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의 한건주의, 정부의 실적주의, 언론의 받아쓰기가 빚어낸 이주노동자판 ‘시국사건’

▣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일주일 전인 지난 10월13일 밤 텔리비전 뉴스를 보던 국민들은 깜짝 놀랐다. 공중파 방송 3사가 앞다퉈 “최근 잇따른 테러 경고 속에 국내에서 이슬람 반한단체가 처음으로 적발돼 조직원이 추방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는 내용의 뉴스를 내보낸 것이다. 다음날인 14일 일부신문들도 “국내 반한 이슬람 단체 첫 적발”이라는 제목의 머리기사를 실었다.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이 단체의 이름은 ‘다와툴이슬람코리아’로 경기도 안양·안산·군포 등의 공단에서 일하는 방글라데시인 500여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4월 서울출입국관리소와 합동으로 반한 활동 차원에서 이 단체를 적발해, ㄴ(27)씨 등 핵심 조직원 3명을 검거해 강제 추방했고 나머지 주요 조직원들은 검거에 실패했다. 이들은 1억여원의 자금을 모아 방글라데시의 한 정당에 송금했고, 불법 체류자 취업 알선으로 정부 정책에 반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이들의 테러 지원 여부를 조사했으나 외교 관계 등을 고려해 비공개한 상태이다. 이 사실을 공개한 김재경 한나라당 의원은 “최근 한 이슬람단체가 국내 시설물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겠다고 공언한만큼 관련 기관은 불법 체류자의 테러 지원 가능성에 대해서도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데 이 ‘엄청난’ 사건은 다음날부터 흐지부지됐다. 이유는 간단하다. 반한 이슬람단체는 처음부터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 단체의 반한활동을 뒷받침할 ‘증거’나 ‘단서’조차 찾을 길이 없다. 과거 공안정국의 ‘조작사건’에 버금가는 이주노동자판 ‘시국사건’의 내막을 들여다봤다.


다와툴이슬람코리아는 어떤 단체인가

= 김 의원이 반한단체라고 공개한 다와툴이슬람코리아는 안양시 만안구 안양5동 안양대학교 정문 맞은편에 위치한 한 이슬람 사원이다. 인근 지역에서 일하는 방글라데시인을 비롯해 파키스탄인, 인도네시아인 등 다양한 국적의 이주노동자들이 모여 예배를 보고 정보도 교환하는 곳이다. ‘다와툴’은 ‘초대한다’는 뜻의 아랍어이다. 이 사원은 이슬람교도인 한국인 유아무개(2001년 작고)씨가 지난 1992년 자기 소유의 건물 2층에 열었는데 규모가 작아 1997∼98년 이주노동자들이 십시일반으로 8천여만원을 모아 3층을 지어 올렸다. 당시 새로 단장해 문을 열 때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만든 첫 사원이라며 방글라데시·파키스탄·말레이시아·브루나이 등 주한 이슬람권 국가 대사들이 와서 축하를 해줄 정도로 이름이 알려진 사원 공동체이다. 조직원 규모인양 소개된 ‘회원 500명’은 엉뚱한 곳에서 근거가 확인된다. 지난해 대구지하철 참사 때 이곳에 모이던 이주노동자들이 성금 50만원을 모아내자 몇몇 언론이 이들을 “회원 500명의 외국인노동자 친목단체”라고 소개한 일이 있다.



△ 라마단(금식월) 기간이라 일부 신도들이 사원 안에서 묵고 있다. (사진 / 류우종 기자)


검거·추방됐다는 ‘핵심 조직원’ ㄴ씨는 누구인가

= ㄴ씨는 방글라데시에서 신학을 전공한 이주노동자로 지난해부터 이 사원에서 예배를 관장했다. 이곳의 예배 인도자가 파주 사원으로 옮겨가면서 신도들이 ㄴ씨를 한시적으로 추대했다. ㄴ씨는 지난해 가을 고용허가제가 시행될 때 한국 체류 4년이 넘어 비자 발급 대상에 포함되지 못하면서 ‘불법 체류’ 신세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ㄴ씨와 함께 추방된 ㅇ씨와 또 다른 ㅇ씨도 체류 기한을 넘긴 상태였다. 지난 4월 단속 때 ㄴ씨는 안산 친구에게 가던 길이었고, ㅇ씨는 두부공장에서 일하던 중이었다. 또 다른 ㅇ씨는 공장 기숙사에서 도망쳤다가 다음날 근처 여관에서 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신분이 불안정하고 한국 말도 서툴러 주변 사람들로부터 오히려 도움을 받는 처지였다.


1억원 방글라데시 송금설의 진위는?

= 애초 이 사원을 지었던 한국인 유아무개씨가 작고한 뒤 가족들이 2002년께부터 이사계획을 세웠다. 설상가상으로 일대에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얘기가 돌았다. 한국 사람들 ‘눈총’ 없이 자유롭게 드나들수 있으면서도 교통이 편리한 곳에 이만한 규모의 공간을 빌리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이주노동자들은 아예 건물을 하나 사들이기로 계획하고 계를 붓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전국의 이슬람 이주노동자들이 한푼두푼 돈을 보내와 현재 그 돈이 1억2천만원을 웃돌고, 약정한 돈까지 합하면 1억8천여만원에 이른다. 외환은행 안양지점 관계자는 “한국인 명의로 저금돼 있고 액수는 1억2천만원이 훨씬 넘는다”면서 “이 돈을 다른 나라로 송금한 일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 다른 모금을 했을 가능성은 없을까. 사원 사무국장인 에마라트 후세인씨는 “당장 사원 문을 닫을지 모를 판이라 우리는 지금 새 사원을 구하기 위한 모금만으로도 벅차다”고 말했다.

