가까이 사는 시어머니가 “넌 이제부터 어디에 가면 베트남 사람이라고 얘기하지 마! 사람들이 네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싫어해” 라고 말했을 때 너무 속상했고, 한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외롭습니다.
 
제일 걱정되는 것은, 딸 예은이가 엄마 때문에 잘 자라지 못할까 봐 입니다. 엄마의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서 말도 늦고, 한글도 잘 못써서 나중에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어려움을 겪으면 어떻게 할지 걱정이 됩니다. 숙제나 수업 준비도 못 도와줘서, 우리 아기가 많이 힘이 들 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남편은 무뚝뚝한 사람이고, 시어머니는 연세가 많아 아이를 도와주는 것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또, 아이가 사춘기가 되었을 때도 걱정이 됩니다. 한국사람들은 이런 것을 많이 걱정하지 않겠지만, 다문화가족들은 문화가 달라서 아이 키우는 방법에도 어려움이 많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딸 예은이를 키우는데 조금 자신이 생기게 된 것은, 작년 9월부터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가서 한국어를 배우고 여러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서입니다. 현재는 센터에서 아동양육선생님이 일주일에 두 번 2시간씩 양육과 학습방법 등을 교육해주고 있습니다.
 
이제는 한국말도 많이 늘고 잘 알아들어서 동네 아줌마들하고 말도 잘 하고, 그 아주머니들이 저를 많이 도와주시기도 합니다. 앞으로 한국에서 베트남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사는 베트남 친구들도 도와주고 싶습니다.
 
저는 한국에 살고 있지만 자랑스러운 베트남 사람입니다. 우리 딸 예은이에게도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도록, 그리고 남편에게도 항상 노력하는 아내가 되도록 더 열심히 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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