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2004-05-23 18:59]

면회·운동 제한 독방가두고
수갑·재갈까지 외국인보호소에 갇힌 불법체류 외국인들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외국인보호 규칙과 그 시행세칙의 조항들이 상위법인 출입국관리법에 근거하지 않아 위헌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외국인보호소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인 서울지방변호사회의 이상희 변호사(법무법인 한결)는 21일 “외국인보호규칙과 시행세칙에 포함된 기본권 제한 관련 조항은 상위법인 출입국관리법에 명시되지 않은 것으로 위헌”이라며 “지난 2월27일 인권단체의 외국인 면회 신청을 보호소가 거부한 사건에 대해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낸 뒤 재판과정에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외국인보호규칙과 시행세칙의 모법인 출입국관리법은 57조에서 “외국인보호실 및 외국인보호소의 설비, 보호돼 있는 자의 처우·급양·경비 기타 필요한 사항은 법무부령으로 정한다”고만 돼있을 뿐, 수용된 외국인의 기본권 제한에 대한 규정은 두고 있지 않다.

변협 “불법체류자 기본권제한 법적근거 없다”
법무부 “징벌도 필요” 출입국관리법 손질나서 이에 따라 시행세칙의 △물건휴대 제한 규정(13조)과 △면회시간 제한 및 금지 조항(42조) 및 보호규칙의 △하루생활표에 따른 활동규제(22조) △운동시간 제한(24조) △독방 격리수용(37조) △수갑·포승·가죽재갈 사용(38조) 관련 조항들이 위헌 소지를 안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보호소에 갇혔던 방글라데시인 에나물 헉(38)은 “직원들이 편지를 검열하고 독방에 갇히면 면회도 안 된다”고 주장했으며, 다른 외국인은 “방과 화장실에까지 카메라를 설치해 생활 전부가 노출돼 있다”고 말했다.

최재훈 국제민주연대 활동가는 “외국인보호소는 범죄자를 가둬두는 곳이 아니라, 출국대기 중인 외국인들을 보호하는 곳”이라며 “법률적 근거도 없이 보호소 수용자들의 기본권을 제한해온 것은 이주노동자의 인권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인권을 침해하지 않아야 하지만,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자들에 대한 징벌도 필요하다”면서 “상위법인 출입국관리법에 징벌 등을 가능하게 하는 규정을 명문화하는 작업에 이미 들어가 있다”고 말했다.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수용자들에 들어보니 “불만 드러내면 독방행 진정서도 말이 통해야” 지난 20일 찾아간 화성외국인보호소는 언론을 포함한 바깥세계로부터 격리된 섬이었다. 보호소와 법무부에 취재협조를 요청했으나, 하나같이 “취재를 위한 면회는 안된다”는 대답을 보내왔다. 하지만 ‘보호소’가 외국인 노동자를 본국으로 보내기 전 잠시 보호하는 곳이라면 ‘취재’를 허용하지 못할 이유는 없어보였다.

방법을 바꿔 이 보호소에 수용된 한 외국인 노동자의 이름을 적어 면회를 신청했다. “눈 가리고 아웅”이라더니 ‘취재’가 아닌 ‘면회’ 신청은 아무런 걸림돌없이 받아들여졌다. 면회접수실 벽에는 “당신이 불법체류자라는 것이 밝혀지면 우리는 당신을 체포하는 수밖에 없다”는 협박성 경고문이 붙어있었다.

유리로 차단된 면회실에서 만난 외국인 노동자는 한국말도 영어도 거의 할 줄 몰랐지만, 자신이 받는 고통은 몸짓으로 충분히 설명해냈다. 이곳에서 지낸지 열흘 정도 됐다는 그는 “그동안 방안에만 갇혀 있었으며, 거의 운동을 하지 못했다”며 호소했다. 그로 인해 “어깨와 허리가 아프고 볼 일도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지난달 19일 이상희 변호사가 보호소의 외국인들을 면담한 내용에도 이런 기본권 침해는 수도 없이 지적되고 있었다. 기자가 만난 외국인처럼 밖으로 나가 운동을 하지 못하는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았다. 방글라데시인 에나물 헉(38)은 “많아야 1주일에 한두번 20분 정도 밖에 나가 운동했고, 수용자가 많을 때는 아예 운동을 못하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심지어 “외국인이 뭔가를 강하게 요구하는 경우 독방에 가두기도 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외국인보호규칙에서 규정한 30분의 면회시간을 10분으로 축소해 적용하는 데 대한 불만도 컸다. 야카 쿨 바하둘(33·네팔)은 “30분을 면회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보통은 10분이 가까워지면 직원들이 빨리 끝내라고 재촉했다”며 “보호소 안에서 강제출국에 항의하는 단식을 했을 때는 직원이 면회장에서도 옆에 서서 감시했다”고 말했다.

언어장벽으로 인한 문제도 지적됐다. 에나물 헉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고 싶은 내용이 있어도 관련 서류가 모두 한국어와 영어로만 돼 있어 어려움이 크다”고 하소연했다. 코빌 우딘(32·방글라데시)은 “보호소 직원과 공익근무 요원들이 한국말을 잘 못하는 외국인들에게 반말을 하는 등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했다.

외국인보호소 실태조사에 나선 서울변호사회는 “오는 6월께 보호소 안의 외국인들을 상대로 시설과 처우에 관한 설문조사를 벌여 이들에 대한 기본권 침해 사례를 광범하게 수집·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화성/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