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허가제 독소조항 전면 폐기하라"

[프로메테우스 2005-08-16 17:20]    


△ 고용허가제 시행 1년을 맞아 이주노조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이 고용허가제 독소조항 폐지를 통한 실질적인 이주노동자 인권 및 노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프로메테우스 최미라

19개 노동시민사회단체, '고용허가제는 실패한 정책' 한 목소리

[프로메테우스 최미라 기자]
고용허가제 시행 1년이 내일로 다가온 가운데 이주노조, 외노협, 민변 등 19개 노동시민사회 단체는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허가제 독소조항 폐기 및 이주노동자에 대한 완전한 노동3권 보장' 등을 촉구했다.

16일 오전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이들은 "2007년 전면 시행을 앞두고 있는 고용허가제는 1년 단위 재계약 조항으로 이주노동자의 실질적인 노동3권 보장을 가로막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권을 제한해 이주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과 인권침해를 사실상 방조하고 있다"며 "정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전면 합법화와 더불어 고용허가제에 포함돼 있는 각종 독소조항을 즉각 폐기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또 현재 산업연수제와 고용허가제가 병행 실시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도 "정부는 2007년 산업연수제를 폐지하겠다고 약속해놓고도 현실에서는 오히려 산업연수제가 강화되고 있다"며 "이주노동자를 노예화하는 산업연수제를 즉각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현행 고용허가제는 실패한 정책, 독소조항 전면 삭제하라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고용허가제가 시행된 이후에도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 및 인권침해 사례와 함께 '고용허가제 시행 1년에 대한 평가'를 담은 보고서가 발표되기도 했다.

보고서에서 시민사회는 "고용허가제가 시행된 지난 1년의 기간은 입법초기부터 전체 시민사회단체들이 지적한 치명적인 독소조항과 정책적 한계로 인해 이주노동자들에게 고통을 가중시킨 기간이었다"며 "결과적으로 당초 정부의 주장과 달리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양산하고 이들을 인권의 사각지대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 근절되지 않는 송출비리

정부가 고용허가제를 도입할 당시 내세웠던 명분 중 하나는 정상비용의 수십 배에 달하는 '수수료'를 이주노동자에게 부담토록 하는 등의 이른바 '송출비리'를 근절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사결과 부당한 수수료 부과 사례는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주노동자인권연대가 127명의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통계에 따르면 정상적인 비용을 지불하고 입국한 경우는 불과 26% 정도에 머물렀다. 반면 나머지 74%에 달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정상 비용 이상을 지불하고 입국했고, 이중 일부는 정상비용의 6배~7배에 달하는 비용을 지불하는 등 부당한 송출수수료로 인한 피해가 가시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 노동조건 악화

보고서는 또 고용허가제 시행을 계기로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 및 인권침해 등이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정부의 주장과 달리 현행 고용허가제 시행의 효과는 기대에 현저히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냉정하게 평가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임금의 경우 고용허가제 시행 이전 이주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은 995,816원(2002년 국가인권위원회)이었으나 시행 이후 평균임금은 987,043원(2005년 국회노동기본권연구모임)인 것으로 조사돼 물가인상을 고려한 실질임금은 오히려 하락했다는 것. 이는 내국인 노동자 평균임금 대비 이주노동자 평균 임금 수준이 2002년 48.9%에서 2005년 41% 수준으로 하락한 것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고 보고서는 주장했다.


△ 필리핀 출신 이주노동자 J씨가 사업주가 당초의 계약과는 달리 초과노동을 시키고도 수당을 주지 않는 등 부당노동행위를 하고 있다며 경기도 하남 고용안정센터에 제출한 진정서 ⓒ 프로메테우스 최미라

근로계약 위반 및 노동관계법 위반 등 부당노동행위도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규입국 한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계약과 다르게 초과노동을 시키거나(53.5%), 계약보다 낮은 임금 지급(45.1%),하는 등 계약 체결 당시의 노동조건과 실제 사업장에서의 노동조건이 일치하지 않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 또 신체폭력, 언어폭력, 사업주에 의한 감금, 신분증 압류와 같은 인권침해 사례는 일부 감소추세이긴 하지만 근절되지는 않고 있어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 마련도 시급한 상황이라고 이들은 주장했다.

▷ 사용주 인권침해 부추기는 '사업장 이동제한'

고용허가제의 문제점 중 시민사회의 가장 큰 비난을 받고 있는 내용이 바로 사업주의 허가 없이는 사업장을 이동할 수 없도록 한 '사업장 이동제한' 규정이다. 즉 고용주는 경영상의 어려움 또는 이주노동자의 귀책사유를 이유로 언제든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한 반면 이주노동자는 임금체불, 폭행 등의 직접적인 권익침해와 명백한 범위반의 경우에만 사업장 이동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작업장에서 발생하는 부당한 차별과 폭언, 인격모독 등 일상적인 인권침해를 감내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 만약 이를 참지 못하고 사업장을 이탈하는 경우 이들은 미등록 이주노동자, 즉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전락하게 된다.

실제 2003년 말 13만 명까지 감소했던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고용허가제 시행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해 2005년 6월 현재 2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시민사회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지속적인 증가는 고용허가제 실시와 미등록 체류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정부가 세운 강제단속, 강제출국 정책이 완전히 실패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주노조, "고용허가제 폐지 노동허가제 쟁취 위해 투쟁 할 것"

한편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노동조합(위원장 직무대행 샤킬 이하 이주노조)은 하반기 중심 투쟁 과제를 고용허가제 폐기, 노동허가제를 통한 이주노동자 완전한 노동3권 보장 등으로 설정하고 이와 관련한 대중적 사업을 강화할 예정이어서 고용허가제를 둘러싼 논란은 앞으로도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이주노조는 고용허가제 시행 1년을 맞는 17일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고용허가제 파탄선언 이주노동자 결의대회’를 열고 고용허가제 폐기 및 노동허가제 쟁취, 구금 상태인 아노아르 위원장 석방 등을 촉구할 예정이다.

이주노조 정원경 사무차장은 "민주노동당과 함께 노동허가제 도입을 핵심으로 하는 법안을 마련해 하반기 국회에 제출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며 "이와 함께 고용허가제의 문제점, 노동허가제 도입의 필요성 등을 대중적으로 알리기 위한 투쟁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미라 기자(mee1005@promethe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