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에 대한 인종차별을 중단하라”21일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 앞두고 이주노동자들 증언대회 열어
▲ 17일 오후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이주노조가 세계인종차별 철폐의 날을 맞아 이주노동자 증언대회를 열고 있다.<강예슬 기자>
세제곱미터당 40마이크로그램, '보통' 수준의 미세먼지. 17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인근 스카이라인은 선명했다. B씨는 마스크를 쓰고 얼굴 절반을 덮는 선글라스로 눈을 가렸다. 미세먼지 때문에 쓴 마스크는 아니라고 했다. B씨는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주노동자로 현재 미등록 체류 상태다. 

2013년 처음 한국에 왔다는 그는 "한국에 처음 와서 성희롱을 당했지만 비자를 연장해 주지 않겠다는 사장 엄포에 3년 동안 당할 수밖에 없었다"며 "하지만 결국 사장은 비자도 연장해 주지 않았다"고 한숨을 쉬었다.

"고용허가제로 손발 묶인 이주노동자"

3월21일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을 앞두고 이주노동자들이 서울 중구 서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증언대회'를 열었다. 이날 행사는 이주노동자노조와 이주공동행동·지구인의 정류장·경기이주공동대책위원회·민주노총이 함께 주최했다. 

이주노동자들은 연단에 올라 자신의 처지를 증언했다. 방글라데시 노동자 파루크(28)씨. 그는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플라스틱공장에서 일하다 손가락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업무시간 중 일하다 발생한 사고로 산업재해가 분명했다. 그렇지만 그는 "한국에 다시 오고 싶으면 산재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사장의 말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는 비전문취업비자(E-9)를 갱신해 다시 한국에 오길 원한다. 고용노동부는 국내 취업활동 최대 기간인 4년10개월을 채운 노동자들이 한국어시험을 통과하면 본국에 돌아갔다가 다시 재입국해 일할 기회를 주는 '성실근로자 재입국 취업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4년6개월째 한국에서 일한 파루크씨는 '성실근로자'가 되길 바란다. 그는 서툰 한국어로 “며칠 전 공장에서 일하다가 사고를 당했지만 산재신청을 할 수 없었다”며 “성실근로자제도는 사장이 허락해 줘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이날 모인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주의 부당한 행위를 겪고도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는 것은 고용허가제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고용허가제는 내국인을 고용하지 못한 사업장이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제도다. 문제는 사업장 이동·재고용·이탈 신고 등 대부분 권한을 사업주가 쥐고 있어 이주노동자가 권리를 주장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상 비자 연장 결정권한을 가진 사업주는 이를 빌미로 이주노동자에게 부당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고립된 농촌 내 이주노동자 권리 취약"

딴 소폰(40) 캄보디아 크메르노동권협회 대표는 손수 만든 피켓을 들고 연단에 섰다. 그가 든 하늘색 피켓에는 “노동시간 사기 치지 마라” “이주노동자 임금 강탈하지 마라”는 내용의 한국어가 삐뚤빼뚤 쓰여 있었다. 

그는 "캄보디아에서 온 딴 소폰입니다"는 인사말을 한국어로 전한 뒤 농촌 이주노동자 현실을 설명했다. 그는 “농촌 이주노동자가 사는 곳은 대부분은 컨테이너박스·비닐하우스·스티로폼 건축물”이라며 “더 큰 문제는 이런 숙소를 제공하고 월급에서 매달 30만~40만원씩 공제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농촌 이주노동자는 기본적인 냉난방 시설도 갖춰지지 않은 숙소에서 생활하며 건강권을 위협받고 있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고립된 농촌지역에서 거주하는 고충도 털어놓았다. 그는 “아파도 병원에 가기 어렵다”며 “혼자 병원에 가야 하는 경우가 많고 건강보험이 없어 치료비가 부담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들어온 지 30년이 넘었지만 한국 정부가 이주노동자들을 대하는 태도가 별로 바뀌지 않았다”며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이주노동자들이 더 많이 모여 목소리 내자”고 호소했다.

강예슬  yeah@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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