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2004-06-16 05:14] 한국은 ‘아시아 민주기지’… 사안별 지원을 넘어 일상적 연대를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6월13일 서울에서는 다국적 집회가 열렸다. 이날 대학로에서 열린 세계경제사회포럼 동아시아회의 반대집회에는 아시아 30여개 나라에서 온 150여명의 활동가들이 참여했다. 인도네시아 농민운동가, 네팔의 노동운동가, 타이의 학생운동가들이 이날 한국의 민중들과 함께 “세계화 반대” “신자주의 반대”를 외쳤다. 한국어뿐 아니라 다양한 언어로 제작된 유인물도 뿌려졌다.

최근에는 시위 풍경 속에서도 달라진 시민사회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제 노동자대회, 반전집회에서 깃발을 든 이주노동자들을 보는 일은 일상이 됐다. 버마 민주화와 팔레스타인 평화를 외치는 한국인의 목소리도 낯설지 않다. 대규모 집회에는 거의 예외없이 외국의 활동가들이 나와 연대 발언을 한다. 해외에서 날아온 연대 인사도 빠지지 않는다. 특히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는 평화집회에는 제3세계 출신 이주노동자뿐 아니라 제1세계 출신 외국인들도 활발하게 참여한다. 자본의 세계화에 맞선 저항의 국제연대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아시아 민주기지’ 구실을 하기도 한다. 버마 민족민주동맹(NLD) 활동가들이 한국에서 활동 중이고, 방글라데시 소수민족인 줌마족도 소수민족 권리쟁취 운동을 벌이고 있다. 경제 성장과 정치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한국은 독재와 빈곤에 시달리는 다른 아시아 국가의 사회운동가들에게 ‘매력적인’ 땅이다. 게다가 1990년대 후반까지 일본에 비해 입국이 수월해 아시아 운동가들의 한국 입국이 많은 편이었다.

몇해 전부터 ‘아시아’는 한국 시민사회의 유행어가 됐다. 지난 5월31일 미군의 경기도 평택 이전에 반대해 열린 집회의 이름은 ‘아시아 민중과 함께하는’ 5·29 평택 반전평화문화축제였다. 한국의 미군기지 반대운동은 오래 전부터 일본 오키나와의 미군기지 반대운동과 연대해왔다. 한국이 베트남에 저지른 폭력을 참회하는 ‘미안해요 베트남’ 캠페인은 한국 시민사회에 아시아 연대의 중요성을 각인하는 계기가 됐다. ‘나와 우리’는 해마다 한-베트남 평화캠프를 열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 연대’는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한국을 벗어난 아시아 운동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최재훈 국제민주연대 활동가는 “우리 운동의 중심을 바꾸자는 것이 아니라 빠진 부분을 채우자는 것”이라며 “사안별 지원을 넘어서 일상적 연대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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