대체 어떻게 해서 국내 참사에 성금까지 낼 정도로 ‘한국에 호의적이었던’ 이슬람 사원 공동체가 이슬람 반한단체로 둔갑했고, 국내 16만명에 이른다는 미등록 체류자의 일부였던 ㄴ씨 등 세 사람이 반한단체 핵심 조직원으로 호도됐을까.


△  "반한 이슬람 단체가 적발됐다"면서 '1억원 송금설'과 '테러 연계 위험' 등을 언론에 얘기한 김재경 한나라당 의원. (사진 / 박승화 기자)

이 사실을 처음 공개한 김재경 의원은 아무런 증거나 근거자료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김 의원쪽은 “반한단체가 적발됐다는 정보를 우연히 듣고, 백방으로 조사를 하던 중 믿을 만한 고위 관계자로부터 ‘구두로’ 이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법무부에 공식자료를 요청했지만 자료를 주지 않아, 정부 차원에서 사건의 실체와 진실을 밝히라는 취지로 내용을 공개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쪽은 사실을 확인해줬다는 ‘믿을 만한 고위 관계자’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김 의원의 주장과는 달리 법무부는 “4월에 적발돼 추방된 방글라데시인들은 출입국관리법 위반사범으로 국정원의 요청에 의해 서울출입국관리소가 단속한 것”이라며 “불법 체류가 사유였고 다른 혐의에 대해서 (김재경 의원쪽에) 확인해준 일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김 의원과 법무부가 ‘핑퐁게임’을 하듯 책임을 떠넘기는 가운데 당시 이들에 대한 ‘단속 요청’을 했던 국가정보원은 “확인해줄 수 없다는 게 공식 답변”이라며 침묵하고 있다. 한 국정원 관계자는 “(국정원은) 반한활동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없고 그렇게 결론내리지도 않았으며 보고서도 만들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대부분의 언론은 김 의원이 법무부에서 자료를 받아 이 사실을 공개한 것처럼 보도했다. 그러나 김 의원이 제시한 법무부 자료는 지난 4월 작성된 ‘불법 체류자 반한활동에 대한 종합대책’과 ‘반한활동 관련자 단속실적표’가 전부이다. 이들 자료에는 다와툴이슬람코리아라는 이름은 물론이고 지난 4월 3명의 방글라데시인이 검거돼 추방됐다는 사실조차 언급돼 있지 않다. 당연히 ‘1억원 송금 여부’나 ‘불법 체류자 취업 알선’ 등 이들이 했다는 ‘반한활동’ 내용도 찾아볼 길이 없다. 유일한 관련 정보는 2003년에 2명, 2004년 8월 말 현재 12명을 단속했다고 간단하게 기재된 단속 수치뿐이다.

대신 자료에는 법무부가 규정하는 반한활동의 범위가 자세히 나와 있다. △한국의 체제(정책 포함)를 부정하거나 한국인에 대한 적대감으로 한국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는 자 △테러를 하거나 테러 음모 또는 협박을 한 자 △국가 정책에 반대하는 집회·시위를 선동·주도·적극 참가하는 자 △정치적 주장을 하면서 정부 시책을 비판·오도하며 이를 선전·주동하는 자 등이다. 단순한 범죄나 체불임금 청산·사업장 인권 개선 요구는 제외한다는 단서가 붙어 있지만, 자의적 해석이 얼마든지 가능한 규정이다.

실제 이 자료에서 대표적 반한활동 관련자로 소개한 방글라데시인 비두씨와 네팔인 타파씨는 국내에 꽤 알려진 이들이다. 비두씨는 지난해 불법 체류자 단속 항의집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타파씨는 민주노총산하 서울경인지역 평등노조이주노동자지부장으로 올 2월 이라크 파병 반대와 불법 체류자 사면운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강제 추방당했다.

결국 아무런 근거 없이 김재경 의원의 일방적인 주장에 법무부의 반한활동 규정이 ‘후광’처럼 덧칠되면서, 방글라데시인과 이주노동자 전체가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매도당한 셈이다. 안양 이주노동자의 집 이금연 소장은 “국회의원의 ‘한건주의’와 정부 당국의 ‘실적주의’, 언론의 ‘받아쓰기’가 빚어낸 무책임하고 어이없는 해프닝”이라며 “반한활동 단속을 핑계로 이주노동자의 인권이나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거나, 불법 체류 문제를 테러와 연관지어 이주노동자 집단에 대한 국민적 편견이 가속화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이미 외교적 갈등으로까지 번졌다. 주한 방글라데시 대사관은 이례적으로 지난 15일 성명서를 내어 “우리는 대한민국 어떠한 정부 당국으로부터 방글라데시 국적인 수명이 반한 이슬람 조직과의 관련성으로 추방됐다는 내용을 전달받지 못했다”면서 “언론이 정보의 정확성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근거 없는 보도를 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고 불행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방글라데시 대사는 이와 함께 항의의 뜻으로 외교부 장관 면담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