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강제출국 조치에 항의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철야농성이 1년을 맞았다. 명동성당 입구 비닐과 판자로 된 천막이 그동안 이들을 지켜준 유일한 보호막이었다.

"우리도 노동자다, 우리는 하나다"라는 피켓 문구만이 외국인 노동자들의 막다른 처지를 홀로 대변하고 있다.

본격적인 추위를 예고하는 스산한 날씨, 뒹구는 낙엽 속에서 시퍼런 냉기가 이들의 온몸을 휘감고 있다.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중노동 속에 온 청춘을 한국 땅에 바친 외국인 노동자들.

10평 남짓한 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그들의 표정이 한없이 위태롭다.


"우리도 노동자다, 우리는 하나다" 막다른 처지 대변

18살에 한국으로 건너와 한국 생활 12년째인 네팔인 헤미니씨는 한 순간도 마음 편히 지내본 기억이 없다.

항상 누군가 쫓아오는 것 같아 힐끗힐끗 뒤를 쳐다보는 게 습관이 됐고, 작은 소리에도 놀라 식은 땀을 흘린다.

불법체류자라는 주홍글씨는 그렇게 이들이 숨쉬는 대기 속에 녹아들어 끊임없이 목을 조여온다.

단속반원의 눈을 피해 한국인 사장님들의 모진 학대를 참아가며 억울하게 임금을 뜯겨도 하소연 한 마디 못해도 그렇게 끈질긴 삶을 살아왔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자이드씨(30)는 '회사가 망했다고, 다른 데 가서 일하다가 나중에 밀린 월급을 받으라'는 사장의 말만 믿고 있다가 낭패를 보기도 했다.

뼈 빠지게 자신을 부려먹었던 사장은 사업을 정리한 것이 아니고 다른 지방으로 공장을 옮겼을 뿐이었다.


억울하게 임금 뜯겨도 하소연 한 마디 못해

남은 것은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마음 뿐. 이처럼 뺏길 때로 뺏기고, 빈 주머니로 내동댕이쳐진 외국인들이 하나 둘 명동성당으로 모여들었다.

이 때가 정확히 1년 전인 지난 해 11월 15일. 절박한 심정의 외국인 노동자들 150여명이 강제출국을 피해 철야농성을 시작했다.

그해 말 외관상 보기에 나쁘다며 성당측이 나가 줄 것을 요구했을 때는 대한민국의 각박함에 치를 떨기도 했다.

지금 이 시각 사계절을 모두 견디고 여전히 허름한 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고작 30여명에 불과하다.

대부분 단속에 걸려 추방당하거나 전망이 불투명한 농성투쟁에 지쳐 어딘가로 숨어버렸다.

헤미니씨는 "동료들이 단속에 쫓기고 생활고에 내몰리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남의 일 같지 않았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150여명이 시작한 농성이 30여명만 남아

외국인 노동자들이 원하는 것은 강제출국 중단과 이주 노동자 합법화.

그러나 정부는 고용허가제 외에 다른 길이 없다는 완고한 입장이다.

사실상 필요에 따라 자신들에게 일을 시켜놓고 이제 와서 "무조건 나가라, 예외도 없고, 사정도 봐줄 수 없다"는 한국 정부의 매몰찬 태도가 더없이 야속하게 다가온다.

방글라데시에서 대학을 다니다 지난 99년 한국에 온 마붑 알름씨(29).

"한국 사람들도 옛날에 사우디에 나가서 돈 벌어왔고, 미국 등 선진국에 나가 온갖 고생을 했지 않느냐"면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관대한 손길을 아쉬워했다.

여기에 테러리스트니, 반한분자니 하며 노골적으로 적대시하는 일부의 눈길을 접할 때면 눈앞이 캄캄해지고 신변의 위협까지 느껴진다.

오랜 노숙생활과 부실한 끼니에 지쳐 남아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하나 둘 몸져눕고 있다.

노동시민단체의 도움도 한계가 있고 결국 '벼랑 끝의 피난처' 명동성당 농성을 더 이상 이어나가기 힘이 벅찬 상황이다.

농성단은 이에 따라 오는 18일 명동성당 농성 1주년 기념식을 통해 해산을 선언하기로 했다. 이어 한 노동단체의 도움으로 건강검진을 받게 된다.


오는 18일 명동성당 농성 1주년 기념식 통해 해산 선언하기로

하지만 농성의 끝은 또다른 험난한 여정의 시작이다.

단속의 칼날을 피해 사회의 어두운 곳을 찾아다니며 숨죽이고 살아가야 할 나날이 이어진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상황, 그래도 포기는 없다.

자신만을 믿고 기다리는 고향의 가족들은 물론 노동자로서 최소한의 인간대접을 받기 위해서라도 싸움을 멈출 수 없다.

외국인 노동자 농성단은 이제 외국인 노동조합 등 대안을 모색하며 또다른 의미의 '코리안 드림'을 이루기 위해 내일을 기다리고 있다.

기자의 창/CBS사회부 정태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